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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yton May 17. 2024

안온한 집구석

변하지 않는 것은 '변화' 그 자체라고 했다. 시간이 만물에 그러하듯 세월이 흐르면 집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낡고 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은 내외부로 드러나는 변화가 두드러진다. 규모가 크든 작든, 도시 중심지든 산촌 오지이든 매일 새로운 건물이 올라가고 이미 지어진 건물은 낡아간다. 구옥, 구축, 구도심.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새로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기 위해 칭하는 많은 말들이 생겨난다. 더 정확히는 새것과 헌 것의 가치를 매기고 구분하기 위함이며 이 두 이름은 끊임없이 가치가 뒤바뀐다.


내가 완전히 '새 집'이라고 정의할 수 있었던 장소에 살았던 경험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부모님이 나와 동생에게 각자의 방을 마련해 주기 위해 이사를 했던 신축 단독 주택이었다. 학업을 마치기 전까지는 가족과 함께 그 집에 살았었고, 경제적 독립 이후에는 구옥이라고 불리는 다가구 주택과 구축이라고 불리는 수도권의 오래된 아파트에 살았다. 주택이라는 환경에 익숙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신축 집합 주거에 대한 욕망이 낮았을지도 모르겠다. 직장 생활을 하는 내내 서울 시민이었고, 직주근접을 위해 신도시로 불리는 경기도로 이사하면서 처음으로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에 살게 되었다. 몇 번의 여름과 겨울을 견뎌내고 그럭저럭 낯선 도시의 주변 환경에 익숙해질 무렵 코로나가 발생했고 이후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현세대가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역병의 시대를 거치며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부동산 불패를 진리처럼 믿게 되었다. 그리고 영원할 것 같던 유동성의 잔치가 끝이 났다.


더 이상 수도권역 시민은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아파트에 산다. 사업성 측면에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더 이상 재건축이니 리모델링이 불가능한 구축 아파트에.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지어진 지 20년이 채 되지 않은 집합건물을 구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구축 아파트 단지가 계획적으로 밀집된 지역은 건설 후 수 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신도시라고 불린다. 그 욕망의 끝에 선 사람들은 재건축을 허가받기 위한 안전 진단의 결과로 자신의 집이 곧 허물어질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구조물임을 기대한다. 지어진지 3~40년이 되었더라도 외관만 낡았을 뿐 멀쩡한 건축물에도 으레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어디에나 부실 공사로 인해 좀 더 빨리 노화되는 건물이 있지만 그 모두가 매년 일정하게 낡아가는 것이 아닌데도. 아파트는 주거 생활을 위한 필수재였다가 20년마다 허물고 새로 올린 뒤 가치를 재산정한 후 사고팔기 위한 소비재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 입지가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강남'과 같은 중심지의 그것이라면 사치재가 되려나.


지금의 집은 아니지만 난생처음 아파트로 이사 온 날은 비는 오지 않고 구름만 잔뜩 낀 무척 흐린 날씨였다. 잿빛의 하늘과 아파트 단지의 모습을 기억의 수면 위로 다시 떠올려 보면 마치 체르노빌의 프리피야트 같기도 했다. 공산국가의 인민 주거지. 그곳은 고만고만한 높이의 단조로운 회색 콘크리트 덩어리가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획일화된 거대한 수용 시설이었다. 아파트는 압축 성장을 요구받던 시대의 맥락과 한국의 지형 특성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나타났고, 높은 편의성과 환금성으로 인해 가까운 미래에도 계속 선호될 주거 형태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안에 많은 우리들이 있다. 저마다의 삶이 흐르고 있다. 도로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우거진 나무가 산책로 위로 가지를 드리운다. 사람들은 작은 하천과 단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집으로, 직장으로, 약속의 장소로 걸음을 옮긴다. 오래된 동네의 오래된 단지. 비록 원하던 주거 형태는 아니지만 과거의 구조에 적응하고 오래된 문제의 원인을 찾아서 현재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어떤 물건이든 반듯하게 쓰면 오래 쓸 수 있다는 옛사람들의 말처럼 사람의 손길은 오래된 집을 더 단단하고 안온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매일 고쳐가며 써야 하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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