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ONA Jul 26. 2022

로바니에미 하얀 숲 속에서 보낸 마지막 시간의 기록

눈사람 만들기, 핫초코와 스모어, 사우나

로바니에미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니만큼 꼭두새벽부터 일찍 일어났다. 억지로 일찍 일어나려던 것은 아닌데 저절로 눈이 떠졌다.  벽난로에 넣어둔 은박지에 싼 감자를 꺼냈다. 열기가 은근히 남아있는 은박지를 벗겨내고 호호 불며 감자를 까먹었다. 불에 구운 감자는 참 맛있었다.



남편이 장작불에 마쉬멜로우를 구워 스모어를 해주었다. 냠냠 먹고 배를 좀 채우고 나서 사우나를 하러 갔다. 뜨겁게 달군 돌에 물을 끼얹으니 금방 사우나 안은 뜨거운 증기로 가득찼다. 땀을 쭉 빼고 방 안에서 쉬다가 패딩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섰다. 아직 밖은 어두웠다. 하늘이 푸르스름하니 막 여명이 차오를 때 같았다. 우리는 숙소 앞에다가 작은 눈사람을 하나 만들었다. 핀란드에서 꼭 해보고 싶었다.




눈사람 만들려고 장갑도 챙겨 나왔다. 두근두근 기대하며 눈을 만져 보았는데 내가 생각하던 그런 눈이 아니었다. 눈이 무척 퍼석퍼석해서 잘 뭉쳐지지가 않았다. 뭉쳐져야 눈사람을 만들텐데, 고민하다가 물을 부어서 눈을 좀 굳힌 다음에 눈사람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어릴적에 놀이터에서 흙에다가 물을 붓고 집을 만들고 동그란 공도 만들었던 기억이 언뜻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빈 페트병에 물을 담아다가 눈에다가 부어서 뭉쳤다.


어찌저찌 힘겹게 눈사람 머리를 겨우 만들어 냈다. 몸통은 도저히 만들 자신이 없어서 눈을 긁어 모아 쌓아서 만들었다. 제법 눈사람 형체 같아 보이고 나서는 눈과 코를 만들어 주었다. 눈은 블루베리 코는 방울토마토. 방울토마토는 작은 나뭇가지에 꽂아 눈에 박아 넣었고, 눈쪽은 슥슥 손가락으로 작은 구멍을 내어 블루베리를 얹어 놓았다.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팔도 만들어주고 내 털모자를 머리에 씌워주니 귀여운 눈사람이 완성되었다.



눈사람을 만들고 나서 하얀 눈밭 위에 눈의 천사도 만들었다. 눈밭 위에 철푸덕 누워서 팔과 다리를 휘저으면 완성! 눈으로 하는 모든 것들이 다 재밌었다. 내 어릴적에도 눈이 내리고 쌓이면 이리 정신없이 놀았던 것 같다.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고 눈을 밟으며 뛰어다니고. 어른이 되어서 이 머나먼 곳 핀란드 로바니에미에 왔더니만 어릴적 꼬꼬마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눈사람을 만들고 나서 잠깐 숙소 안으로 들어가 추위를 녹였다. 밖은 아직 새벽 기운이 낭낭해서 푸르스름했다. 숲속은 쥐죽은 듯이 고요했다. 우리는 다시 땀을 빼러 사우나 안으로 들어갔다. 숙소 안에 사우나가 있으니 원할 때마다 언제고 마음껏 사우나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더우면 밖으로 나가서 눈과 함께 놀고, 추우면 안으로 들어와서 사우나를 하며 놀고.




사우나를 하고 나서 우리는 다시 하얀 숲 속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눈은 내 무릎 아래 정도까지 깊게 쌓여 있어서 걷기가 힘들었다. 저벅 저벅 한발자국씩 조심스럽게 숲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미리 설치해둔 삼각대에 매달린 핸드폰에 신호를 보내고, 찰칵찰칵 사진을 찍었다. 

로바니에미에 와서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집에 있던 은방울꽃 부케를 들고 왔다. 핀란드의 국화가 바로 이 은방울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같이 기념 사진을 남기고 싶었다. 은방울꽃 부케를 들고 우리 둘 젊은 날의 시간들을 사진으로 남겼다. 



우리가 만들어둔 눈사람에게 씌운 모자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모자가 더 얼어버리기 전에 눈사람 모자를 벗기고 안으로 가져갔다. 모자를 잘 펼쳐 두고 말리고 남편은 나를 위해 다시 마시멜로를 장작불에 굽기 시작했다. 스모어도 해먹고 이번에는 따뜻하게 탄 핫초코 위에도 올려먹기로 했다.





지글지글 잘 구워낸 마시멜로우를 과자 사이에 넣고 작은 초콜릿 조각을 더해 꾹 누른다. 그럼 달달 바삭 간식 스모어 완성. 따뜻한 핫초코에도 구운 마시멜로우 두 덩이를 넣었다.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달달한 마시멜로우와 쌉싸래한 핫초코, 맛있었다. 근사한 설경을 두고 먹으니 더 맛있었던가?


눈사람 모자를 벗겼더니 꼭 대머리가 된 것 같아 보였다. 머리가 저렇게 물방울처럼 뾰족했었나? 뭔가 엉성했던 우리들의 눈사람. 그래도 창밖으로 보이는 눈사람이 너무 귀여웠다. 우릴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숙소를 떠나기전 진저와 브래드가 보고 싶어서  밖으로 나왔다. 노바 스카이랜드 호텔에 있던 순록 두 마리. 이름이 진저 그리고 브래드였다. 누가 진저고 누가 브래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주 보니 익숙해진 두 친구들. 잘 있어라 순록들아!



남편이 핀란드의 기운이 담긴 눈을 가져간다며 슬리퍼를 쫄래쫄래 신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숙소 앞 눈밭에서 열심히 눈을 텀블러 안에 퍼 담았다. 아마도 한국 집으로 돌아가서 눈 녹은 물에 술을 타 먹을 심산인 것 같았다. 슬리퍼를 신어서 발이 시린텐데도 열정적으로 열심히 눈을 퍼 담았다.




캐리어를 바리바리 싸고 이제 눈앞에 보이는 하얀 숲에 마지막 인사를 하고 체크아웃을 하러 프론트로 갔다. 우리는 로바니에미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헬싱키에 들렀다가 인천으로 간다. 호텔에 부탁해서 공항까지 가는 택시를 불렀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이윽고 택시가 도착했는데 기사 아저씨가 참 선한 인상을 가지고 계셨다.



로바니에미 공항으로 가는 길에 택시기사 아저씨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기사 아저씨는 공군으로 일을 오랫동안 하다가 은퇴를 했거 택시를 시작한지  두달밖에 안되었다며 웃었다. 우리가 로바니에미에 결혼 1주년 기념으로 왔다고 하니 한껏 축하를 해주셨다.


택시에서 내릴 때 기사 아저씨가 우리 둘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앞으로 펼쳐지는 우리 인생에 평안과 행복이 가득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그리고 또 다시 로바니에미를 방문해 달라고. 그 이야기를 듣고 공항 안으로 들어갔는데 우리 둘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잊지 못할 핀란드 로바니에미.


매거진의 이전글 로바니에미에서 즐긴 저녁식사와 장작불에 구워만든 스모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