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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은 Jan 11. 2023

예뻐지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국민학교 시절 나의 별명은 "아침에 미용실에 갔다가 등교하는 아이"라고 엄마는 이야기하곤 했다. 누군가 나에게 대해서 그렇게 말한 걸 직접적으로 들은 기억은 없다. 내가 기억하는 건 아침마다 엄마가 내 머리를 빗겨주는 동안 내가 느꼈던 불편한 감각만 남아있다. 머리를 묶을 땐 두 종류의 빗이 필요했다. 밤사이 흐트러진 머리를 풀어줄 빗살의 간격이 넓은 큰 빗과 빗살이 아주 가늘고 촘촘하며 손잡이 끝이 가늘고 뾰족해지는 가는 빗. 엄마는 일단 엄마 앞에 나를 앉게 했다. 미리 물을 담아둔 분무기를 챙겨 와 내 머리카락 전체에 수분을 공급했다. 촉촉과 축축 그 사이 어디쯤의 상태로 만들어진 머리카락을 엄마는 큰 빗으로 빗겼다. 밤 사이 뒤척임이 심했던 날은 머리가 많이 엉켜있었고 빗질이 아팠다. 빗질을 하는 엄마의 편의를 위해 나는 시선을 천장으로 향하게 한 뒤 고개를 뒤로 젖혀야 했다. 허리까지 오는 머리카락 전체를 한 올도 빠짐없이 촘촘하게 땋는 과정은 시간이 좀 필요했다. 내 체감상으로는 길게는 20분 정도가 걸린 날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땋고 나서 혹시라도 빠진 머리카락이 있다면 다시 머리를 풀고 처음부터 땋아야 했다. 그럴 땐 고개가 너무 아팠다. 나는 그냥 머리를 풀고 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엄마 마음에 들어야만 그 시간이 끝났다. 고개가 아프다고 하소연을 하면 엄마는 들고 있던 플라스틱 빗으로 내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예뻐지는 일이 쉬는 건 줄 알았냐'며 역정을 냈다. 내 생각엔 엄마가 묶어주거나 땋어준 머리보다 푸른 머리가 더 예쁜데, 엄마의 표현으로 옮기자면 머리를 풀어헤친 채 학교에 가고 싶었다. 엄마가 앞머리를 너무 잡아당겨서 눈꼬리가 눈썹을 향해 올라갔다. 크지 않은 눈은 더 작아지고 가로로 길어졌다. 그런데 미용실에 갔다가 등교하는 아이라는 말은 엄마 생각처럼 칭찬이었을까?


그 당시의 엄마는 특정 브랜드의 아동복을 유독 좋아했다. 그 아동복이 세일을 하는 날에는 꼭 쇼핑을 하는 날이었다. 옆 동네에 살고 있는 이모와 엄마는 함께 쇼핑을 나섰다. 옷은 바닥부터 쌓이고 쌓여서 산처럼 보였다. 그 옷무덤을 파헤치며 엄마와 이모는 나와 사촌 언니들의 사이즈에 맞는 옷을 찾기 위해 애썼다. 언니들과 나는 사이즈만 다른 같은 디자인을 옷을 입는 경우가 많았다. 해가 바뀌면 사이즈가 작아진 내 옷을 버리고 같은 디자인의 언니들 옷을 물려 입기도 했다. 흰색 카라가 어깨까지 늘어지던 개나리색 원피스와 진달래색 원피스를 몇 년 동안 입었는지 모르겠다. 처음엔 예쁘게 보였던 디자인을 두 언니에게 물려 입으니 지겨웠다. 집 밖으로 나서는 내 머리와 옷차림은 단정하고 깔끔하고 예뻐 보여야 했다. 함께 외출하는 엄마는 맨 얼굴이었고 옷차림도 집에서 입던 옷과 별 차이가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딸의 옷을 사시사철 챙겨 입혀 돋보이게 만드느라 엄마는 정작 당신의 옷을 사는 일에는 인색하게 굴었다. 엄마는 또 자주 이야기 하곤 했다. 학교에 엄마가 와야 하는 일이 있으면 선생님도 친구들의 엄마들도 모두 나의 엄마를 궁금해했다고. 엄마는 그걸 뿌듯하게 생각했다. 가끔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라 엄마를 보고 실망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했다. 엄마는 사람들의 실망에 굴하지 않았다. 본인 치장에만 신경 쓰고 아이는 추레하게 학교에 보내는 엄마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나도 엄마처럼 딸을 낳았다. 나를 낳아준 엄마를 닮지 않았는지 내 손은 야무지지 못하다. 딸아이의 머리카락을 모두 끌어 모아 뒤통수 중앙에 하나로 묶는 일도 쉽지 않다. 예쁘고 귀여운 물건들에 부쩍 관심이 많아진 아이는 예쁘거나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옷을 입기를 원한다. 해마다 사이즈가 바뀌어서 새 옷을 입게 되는 딸이 부럽기도 하다. 작년 이 시기에 내가 뭘 입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옷장은 옷으로 가득 차있는데 지금 당장 입을 옷은 없는 것 같다. 나도 남편 눈치 보지 않고 계절마다 새 옷을 사고 싶다. 딸은 묻는다. 엄마가 보기에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예쁘냐고. 친구보다 예쁘냐고. 엄마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딸이지만 친구 엄마 눈에는 친구가 가장 예쁘다고 꼭 덧붙여 말한다. 나는 엄마처럼 내 아이가 다른 친구들 보다 돋보이길 원하지 않는다. 내 딸도 내 딸의 엄마인 나도 그저 튀지 않고 평범했으면 좋겠다. 단정하고 깔끔했으면 좋겠지만 남들 눈에 예뻐 보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생각한다. 나를 가꾸는 일, 나 스스로 나를 챙기고 아껴주는 일이 육아만큼이나 중요하다고. 그런 의미에서 2023년부터는 맨 얼굴로 다니는 대신 화장을 해보자며 화장품을 새로 주문했다. 가지고 있던 유통기한 지난 쓰다 남은 화장품은 과감하게 다 버려야지.


"아이브 가수 언니가 한 머리인데, 머리를 양쪽으로 먼저 묶고 땋아서 다시 묶는 건데, 엄마는 그 머리 할 줄 모르지?"

"응... 할머니는 해줄 수 있을 텐데. 나중에 할머니 오시면 해달라고 해보자."

할머니는 손녀에게도 알려주겠지, 예뻐지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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