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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현 May 06. 2019

사진의 진화, 현대 사진을 구분하는 몇 가지 특징

 예술을 해석하는 흥미로운 관점 중 하나는 예술을 생물처럼 바라보는 것이다. 모든 생물이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를 거듭하듯이 예술도 시대의 변화와 요구에 맞추어 변화를 추구한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과거나 지금이나 사진을 찍는 기술은 그리 다르지 않다. 그러나 현대 사진은 과거의 사진과는 매우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우리나라도 사진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은 나라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안셀 아담스와 같은 사진계의 고전 거장들은 이미 여러 차례 전시가 이뤄졌다. 반면 현대 사진에 대한 인기는 덜한 편이다. 어떤 예술이던 ‘현대’가 붙으면 난해하다는 심리적 장벽 때문일 것이다. (물론 좀 더 난해하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사진은 다른 예술보다 우리 일상 속에 가장 가까이 있는 예술이다. 조금만 알고 보면 현대 사진만큼 흥미로운 것도 없고, 과거 사진과의 차이를 비교해보면 재미는 배가된다. 현대 사진을 구분하는 몇 가지 특징을 소개한다.   



적극적인 연출


 수잔 손택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상황에 개입하지 않는 활동”이라고 말했듯, 사진에서 연출은 오랫동안 금기시되었다. 연출은 사진이 오랜 기간 숭배했고, 독립된 예술 장르로서 인정받게 만든 ‘리얼리티’를 훼손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사진가는 ‘순간’을 쫓는 사냥꾼이지, ‘순간’을 만들어내선 안 되는 것이었다. 


 키스하는 연인을 촬영한 로베르 두아노의 작품은 사랑의 낭만을 대표하는 사진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후에 이 사진이 연출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분노했다. 그러나 두아노는 사진을 우연히 찍었다고 말한 적이 없다. 사람들이 사랑과 사진을 대하는 태도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이 우연의 산물이라고 쉽게 믿는다는 점이다.   


 현대 사진은 이러한 관행을 부수고 적극적으로 장면을 연출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미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인 신디 셔먼은 스스로 다양한 여성으로 분장해 사진을 찍었다. 그는 이를 통해 미국의 대중문화가 가진 여성에 대한 고질적인 편견을 날카롭게 드러냈다. 


 신디 셔먼의 사진이 가진 힘은 촬영 그 자체보다 촬영의 전 단계, 장면과 인물을 구성하는 연출력과 카메라 앞에서 이를 구현하는 그의 연기에 있다. 전통적인 방식처럼 모델들을 각기 섭외해 찍었다면 이런 사진이 나올 수 있었을까. 이 또한 의미가 없진 않겠지만 흔한 초상 사진의 영역에서 벗어나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의 사진을 차별화한 건 연출이다.  


신디 셔먼의 사진은 종로에 위치한 아라리오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현실을 기록하는 사진의 전통적인 기능은 여전히 강력하다. 그러나 예술의 지향점이 세계의 재현에서 내면의 표현으로 이동했듯, 현대 사진도 세계를 복제하는 수단에서 작가의 내면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변하고 있다. 작가의 생각과 의미를 온전히 담으려면 연출이 필요하다. 몇 없는 우연에 기대어서는 원하는 것들을 다 찍어낼 수 없다. 오늘날 사진가에게 연출이 요구되는 이유다.  


나중에 찍기 


 어떤 전쟁은 한 장의 사진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1차 세계대전은 로버트 카파의 사진이, 2차 세계대전은 유진 스미스의 사진이 떠오른다. 사진은 역사를 중계하는 가장 즉각적이고 빠른 수단이었고, 많은 사진가들이 역사적 사명을 안고 전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티브이와 같은 영상 매체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사진은 그 영예를 영상에 빼앗겼다. 걸프전 때 언론은 전쟁의 전 과정을 거의 실시간으로 송출했다. 깜깜한 밤하늘에서 미군이 발사한 미사일이 쏟아지는 영상이 아직 생각난다.  


 현대 사진가들은 나빠진 처지를 비관하는 대신 정반대의 전략을 취했다. 빠르게 찍는 대신 아예 나중에, 그리고 천천히 찍기로 한 것이다. 그들은 급박한 전쟁의 한가운데가 아니라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 주목했다. 그 사진들은 과거의 전쟁 사진처럼 직관적이거나 충격적이진 않다. 그러나 전쟁이 남긴 상처들을 다양한 은유적인 방식으로 질기게 쫓는다.  


소피 리스텔휴버, <이라크>


 프랑스의 소피 리스텔휴버는 이러한 경향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걸프 전쟁에서 그는 미군의 폭격기가 지나간 이라크의 사막을 촬영했다. 사막의 모진 환경에서도 뿌리를 내렸던 강인한 나무들은 폭격의 강도를 증명하듯 송두리째 뽑혔다. 미처 쓰러지지 못한 나무 한 그루는 마치 대포처럼 하늘을 조준하고 있다. 전쟁 사진이라기엔 무미건조하고 관조적이라고 혹자는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난자한 혈흔, 급박한 전투 장면이 전쟁의 전부는 아니다. 전쟁의 폭력성은 때로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서 명징하게 드러난다.    


스냅 사진, 아주 솔직한 


 현대 사진의 또 다른 흐름 중 하나는 가까이에 있는 가족, 친구, 나아가 작가 본인을 적극적으로 프레임에 담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촬영 방식은 우리들이 늘 찍는 스냅사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현대 사진가들이 포착하는 주제는 우리의 사진과는 분명히 다르다. 


 미국의 소설가 제임스 설터는 우리에게 2종류의 삶, ‘사람들이 생각하는 당신의 삶’과 '다른 하나의 삶’이 있다고 쓴 적이 있다. 우리는 아름다운 추억이 될 법한 전자의 삶을 주로 찍는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반면 사진가들은 때론 인정하고 싶지 않은 후자의 삶을 집요하고 솔직하게 담는다. 설터는 이렇게 덧붙인다. “문제가 있는 건 이 다른 삶이고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것도 바로 이 삶이다.”  


 미국의 낸 골딘은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약물 중독자 등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에 해당하는 자신의 친구와 지인들을 촬영한 사진으로 20세기 후반 큰 명성을 얻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촬영한 셀프 포트레이트 작업 또한 많이 했다. 이 작업은 지난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이스트빌리지 뉴욕, 취약하고 극단적인>에서 소개된 바 있다.  


낸 골딘의 자화상 시리즈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듯 양쪽 눈에 심한 멍이 든 골딘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렌즈를 응시한다. 이는 골딘이 실제 3년 간 만난 남자 친구 데이비드에게 폭행을 당한 후 촬영한 사진이다. 오른쪽 맨 아래의 다른 사진을 보자.이별을 망설이는 걸까. 달리는 차에서 창 밖을 응시하는 그는 담담해 보이는 동시에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어떤 이들은 삶을 파괴하는 폭력 앞에서도 연인을 쉽게 떠나지 못한다. 


 낸 골딘의 사진은 그의 자전적인 삶을 찍었을 뿐 촬영 기법도 특별할 것이 없다. 어떤 사진은 흔들렸고, 구도도 깔끔하진 않다. 그럼에도 그의 사진은 관객들에게 보편적인 주제, 예를 들면 사랑, 섹스, 가정 폭력과 같은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골딘은 설터가 말한 '문제가 있는 다른 삶'을 가장 솔직하게 응시한 작가다. 이처럼 현대 사진가들은 스냅 사진의 기법을 차용하는 동시에 분명한 주제 의식을 담아냄으로서 새로운 시각적 지평을 대중들에게 선보인다.  




  21세기는 바야흐로 사진의 시대다. 인스타그램에 매일 업로드되는 사진만 9,500만 장이니, 사진은 이미 일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로서의 사진, 특히 현대 사진은 아직 조금은 낯설다. 하지만 몇 가지 흐름들만 이해한다면 현대 사진은 다른 어떤 예술 장르보다 재미있다. 앞으로 좀 더 많은 현대 사진들이 국내에 소개되길 기대한다. 



참고한 책들

1) 수잔 손택, <사진에 관하여>

2) 샬럿 코튼, <현대 예술로서의 사진>

3) 제임스 설터, <가벼운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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