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작가는 듣고 말하는 사람보다는 읽고 쓰는 사람으로만 살고 싶어 한다. 순간에 살아있는 것보다 시간을 견뎌내는 고전을 만들고 싶어 한다. 글을 재밌게 쓰면서 느끼는 즐거움보다는 나아지는 글을 위한 괴로움을 선택한다.
상당한 완벽주의자에 원칙주의자다. 조금은 고구마스럽다. 그리고 본인의 욕심들을 독자들에게 솔직하게 꺼내놓는다는 게 유명 작가의 어떤 다짐과 패기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나도 혼자 있을 때는 꺼내보는 욕심이 있는데 장강명 작가님의 욕심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작가님의 욕심은 글로만 승부해서 좋은 작품을 쓰기만 하면 굳이 본인이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아도 책이 잘 팔리는 작가가 되는 것인 것 같다. 이 욕심이 솔직히 드러났다가 슬쩍 다른 이야기에 감추기도 하고를 반복해서 꽤 모순적이라고 느끼기도 했지만 그래서 또 매우 친근하기도 했다. 모든 내용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책을 읽다 보니 내 안에도 있는 욕망이 끌려 나오고 할 말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니 좋은 이야깃거리를 주는 재밌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글쓴이의 말과 글을 함께 볼 때 그 본모습을 더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은 시간을 두고 나의 여러 가지 모습 중에 내가 원하는 것만 선별할 수 있지만 말은 종종 그렇지 못하다. 하지만 또 일상의 말로 전달하지 못하는 깊고 부끄러운 생각들도 있는 법이다. 그러니 말과 글이 함께일 때 그 사람의 진짜 본모습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창작의 고통 이런 건 커다랗고 무거운 자아를 강조하는 서양 철학에서 비롯된 어떤 판타지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판타지가 조금은 불편해서 대신 동양적인 사고방식을 채택한다. 불교 철학에서 말하는 자아는 거의 없다시피 해서 유연하다. 내 삶이 별 것이 아닌데 하물며 예술이 별 것일까. 별 것 아닌 것을 즐겁고 치열하게 하는 마음이 '예술' 아닌가.
작가가 글 쓰는 괴로움이라고 말하는 것은 예술가의 괴로움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순간 재미있는 일보다 이상적인 나를 꿈꾸며 고생하는 건 괴로움이라 아니라 즐거움이다. 나아진 나를 짠! 하고 발견했을 때 괴로움의 기억은 다 사르륵 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욜로' 같은 즐거움과는 조금 다른 것이지만 괴로운 즐거움도 즐거움이다. 장강명 작가님의 괴로움은 예술이 주는 괴로움이 아니라 재능 많은 사람 특유의 욕심과 결기에서 나온 걸 거라 생각한다.
작가는 예술가라면 세상을 거슬리게 하는 발톱이 있어야 된다고 한다. 무언가를 창작하는 사람들이라면 다 그렇듯이 나도 알게 모르게 숨기고 있는 쪼끄만 발톱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내 반항심이 개성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마음이 바뀌어서 내가 가진 예술가의 발톱을 잘 다듬어서 있는 그대로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다. 다듬고 남은 반항심 찌꺼기는 남의 귀에 때려 박는 것 말고 장난스럽게 우회해서 전하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작가님 특유의 날카로운 사고에 비해 나의 사고가 너무 두리뭉실하게 비겁해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온 마음으로 끌렸던 작품들을 떠올려보면 항상 유연하고 낙천적이고 솔직한 이야기들이었다.
해내겠다는 마음, 이기겠다는 마음을 가질 때 내 작업은 억지스러워지고 유치해진다. 대신 유연하고 낙천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앞세울 때 내 작업이 자연스러워지고 나아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