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 날, 4월 12일 수요일
한국 여행 일곱째 날.
요 며칠 글을 쓰느라 늦게 잤더니 굉장히 피곤했다. 알람은 8시 반에 울렸지만 상관없이 그냥 계속 이부자리에 누워 있었다. 일찍 일어난 칼리가 그 사이 분주히 움직이더니 고소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칼리는 인절미에 쓰는 콩가루를 뿌린 프렌치 토스트를 만들었다. 인절미 아이스크림과 인절미 떡에서 영감을 얻은 칼리는 콩가루를 뿌린 케이크나 쿠키를 만들면 맛있겠다고 얘기했었는데, 그걸 지금 만들기에는 어려우니 그 대신 프렌치 토스트를 만들어 보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이렇게 음식을 열심히 탐구하는 자세라니 정말로 본받아야 마땅할 자세다. (당신은 앞으로도 우리의 요리사 ★☆♪♣♧. 멋지다 우리 요리사! 박수 박수.) 계란물을 입혀 버터에 구운 식빵과 그 위에 올린 콩가루, 딸기 그리고 그 위에 뿌린 꿀까지. 정말 맛있었다.
아침을 먹고 나서 미용실에 가려고 했는데, 칼리가 가기 전에 예약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그래서 전화를 해서 예약을 하고 조금 기다렸다가 숙소를 나섰다.
우리가 가려고 하는 미용실은 칼리가 직접 서칭을 해 보고 찾은 곳이었다. 숙소와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별점이 정말 높았다. 몇 천 명이 리뷰를 달았는데도 별점이 정말 높은 게 신기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미용실에 들어서자 그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예약한 사람의 이름을 물어보고 자리를 안내해 줬다. 칼리와 지유는 헤어 디자이너 님들의 손에 이끌려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두 친구는 미국 사람들인데 미국에서 원하는 모양으로 머리를 자르려면 돈을 많이 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에 가기 전에 미용실에 가 보고 싶으면 가자고 좋은 경험이 될 거라며 (머리를 자를 생각은 하나도 없는 내가) 친구들을 꼬셨다.
칼리는 머리카락 기장을 조금 떠 짧게 자르고 싶어했다. 지유는 울프컷을 하고 싶다고 했다. 심지어 사진도 이미 여러 개를 찾아 놨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흐뭇하게 친구들이 머리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제일 먼저 끝난 건 칼리였다. 기장을 자르면서 조금씩 층도 내고 옆머리까지 조금 냈다. 칼리는 정말 마음에 들어 했다. 할인 가격으로 계산서를 주기에 칼리는 너무 마음에 든다며 팁이라도 더 드릴 수 없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원래 가격으로 계산을 했다. 보통은 첫 번째에는 할인을 안 해준다고 하셨는데 할인 가격으로 계산할 수 있게 해 주다니 정말 친절했다. 지유는 울프컷을 하느라고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알고 보니까 앞머리까지 만들었다. (지유는 아직 고등학생이어서 귀엽다는 말보다 쿨하다는 말을 더 좋아하지만 앞머리를 내린 지유는 정말 귀여웠다. 지유가 이 글을 볼 수도 있는데… 이 글을 정말 다 읽지는 않겠지…) 지유 머리를 잘라주신 헤어디자이너 님은 앞머리 관리가 어려우니 앞머리 펌도 추천해 주셨다. 가격도 너무 비싸지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길래 지유는 앞머리 펌도 했다. 지유도 본인 머리 스타일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다. 한국 헤어 디자이너 님들이 확실히 손기술이 좋은 것 같다. 가격도 외국보다 훨씬 착한데 머리도 마음에 드는 대로 잘 잘라 주다니… 굉장한 것 같다. 거기다가 친절하기까지.
친구들을 기다리다가 알게 된 건데, 알고 보니 네이버로 머리를 잘라 주면 좋겠는 헤어 디자이너를 네이버에서 직접 고를 수가 있었다. 우리는 안 고르고 가서 그쪽에서 알아서 배정해 준 것이었다. 심지어 계산서도 네이버 페이를 통해서 받았는데, 늘 카드나 현금을 직접 내고 계산을 하던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머리를 자르고 와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은 우리가 여태껏 조금씩 모았던 반찬들과 김, 계란이었다. 칼리는 어머니가 해 주신 도라지 무침을 먹어 보더니 너무 맛있다며 매일 매일 먹을 수 있다며 눈을 반짝였다. 그러면서 나중에 어머니께 꼭 감사의 말을 전하겠다고 한 마디를 했다. 지유도 도라지 무침이 맛있다고 했다. 나도 우리 어머니가 한 도라지 무침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우리 다 좋아하는 걸 보면 어머니의 도라지 무침이 정말 맛있긴 한가 보다. 늘 우리 어머니는 요리를 잘 못한다고 우스개 소리를 하고 다녔는데, 내가 가스라이팅을 하고 다닌 건 아닌지… 앞으로 그런 얘기는 하면 안 되겠다.
점심을 먹고 나와 지유는 헬스장에 갔다. 나는 조금 더 오래 운동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지유는 본인의 운동을 끝내고 숙소로 갔다. 열쇠가 칼리와 나에게 있어서 걱정을 했더니 숙소에 있는 칼리에게 전화하면 된다며 쿨하게 떠났다. 운동을 끝내고 와서 보니 칼리가 낮잠을 자느라 지유의 전화를 못 받았다며 지유가 문 밖에서 20분가량을 기다렸다고 했다. 칼리는 너무 미안하다며 머리를 부여잡고 내게 설명을 하면서 다시 한 번 지유에게 사과를 했다.
운동을 갔다와서 너무 피곤했는지 나도 낮잠을 자야 했다. 낮잠을 자고 저녁을 먹고 나서 숙소 근처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중고서점에 가기로 했다. 서점이 밤 열 시까지 열어서 가능한 계획이었다.
저녁을 먹으니 8시쯤이었다. 우리가 가려고 하는 서점이 걸어서 30분 정도밖에 안 되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또 밤 산책을 나섰다. 저번에 갔던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다리를 지나 공구거리를 지나서 알라딘 중고서점에 도착했다.
중고서점에는 생각보다 책이 많았고 상태가 굉장히 좋았다. 지유와 칼리는 나중에 읽겠다며 여러 한국 책을 샀다. 하나 귀여웠던 것은,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처럼 둘이 한국인들이 영어를 배우는 책을 사서 본인들은 한국어를 배우겠다며 그 칸을 찾아 달라고 했던 것이었다. 둘은 본인들이 만족할 만한 책을 찾았고, 영어를 배우는 칸에 서서 열심히 책을 고르는 두 미국인에게 잠깐의 혼란을 느낀 나도 질 수 없다 싶어 ‘한국인을 위한 영어 책’들을 골랐다.
책을 사고 나서 다시 숙소로 걸어 가다 오는 길에 발견한 수제 단팥빵집에 들렀다.
순전히 팥을 좋아하는 두 친구들을 위한 나의 제안이었다. 우리는 생크림호두단팥빵을 하나씩 샀다. 빵은 정말로 너무 맛있었다. 너무 달지 않게 적당히 들어간 단팥과 달지 않은 생크림, 씹히는 맛이 좋은 호두, 쫀득한 빵까지. 칼리가 나중에 얘기하기를, 본인은 독일에서 리뷰를 확인하지 않고 절대 음식점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리뷰를 확인하지 않고 길 가다 들려봤다고 했는데, 내게 그래줘서 너무 고맙다고 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맛 보라고 하나씩 주고 싶다고도 했다.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또 가서 한가득 사오기로 했다. 큰 발견을 한 사월의 어느 밤 산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