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609
산탄은 작은 탄알이 우수수 퍼져 나가는 탄이다. 가까운 거리에서 효과적이며, 산탄총·샷건의 대표적인 탄종이다. 그에 비해 기총소사는 하늘에서 비질하듯 기관총을 쏟아붓는 일이다. 올해 나는 이 두 개념을, 그것도 교과서가 아니라 몸으로 다시 배웠다.
올해 매실이 유난히 풍년이다. 지난해 백 킬로쯤 땄는데 올해는 셋은 더 나올 기세다. 원래는 천천히 딸 생각이었지만 악양에 들어서자 이미 여기저기서 ‘매실 전투’가 벌어진 중이었다. 도시인들도 한몫하고 있었다.
편이 바위 밭에서 매실을 따는 동안 나는 위에서 풀을 뽑았다. 예전엔 그늘 하나 없던 밭이었는데, 이제 나무들이 부지런히 자라 살림살이가 달라졌다. 그늘은 늘고, 잡풀은 더 늘고, 벌레는 더더욱 늘었다.
해가 질 무렵, 밑의 바위 밭으로 내려갔다. 매실 포대를 옮기자는 편의 부름 때문이었다. 10킬로짜리 그물망 18개를 옮기던 중 매실나무 가지가 목덜미를 스쳤는데, 거의 정리해 갈 때쯤, 오른쪽 목이 스멀스멀했다. 무심코 손을 대었더니 털북숭이 쐐기가 잡혔다. 반사적으로 내동댕이치고 밟아버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 방 맞았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날 보니 그건 산탄총도 아닌 산탄 포였다. 목의 절반이 벌집이었다.
앵두는 잘 익었으나 시간이 없었다. 떠나기 직전 몇 알이라도 따려 얼굴을 잎 속에 들이밀었다. 앵두나무는 잎이 워낙 무성해 열매는 잎 뒤에 숨어 있었다. 그 순간 오른쪽 눈 아래가 뜨끔했다. 모기의 정확한 정조준, 명중. 붓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앵두는 한 알씩 입에 넣어 먹어야 제맛이라는 걸, 몇 해를 거르지 않고 앵두를 먹어 본 뒤에야 알았다. 한 움큼 넣어 먹으면 맛이 덜하다.
절반도 못 따고 부산 집으로 돌아왔다. 떨어진 앵두보다 붙어서 기다리는 게으른 놈들이 조금은 우리 몫이 되길 기대할 뿐이다.
씨로 심었던 호박은 두 포기만 살아남았다. 쪼아 먹는 새 탓을 하고 싶었지만, 씨앗 탓, 아니면 내 탓일 가능성이 더 크다. 결국 모종을 사다 심었다. 잘 자란다. 대신 잘 자라는 풀과 잘 활동하는 벌레도 함께였다.
벌레에 물리지 않으려고도 조심했지만, 이런 오른쪽 목이 또 뜨끔. 이번엔 딱 ‘한 방’이었다. 자기들 서식처를 건드린다고 풀벌레가 단호히 일격을 가한 듯했다. 기총소사는 아니고, 분명 정조준 사격이었다. 붓는 범위가 자꾸 넓어지는 걸 보니 모기는 아닌 듯했다. 화력으로 따지면 소총, M16 정도는 됐을 것이다.
‘매실나무 공격’은 산탄 포에 가까워 벌집이 되었으며, ‘앵두나무 공격’은 저격수 솜씨로, 눈 아래가 다래끼처럼 부어올랐다. 종강 후인지라 여러 사람 앞에 나설 일이 없다. 그나마 다행이다. ‘호박밭 공격’은 단발 사격이었지만 피습 범위가 점점 확대되었다.
편은 병원 가라고 성화였지만, 나는 약만 바르고 버텼다. 편이 오이를 얇게 썰어 붙여주니 표가 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긁고 싶은 곳을 참느라 고생했다. 눈 아래는 긁지도 못하고, 목은 참다 말다 긁었고, 자다가도 가끔 긁었고….
세 곳의 피습 부위만 신경 쓰느라 다른 가려움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그러다 샤워 후 거울을 보니 깨달았다. 나는 이미 여러 전선에서 패전한 군인이었다. 몸 곳곳에 크고 작은 탄흔이 부지기수였다.
전원생활은 벌레와 함께하는 삶이라 이미 각오한 일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벌레 자국을 달지 않은 적이 없지만, 올해처럼 마음먹고 김매기에 매달린 해에는 유난히 ‘영광의 상처’가 많다.
장마는 오지도 않았다. 본격적인 벌레의 계절은 이제 막 문턱을 들어섰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