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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yton Jun 07. 2024

나무 수저와 계란

나무 수저와 스테인리스 수저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간단한 조리 위주의 음식을 해 먹긴 해도 요리 과정에서는 나무 도구가 편하다. 음식의 재료와 조리 방식에 맞는 그릇이 있듯 수저도 마찬가지다. 마찰력이 있는 나무 수저가 음식을 담거나 집기에 편리하고 심미적으로 잘 어우러질 수 있다. 나무 수저나 조리 도구는 플라스틱이나 금속 소재에 비해 그립감이 좋고 용기의 표면을 스크래치로부터 보호하기엔 유리하지만 두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습기에 취약하다는 점과 이로 인한 세균 번식이다. 언젠가 서랍 깊숙이 넣어둔 나무 주걱과 대나무 김발에 곰팡이가 핀 적이 있다. 게다가 카레와 같은 색과 향이 강한 음식을 하고 나면 냄새와 색이 그대로 밴다.


나무 수저와 조리 도구, 도마는 재료 손질을 몰아서 해치운 날 열탕 또는 열풍 건조로 소독해주고 있다. 끓는 물에 담가 놓는 건 아무래도 나뭇결을 갈라지게 만드는 요인이라 보통은 빠른 세척 후 소독기에 넣어 건조하는 편을 선호한다. 수년 전 부피가 큰 채소 커팅을 위해 편백나무 도마를 구매했을 때 가족 모두가 위생 관리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했지만 도마는 특유의 향과 더불어 깨끗하게 잘 버텨주고 있다. 물론 주 1회 사용과 당일 소독이 지속가능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이겠지만 훨씬 손이 많이 가는, 길이 28cm의 작은 데일리 도마는 이렇게 사용한 지 벌써 10년도 훌쩍 넘었다. 칼이 나무에 닿았을 때의 경쾌한 소리나 표면을 살짝 파고들어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 작용이 주는 심리적인 안정감이 좋다. 칼질에 집중하는 동안은 잠시나마 명상 상태가 되기도 해서 손목이 허락해주는 때까지는 이 순간을 즐길 것이다.


계란을 삶을 때마다 나무 조리 도구의 손잡이 부분을 1분 정도 담가 둔다. 평소 나무 수저를 말릴 때 손잡이 부분을 아래로 세워 두는데 끝 부분이 물기를 오래 머금고 있거나 습도가 높은 날엔 말리고 나서도 축축한 냄새가 났다. 계란을 삶는 물에는 굵은소금과 식초가 들어가기 때문에 아주 적절한 소독액이 된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수저를 거꾸로 잡고 작은 노를 젓듯이 계란을 굴려 준다. 이렇게 잠시 담갔다 빼면 계란의 노른자는 중앙에 예쁘게 자리 잡게 되고 나무 수저의 손잡이는 5분도 안되어 뽀송해진다. 마지막으로 물을 버리기 전 잠시 수세미를 집어넣었다 물을 털어 말려 준다. 끓인 물 0.5리터로 얻을 수 있는 효용은 생각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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