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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현 Feb 06. 2019

많이 늦었지만, 2018년 회고

안 하는 거보단 늦는 게 낫겠지

 연말이나 새해에 그다지 큰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던 것 같다. 해가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지도 않고, 사람은 더더욱 바뀌지 않는다는 걸 이젠 알 나이가 됐으니까. 그럼에도 새해를 빌어 새삼스레 작년을 돌이켜 보는 '반성적 인간'이 되어보는 건 그리 나쁘지 않다. 책도 한 번 더 읽을 때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듯, 인생도 한 번 더 곱씹어볼 때 살 맛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2018년에는 그래도 좋은 일들이 더 많았다.


1.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썼다.


 올 한 해 브런치에 업로드한 글을 세어 보니 15개다. 매주 위클리 매거진을 쓰시는 브런치의 다른 작가님들과 비교하기엔 부끄러운 수준이다. 그럼에도 2018년은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뭔가를 쓰려고 노력했던 한 해였다.


 연말에는 브런치를 통해 외부 매체 기고를 제안받았고, 당연히 수락했다. 올해부터 시각예술 플랫폼인 <아트 렉쳐>(https://artlecture.com)에 매달 하나씩 전시, 예술, 사진 등에 관한 글을 쓰기로 했다. 어떻게든 최소 12개의 글은 써야 한다. 친한 친구가 “의지는 돈을 주고서라도 사는 거야!”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난 공짜로 의지를 산 셈이니 큰 이득을 봤다.  

 

 나한테 글은 일종의 그물이다. 미끄덩, 손아귀 사이로 빠져나가기만 하는 세상의 지식과 정보, 인상들을 잡아 내기 위한 그물. 그간 궁금증을 채우기 위해 보고, 읽고, 듣는 건 많았다. 하지만 미약한 지성 탓에 시간이 지나고 남은 건 먼지 쌓인 책, 모서리가 닳은 전시회 팸플릿, 더 이상 꺼내보지 않는 스크랩북 같은 것들 뿐이었다. 내 글은 나처럼 아직 성기고 엉성해서 보잘것없는 단상들만이 가득하지만, 앞으로는 좀 더 촘촘하고 질긴 그물이 되길 바라본다.


출처 : Pixabay


2. 회사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회사를 퇴직했다. 25살에 입사해 3년 반 동안 다닌 첫 회사였다. 작년 연초부터 다른 곳에서의 가능성을 모색했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좋은 기회가 왔다. 운도 좋았고,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퇴사할 때 동료와 지인들로부터 "회사에 불만이 있었냐"는 질문을 숱하게 받았고, 항상 아니라고 대답했다. 돌이켜 보니 대답이 조금 정확하진 않았던 것 같다. 불만이 없었던 건 아니다. 어느 직장인이던 회사에 단 하나라도 불만이 없을 수 없다.


 그럼에도 내가 그렇게 대답했던 이유는 좋은 점이 10 정도였다면, 나쁜 점은 1 정도에 불과한 회사였기 때문이다. 내가 회사에 기대했던 많은 것들을 채워주는 회사였다.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그 1 때문에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솔직히 난 소속되어 있는 곳을 자발적으로 박차고 나온 경험이 거의 없다. 학창 시절 학원도 한 번 다니기 시작하면 수업이 별로여도 최소 3년은 다녔다. 일종의 의리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지만, 대부분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건 늘 버거운 도전으로 느껴졌고, 매번 안락한 지금에 안주했다.


 이직을 결정한 건 그래서 내게 단순히 회사를 옮기는 것 이상의 의미였다. 그동안 하지 않았던 아니, 하지 못했던 선택을 한 거니까. 새로 다닐 회사에 대해서도 완전한 확신은 없다. 가서 정말 잘할 수 있을지, 동료들은 잘 맞을지 내심 걱정도 된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곳에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은 무엇이고 앞으로의 커리어는 어떻게 쌓아야 할지 좀 더 알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기대된다. 벌써 난 조금은 변한 것 같다.


출처 : Pixabay


3. 여전히 사진을 찍었는데 새로운 경험을 했다.



 취미로 사진을 찍은 지 어느새 10년이 되었다. 사진은 내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는 된다. 지난 7월에 친구의 권유로 공모전에 사진을 하나 냈는데 덜컥 동상에 입상했다. 상보다 좋았던 건 현업 사진작가분들이 직접 남겨주신 평가들이었다. 이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사진기를 들고나가는 게 솔직히 귀찮을 때가 많다. 하지만 평가를 읽은 뒤로는 앞으로 10년은 더 찍어야겠다고 맘먹었다.


 부상으로 최신형 액션캠을 받았는데 막상 쓸 일이 없을 것 같아 다른 분에게 팔았다. 그분은 친절하게도 대전에서 우리 집까지 차를 타고 오셨다. 자가용은 지하철 개찰구나 은행 ATM에 비하면 꽤나 안락한 중고 거래 현장이다. 조수석의 편안함에 못 이겨 오지랖이 발동한 나는 그분에게 액션캠을 대체 무슨 용도로 쓰실 거냐고 물었는데, 남극에 가서 사용한다는 황당한 답을 들었다.


 난 순간 요즘 유튜버도 살아남으려면 남극까지 가야 하는구나 싶었지만 그분은 사실 남극 세종 기지에 파견 예정인 과학자였다. 액션캠은 남극의 생태 연구에 활용될 예정이었고. 가도 가도 황량한 설원만 나올 것 같은 남극에서 모든 순간들을 기록해 탐구하겠다는 과학자의 열정에 감탄하면서도, 연구 장비를 사비를 들여 사야 하는 과학계의 팍팍한 현실이 조금은 안타까웠다. 지금쯤 액션캠은 남극에서 열심히 돌아가고 있겠지. XXX님, 가끔 유튜브에도 남극 영상 좀 올려주세요.


 9월에는 대학 동기의 부탁을 받고 웨딩 사진을 직접 촬영했다. 신랑 신부 모두 나와 같은 학과를 졸업하고 2년 전에 독일로 둘이서 유학을 갔다. 유학 전 둘의 약혼식에서도 사진을 몇 장 찍어준 적이 있어, 웨딩 사진을 찍어 달라는 부탁에도 흔쾌히 응했다. 난 열심히 셔터만 눌렀을 뿐인데 사진에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 진심으로 서로를 애정하는 신랑 신부 덕이었다.


입상했던 사진이다. 종로 근처에서 촬영했다.


4.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17년 연말과 18년 초에 2번의 싱가포르 출장을 다녀오면서 ‘실질적인’ 영어 공부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미리 안건이 정해져 있던 사업 논의는 좀 나았다. 진짜 괴로웠던 건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으며 해야 했던 잡담(흔히 얘기하는 스몰토크)이었다.


 상대는 파트너사의 싱가포르인 3명이었고, 한국인은 나 혼자였다. 그들도 나름대로 내게 신경을 써주다 보니 대화의 중심은 어느새 내가 되었다. (원치 않던 전개...) 듣기는 어설프라게도 되었지만 대답하는 게 어려웠다. 탁구도 무릇 핑퐁이 되어야 재미있듯, 대화도 왔다 갔다 하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자꾸 끊어 먹었다. 영어에 신경 쓰다 보니 밥이 잘 넘어 갈리 있나. 하하, 웃으며 맛있다고 먹었지만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한국에 돌아와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전화영어를 우선 그만뒀다. 전화영어를 참 꾸준히 하긴 했는데 오늘 어땠니, 주말은 뭐하니 같은 뻔한 신변잡기 기술만 늘었다. 이러다 발전하기는커녕 퇴보만 할 것 같았다. 그 후 우연히 알게 된 ‘링글’이라는 스타트업의 화상 영어 서비스를 수강하기 시작했다.


 링글은 미국 현지의 대학생들과 40분 간 화상으로 영어 수업을 하는 서비스다. 이것만 보면 다른 화상 영어들과 다를 게 없지만, 24번의 수업 후 분명히 실력이 늘었다. 링글의 장점은 크게 3가지다. 수준 높은 교재, 풍부하고 세세한 피드백, 언제 어디서든 학습할 수 있는 편리한 웹/앱 기반의 시스템. 가격이 저렴한 건 아니다. 한 회 수강에 3~4만 원 선. 그럼에도 새해에 보너스를 받자마자 링글 6개월 치를 가장 먼저 긁었다. 올해도 열심히 해야지.  


지인들에게도 많이 추천하고 있다



 선천적인 게으름 탓에 작년을 회고하는 글을 1달이 지나서야 썼다. 그래도 쓰고 나니까 조금은 후련하다. 이제야 2018년 한 해를 정말 보낸 느낌이랄까. 안 하는 것보단 늦더라도 하는 게 낫다는 진부한 속담을 떠올려 본다. 설날에 이런 말을 입 밖에 내면 꼰대 소리를 들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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