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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 Nov 28. 2024

가을이 일기 16

매일 새벽, 뒷산을 산책하는 시골 사는 웰피츠 일기

눈 눈 눈 2     


견생 처음 보는 폭설이다.

눈이 오고 또 오고 또 왔다.

콩엄마랑 하루에도 몇 번씩 마당에서 신나게 뛰어놀았다. 

    


어제 작은 집사가 큰 화분에다 란타나 꽃을 파서 심어 거실로 가지고 들어갔다.

나도 도와주려고 옆에서 열심히 화단을 파줬다.  

  

그다음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것은 다 란타나 나무 탓이다.

큰 화분 두 개를 주문했는데 하나가 깨져 와서 며칠을 더 기다리며 란타나는 커다란 비닐 옷을 입고 있었다.

‘저러다 얼어 죽으면 어쩌지? 눈이라도 오면 큰일인데…….’

하더니 말이 씨가 된다고 란타나가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눈이 내리기 시작한 거다.

란타나 탓 맞다.

다 니 탓이라 란타난가?     


어제는 오후 내내 집사들이 집 앞에 눈을 친다고 끙끙대더니 아침이 되니까 도루묵으로 다시 눈이 치운 만큼 쌓였다.

우리는 이틀째 눈 때문에 산책도 못 가고, 큰 집사네 집까지 눈 담이 높게 쌓인 좁은 길을 왔다 갔다 하면서 놀았다.


갑자기 우두둑 우두둑하면서 소나무 가지가 부러지기 시작했다.

삼촌집사가 소나무를 구하겠다고 가지 위 눈을 치우는데 젖은 눈이라 잘 안된다고 구시렁거린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차고를 구해야 한다고 차고 위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집 지어준 사장님이 전화하셨는데, 혹시 모르니 차고 위 눈을 좀 치우면 좋겠다고 하셨단다.

우리까지 총동원해서 차고 위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는 뛰어다니면서 눈을 다져주는 역할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눈을 치우던 삼촌집사가 갑자기 콩엄마를 안아 올리더니 눈 위에 던졌다.

콩엄마는 다리가 짧아서 허우적거리며 눈에서 헤엄쳐서 나왔다.

나도 던졌다.

나는 다리가 기니까 뛰어나왔다.

이거 아동학대 아니냐?

개르신 학댄가?     

‘눈 오는 날이 거지 빨래하는 날’이라면서 큰 집사가 갑자기 나한테 막 눈을 묻혔다.

그럼 내가 거지냐?

지금 빨래하는 거였어?   

  

하늘에서 별님들이 만든 꽃이 눈이다.

눈꽃님들이 와서 우리가 너무 즐거워하니까 샘이 나서 그런 거 같다.


넓은 차고 위 눈을 치워서 쌓으니 집이 묻힐 거 같다.

'내가 눈 동굴이라도 만들어 줘야 하나?' 고민하는데  

   

콩엄마는 분풀이로 눈 위에다 대빵 큰 똥을 쌌다.     



ai가 그려주는 가을이 마음



ai가 들려주는 가을이 노래

               

# 에필로그   

  

눈이 오고 또 온다.

산도 길도 다 지워져 온 세상이 하얗다.

어릴 적 고향에서 만났던 많은 눈 이후로 수십 년 만에 처음이다.


하얀 눈밭에서 뛰어놀던 추억이 소환되어 잠시 분위기 잡아보지만 시골 살이 할 일이 많아졌다.

눈을 맞으며 마당과 집 앞 눈을 치우고 치웠다.     

30센티가 넘게 쌓인 젖은 눈이 너무 무거워 눈삽으로 밀 수가 없다.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삽으로 대충 치우고, 또 눈삽으로 밀고하면서 눈을 치웠다.


그렇게 힘들게 치운 눈이 아침에 깨어보니 다시 30센티가 쌓였다.     

사장님이 전화하셔서 물기 많은 눈이 평방킬로미터당 100킬로 무게로 무거워져 차고 위만  몇 톤의 눈 무게가 나온다며 혹시 모르니 차고 위 눈을 치우는 게 좋겠다 한다.     

갑자기 차고 구하기에 나섰다.

차고 위 눈을 모아 마당 가운데 쌓았다.  

   

그 와중에 콩, 가을이는 해맑은 표정으로 좁은 눈길사이를 뛰어다니며 신나 있다.

대문 계단 위 쪽문사이로 고개를 쏘옥 내밀고 길가에 눈을 치우는 언니를 보기도 하고, 눈 무게로 가지의 반이 부러져버린 소나무를 구하겠다고 눈을 털어내고 있는 아들 옆으로 달려갔다가 눈벼락을 맞기도 한다.

아들은 콩이와 가을이를 하나씩 들어 눈더미 속으로 던지고, 다리가 짧은 콩이는 한참을 헤엄을 치듯 허우적대다 눈 더미에서 탈출한다.  


함께 눈을 치우다 말고 언니는 가을이를 목욕시킨다며 눈을 뭉쳐 몸에 비비자 가을이가 화들짝 놀라 달아난다.    

 

생각해 보니 어렸을 적, 한 번도 눈을 치워본 기억이 없다.

1미터 가까이 눈이 내린 적도 있었는데 일어나 보면 언제나 옆집까지 그리고 찻길까지 눈은 늘 치워져 있었다.

길을 내기 위해 눈을 옆으로 치우면 길 옆 눈이 높게 쌓여 내 키를 훌쩍 넘기기가 일쑤였다.

그럼 또 그 길을 미로처럼 즐기며 뛰어놀면 된다. 

    

생각해 보니 부모님은 꽤 넓었던 집 앞 텃밭일도 눈 치우는 것도 한 번도 자식들에게 시키지 않으셨다.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자랐다.


몇 십 년 만에 만난 폭설에 쌓인 눈을 치우다 허리가 아파 하늘을 보니 차가운 눈송이들이 눈으로 날아든다.

그 눈송이들은 다정한 사랑표현은 없으셨지만 부모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말하고 싶어 하늘에서 이제야 보내온 한 줄 편지처럼 느껴진다.


부모가 되어서야 조금은 알 것 같은 부모님 마음.

폭설에 갇힌 오늘.

눈을 치우다 부모님을 그리워하게 될 줄 몰랐다.      


         

내가 여기서 이걸 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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