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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어 May 05. 2017

KPI, 아 쫌!!(2)

구조가 과학적이고 측정이 용이하면 뭐 합니까? 회사는 실전인데.

그러니까 지난 번에 KPI 하나를 설계해서 던진 이야기 까지 했었나요? CS팀에서 생각없이 던진 지표에 영업사원들이 맞아죽는 참사를 막아보겠다고 말입니다. 


성과지표, 생각 없이 만들면 사람 잡습니다. (링크)


뭔가를 만들어서 보고하는데도 요령이 필요합니다. 대뜸 이걸 결재라인을 태워버리면 팀장은 승인해 줄 생각도 없는데 그 위로 줄줄이 구경하게 된다거나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회사 전산이 어떻게 만들어져 있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그렇다고 이런걸 구두로 보고하려고 들면, 돌아올 대답이 그리 좋지가 않습니다. 


"일단 뭔 소린지 모르겠고, 니 일이나 잘 하면 안될까?"


여기서 끝나면 다행이겠지만 다음 말이 나오면 골치 아파집니다. 


 "그건 그렇고, 지난번에 시킨건 다 했어?" 


그래서 이런건 이메일로 보고를 합니다. 가급적이면 팀장님 퇴근하기 직전에요. 그러면 2~3일쯤 지나서 피드백이 옵니다. 이 때 주의할 점은 죽상을 하고 있던 KPI 담당자를 필히 참조건 수신이건 찍어 놔야 한다는 겁니다. 안 그러면 '이게 나를 제끼려고 들어?' 하면서 원한을 가질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했습니다. 역시나 사흘 쯤 지나니 팀장님한테서 피드백이 옵니다.


"어, 그거 니가 △△(KPI 담당자)한테 보낸거 있잖아? IT부문 전체에 적용 되는거야?"


그럴 리가요. 특정 부서에만 해당되는 거죠. 하지만 여기서 아니라고 하면 아이디어는 킬 당합니다. 그러자고 몇시간 들여서 보고서를 쓴건 아니죠. '우선은 ○○부서와 □□부서에만 적용되고, 나머지부서는 그쪽 업무를 더 파악해서 커스터마이징 해야 한다'고 눙쳐야죠.


"알았어. △△한테 말할게."


앗싸! 통했습니다. 팀장님이 메일만 읽고 보고서는 안 읽으신 것 같다는 의심이 살짝 스치지만 넘어가야 합니다. 여기서 확인하려고 들면 '상사를 가르치려고 드는 몹쓸X"이 되거든요. 전에 그 루트로 한번 갔다가 회사생활이 많이 피곤해졌거든요. 


이런건 나중에 실무자랑 조정하면서... 어? 그런데, 잠깐! 뭘 말한다는 거죠? 이거 이대로 가면 내가 상사 통해서 남의 업무에 간섭질 하는 모양새가 되는데???


"메일 같이 받았으니까 담당자가 알아서 판단하지 않을까요? 있다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그래? 그럼 그러던가."


휴~ 순간 아찔했습니다.


사실 남의 업무에 대해서 보고서 쓰는건 잘 하는 짓이 아닙니다. 정석은 담당자에게 이런저런 대화에 섞어서 아이디어만 주는겁니다. 이번 보고서질은 위에서 떡고물 좀 떨어지기를 바라는, 그야말로 속 들여다 보이는 짓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서 위에서 찍어 누르는 모양새가 나오면 그 날로 △△와 저는 한 상사를 모시고 살 수 없는 불구대상사의 원수가 되는 겁니다. 다행히 잘 넘어는 갔네요.


그리고 나서 며칠이 더 지났습니다. 여전히 KPI 담당자는 피곤해 하고 있습니다. 보고서 건으로 살짝 운을 띄워 보니 바로 반응이 나옵니다.


"그거 보기는 봤는데, 회사 프로세스상 측정이 안되네. 그것만 되면 이대로 밀어넣으면 되는데, 그게 안되니 방법이 없어. 일이 더 많아져."


읽긴 읽었고, 이해도 했더군요. 하지만 못 써먹겠다네요.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만들어 놓은 지표는 CS팀으로 접수되는 고객불만을 기준으로 해결시간을 측정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1) 그런데, 현장에서는 고객 불만의 접수 경로가 한둘이 아니었던 겁니다. 장기 거래를 하는 고객들은 담당 영업사원에게도 접수를 합니다. 심지어는 유관부서로 직접 연락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측정이 안 되거든요.2)


요약하면 이런 겁니다. 


구조상으로는 이게 과학적이고 측정도 용이하게 생겨 먹었는데, 현재의 회사의 업무 프로세스에는 안 맞는 겁니다. 결국 회사는 실전인 거죠.(크흑, 인생만 실전인 줄 알았는데..) 뭔가를 기획한다고 하면서 회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을 염두에 두지 않은게 잘못이었어요.


그래서 보고서는 어떻게 됐냐고요? "짬" 됐죠, 뭐. 하지만 KPI를 둘러싼 시트콤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회사는 실전"이 남아 있었거든요. (계속)




- 주석 - 

1) 문제의 KPI 산식

"고객 불편 지속시간 = 누적 고객 불편 시간 / 누적 고객 서비스 시간 
                         = ∑(불편 발생 고객 수 × 불편 지속 시간) / ∑(고객 수 × 서비스 시간)
                         = ∑{불편 발생 고객 수 × (불편 해결일 - 불편 신고일)} / ∑(전월 말
                               고객 수 × 영업일) × (총 영업일 × 24 × 60 × 60)" 
 
※ 초 단위로 측정 

2) 뒤집어 말하면 CS팀이 VOC를 다 집계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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