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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 Apr 08. 2024

키보드를 샀다. 고로, 이제 글을 써야 한다.

소비는 날 움직이게 한다

키크론 K1 SE, 팬터그래프와 기계식 키보드를 합쳐 놓은 듯한 비주얼이 인상적이다. 


얼마 전 키보드를 샀다. 


적당한 기계식 키보드를 장만하기 위해 오랫동안 조사했다. 기계식 키보드라 하면 청축, 갈축, 적축 중에 1개 고르면 끝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그레이축, 라임축, 피치축 등등... 무슨 축이 그렇게 많은지. 유튜브에 검색해 들어보면 크게 차이도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일렉트로마트에 가서 타건 해보고 적당한 걸로 샀다. 꽤 비쌌지만, 이걸 사면서 행복했으니 됐다. 그리고 구입하면서 다짐했다. 앞으로 글을 정말 열심히 쓰겠다고. 


집에 도착해 컴퓨터와 연결하고 이것저것 열심히 쳐봤다. 오랜만에 한컴타자연습(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도 해보고 메모장을 켜서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써 내려갔다. 내 손의 리듬에 맞춰 흐르는 오도도독하는 소리. 화면에 생기는 단어들은 특별하지 않았지만, 내 손이 만들어내는 소리들은 왠지 나를 더 멋지게 만들어주는 듯했다. 그 소리가 더 듣고 싶어서 늦게까지 일을 했다. 키보드를 샀더니, 일이 즐거워졌다. 


그래서 난 그날 밤, 또 키보드를 샀다. 



해외 직구로 산 키보드. 귀여운 마리오 키캡으로 교체했다.


이번엔 기계식 키보드를 떠올리면 일반적으로 생각나는 비주얼을 지닌 키보드를 샀다. 정말 열심히 검색해 보고, 가성비 키보드로 유명한 제품을 해외 직구로 구매했다. 2주가 넘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직접 만난 키보드는 그 기다림을 가치 있게 만들어줬다. 


언박싱을 하자마자 나는 미리 사둔 키캡으로 교체했다. 아주 귀여운 노란 마리오 키캡이다. 타자를 칠 때 키보드보다는 화면을 더 많이 보지만, 왠지 귀여운 키캡을 껴야만 할 것 같았다. 이전에 산 로우 프로파일 키보드보다 타건 위치가 훨씬 높아 적응하는데 쉽지 않았다. 하지만 키감이 아주 쫜득하니, 없던 영감도 마구마구 샘솟는 듯했다. 진짜 영감이 맞는지는 나중에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기계식 키보드는 처음이지만, 나의 키보드 사랑은 아주 오래전부터였다. 이전에 갖고 있는 키보드만 해도 예닐곱 개가 넘는다. 그럼에도 나는 또 키보드를 샀다. 부끄럽지만, 글을 열심히 써보기 위함이라고 핑계를 대본다. 기계식이든 일반 키보드든, 다 똑같은 역할을 하는 친구들이지만 NEW라는 느낌이 주는 활력은 강하다. 그 활력이 나를 다시 컴퓨터 앞에 앉게 만들었다. 그리고 글을 쓰고 싶게 만들었다. 


키보드를 결제하기 전, 다짐했던 나의 마음이 언제까지 갈진 모르겠다. '이 키보드 할부가 끝날 때까지 나는 글을 쓰겠지..?'라는 의심 섞인 우려가 들긴 하지만, 미래의 나를 조금은 믿어보겠다. 좋은 핑계를 만들어 행복한 소비를 했으니, 이 핑계가 두 번은 이용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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