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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yton Jun 02. 2024

피어나


세상이 딱 적당한 온기와 물기를 머금었나 보다. 작은 녀석들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산호수는 물방울처럼 맺혀 있던 꽃이 어느 순간 꽃잎을 활짝 터뜨렸다. 여리여리한 가지의 마디 사이에 숨여있던 작은 이파리들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린다. 이 주 전쯤 지인에게 어린 담쟁이덩굴을 받았다. 집에 더 이상 화분을 늘리고 싶지 않던 터라 수경으로 기르려고 뿌리를 정리해 며칠 물에 담가 뒀었다. 뿌리가 썩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해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그 녀석마저 물아래에 건강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가는 뿌리가 흰 수염같이 길게 나와서 조금 놀라기도 했다.


종종 출장이나 여행으로 며칠씩 집을 비울 때가 있다. 떠나기 전날 밤에는 단출하게 짐을 챙겨 후다닥 다녀와야지 마음먹다가도 거실을 오가다 발코니를 바라보면 결국 분주해져 버린다. 수분 측정기로 흙을 찔러서 현재의 뿌리 습도를 확인해 본다. 집을 비우는 기간을 녀석들이 버텨줄지 가늠해 보고 그렇지 못한 못한 녀석들은 물을 준다. 환기를 위해 통풍을 목적으로 창문을 잘 열어두긴 하지만 특별히 집안의 습도를 살뜰히 챙기는 편이 아니다. 건조한 대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따로 화분에 분무를 해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우리집의 식물들은 낮은 대기 중의 습기와 화분 속의 물기로만 생존해야 하는 나름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녀석들이라고 볼 수 있다.


식물을 키우고 보살피는 과정을 표현하는데 식집사, 물시중이라는 말이 생겨났더라. 표현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위계 관계가 느껴져 어색하다. 주거 활동에서 상태의 확인은 일상적인 돌봄이고, 어느 시점에는 녀석들이 시들해질 수도 내가 지겨워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런 환경에서 생존한 녀석들이 보여준 생명력에 작은 경이와 고마움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너무 덥거나 춥지 않게, 물이 바싹 마르지 않게, 먼저 지치지 않을 만큼의 관심과 애정을 줄 것이다. 곧 서쪽 창 너머로 강한 해가 들이칠 테니 아침 출근길에 블라인드를 내려주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여름의 초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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