출국 시간은 저녁 6시 반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은 많았고 시험 기간을 핑계로 미뤄둔 집 청소와 빨래를 하느라고 바빴다. 아침으로 즐겨 먹는 오트밀과 견과류가 들어간 달지 않은 뮤즐리가 있다. 한국에는 없을 게 분명하기에 안 그래도 청소하기에 바쁜 시간을 쪼개 그 뮤즐리를 파는 마트를 다녀오는데 썼다.
마트를 가느라 밖을 잠깐 걸었는데 날이 너무 좋았다. 엊그제까지 계속 비가 왔기 때문에 갑자기 좋아진 날씨를 두고 떠나려니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한국은 날씨가 안 좋다고 들었기 때문인지 날은 화창한데 기분은 꿀꿀했다.
사진1. 독일 집 근처 공원 사진.
다름슈타트에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바로 가는 airliner가 있다. 30분도 걸리지 않는 직항 버스라 짐을 들고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돼서 여행갈 때 굉장히 좋다. 칼리와 만나서 버스를 타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가 보는 공항이 너무 낯설었다.
6시 10분 탑승이 시작됐다. 드디어 한국에 가는구나! 한국에 있는 가족을 보러 가는 게 아니라 한국인인 내가 한국을 여행하러 간다니… 거의 서른이 다 되어가는 이 나이에 한국을 여행한다는 게 웃기기도 하고.
비행시간은 11시간이었다. 원래는 9시간 정도였던 거 같은데, 아무래도 러시아 위를 바로 지나갈 수 없다 보니 시간이 길어진 게 아닐까 싶다. 칼리는 아시아나 채식 메뉴를 따로 주문했는데 먹고 나서는 이렇게 말했다. “여태까지 먹었던 기내식 중에 제일 맛있었어.” 밥을 먹고 난 다음 불을 끄고 자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걸 겪어 본 칼리가 또 이렇게 말했다.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는 맨날 아기들이 울고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들이 많이 얘기하면서 가시는데, 이렇게 조용한 비행은 처음이야.” 여태 비행기를 타 봐도 열 번은 더 탔을 법한 칼리가 그렇게 얘기를 하니 그저 웃길 따름이었다.
사진2. 비행기에서 스트레칭하는 사람들.
한국에 도착하니 한국에 왔다는 게 이해는 가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며칠 더 있으면 정말 한국에 왔다는 게 마음으로도 와 닿을까?
숙소는 광진구에 있기 때문에 공항 버스를 타고 바로 이동할 수 있었다. 요즘은 지도로 길을 바로바로 찾을 수 있으니 조금밖에 헤매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숙소는 기대 이상이었다. 알고 보니 화장실이 두 개였고 방에도 큰 침대들이 하나씩 있고 빔프로젝터와 소파베드 심지어 로봇청소기도 있었다. 무엇보다 호스트 님이 굉장히 친절하셨다.
숙소에 짐을 두고 주문한 와이파이 에그를 찾으러 시내로 나섰다. 춘천 출신인 나는 서울로 독일 학원을 다녀 보기만 했지 살아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인지 서울 지하철을 이용하기가 조금 무서웠다. 어린 학생들도 지하철을 잘만 이용하는 것 같던데…
다행히 아무 문제없이 지하철을 이용하고 와이파이 에그를 득템했다. 그때 시간이 무려 저녁 6시였다. 독일에서 아침과 점심을 먹고 기내식을 한 번만 먹은 나는 굉장히 배가 고팠다. 한국 시간으로 따졌을 때 나는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였기에 배가 무척이나 고팠다. 칼리도 하나도 한 게 없는데 배가 고프다며 혼자 어이없어 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명동 교자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와이파이 에그를 찾으러 갔던 곳이 명동 교자 음식점과 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걸어서 갈 수 있었다. 사실 한국에 살았을 때도 서울 명동에 가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에 서울 명동이 이렇게 사람이 많고 활기찬 줄 몰랐다. 물론 사람이 많이 있을 거란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사람이 빼곡할 줄은 몰랐다. 길거리에 서 있는 포장마차도 굉장히 많아서 놀랐다.
이 길을 헤치고 명동 교자에 도착했다. 알고 보니 미슐랭 스타를 받은 곳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럴 값을 했다. 식당에 들어서니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정말 유명한 곳이었는지 외국인들도 많았다. 음식 종류는 네다섯 개로 몇 개 없었다. 그 중에 칼국수와 만두를 하나씩 시켜서 나눠 먹었다. 두 가지 음식에 다 고기가 들어가 있었다. 오랫동안 많이 안 먹어서 고기 맛이 많이 날 줄 알았는데 하나도 그렇지 않았고 정말 맛있었다. 정말 너무 맛있어서 다음에도 한 번 더 오기로 했다.
사진 3. 명동 교자 식당 음식 (칼국수와 만두) (왼쪽) 그리고 메뉴(오른쪽) 사진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붕어빵도 먹었다. 4월에도 먹을 수 있을까 했는데 다행히도 파는 곳이 있어서 기뻤다.
사진4. 명동에서 사 먹은 붕어빵.
가는 길에 잠깐 웃픈 헤프닝이 있었다. 지하철을 타야 돼서 지하철역으로 내려 갔는데 지하 쇼핑매장이 나왔다. 그래서 잠깐 헤매다 여기로 계속 가면 지하철역이 나오지 않을까 해서 계속 걸었다. 그러다 지하철역 표지판이 나와서 다행이다 하고 가던 중 웬걸 마트가 나왔다. 백화점의 B1층인 것 같았다. 야채부터 과일, 과자, 생선까지 정말 마트처럼 모든 것을 팔고 있었고 디저트를 파는 가게와 음식점도 정말 많았다. 서울에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사람으로서 정말로 지하에 이렇게 큰 매장이 있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큰 마트와 음식점이었다. 그렇게 마트로 들어서는 순간 가던 지하철 표지판이 사라져버려 길을 제대로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물어 물어 지하철역에 도착했는데 마지막에 물어본 친구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두 번이나 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지하철역이 그래도 보이지 않자 마침 앞을 지나가는 두 명의 젊은 여자 분들이 있었다. 말을 걸고 지하철역을 어떻게 가는지 물어보니 본인들도 마침 지하철역을 가고 싶어 찾는 중이었다고 대답을 했다. 또 알고 보니 일본에서 온 학생들로 한국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나와 대화를 한 친구는 6개월 간 한국에 있었다고 했는데 한국어를 잘했다. 느리지만 또박또박 한국어를 하는 게 정말 인상 깊었다. 문득 내가 구사하는 독일어와 영어는 원어민들에게 어떻게 느껴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걸었던 여자 분의 목소리가 너무 떨려서 오랫동안 외국어를 하는 입장에서 산 사람으로 이해가 잘 가고 공감이 됐다.
그 여자 분들의 도움으로 지하철 역을 찾아 무사히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서울에서 지하철역을 찾는 것은 역시 힘들었다. 또 지하철역을 찾을 수가 없어서 몇 번이나 물어봐야 했던 게 너무 웃겼다. 한국인인 나는 이렇게 헤매는데 한국에 온 여행자들은 어떻게 이렇게 잘 다니는지 놀라웠다. 문제없이 지하철 역을 착착 찾아 다닐 수 있을 때까지 서울에 얼마나 오래 살아야 되는지... 서울을 떠나는 날이면 우리도 문제없이 지하철을 타고 다닐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