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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경덕 Feb 08. 2024

안목

  안목

나이가 들어갈수록 외골수 논리에 쉽게

빠져든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그 나이에 벌써 들어서 있다. 젊은 세대가 우리 같은 세대를 항하여 "꼴통 보수"라고 하는 그런 나이이다

기분 나쁜 용어이지만 한번 되씹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어떻게 생존해 온 민족인가?

우리가 어떻게 번영시켜 온 이 나라인가?

이 말은 우리 세대 모두가 간직하고 있는 우리들만의 자부심이고, 자랑이고, 노래다.

그러나 이 자부심이 너무 멀리 가면 위험하다.

노랫소리가 너무 높아지면 외로워진다.

가다가 부르다가 한 번쯤은 돌아다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진영논리, 세대 간이나 지역 간이거나 소득 간 등, 에 갇혀버린 습관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자기 진영의 생각만 더 크고, 더 강하고, 정의롭다고 부르짖는 외골수에 빠져있다.

얼마 전 대학 동문인 왕년의 축구스타 차범근의 행적이 동기 카톡방에 오른 적이 있다. 이 동문의 행동을 비난하는 글 중, 그의 아내가 순천 출신이기  때문에 이 친구도 아내의 영향을 받아 좌파로 변해버렸다고 적어 놓았다. 한심하고 해괴한 논리 전개다.

그렇다면 이곳 출신들은 모두 좌파, 빨갱이란 말인가?

참으로 부끄러운 의식 수준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하도 민망스러워  내 얼굴까지 붉게 달아올랐다.

아무 생각 없이 자기 진영의 논리만 더 정의롭고, 더 크고, 더 강하다고 부르짖는 정치 안목으로 이 나라 발전에 더 이상 기여할 수 없다.

앞으로 다가올 위기를 극복하거나 기회를 살리는 일에도 전혀 자신의 역할을 할 수가 없는 무용지물에 불과할 뿐이다.

하늘을 향해 나무곧게 서 있게 하는 심재는 비록

세포가 죽어서 굳어져 버렸지만 자신의 역할을 다

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명나라 정치가 이괄의 이런 하소연이 있다.


"나는 한 마리의 개에 불과했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나도 따라 짖었다.

 누군가가 왜 짖느냐고 물었을 때,

 짖는데 무슨 생각이 필요하야고

 나는 그에게 돼 물었다."


진영의  높은 장막에 갇히면 자신의 생각은 보이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고유한 삶의 방향 설정도 하지 않는다. 동질의 진영논리에 따라 자신 생각의

알고리즘을 놓쳐버리고 같은 진영논리에

동조하며 살아가는데 더 큰 의미를 둔다.

자신과 다른 논리를 펴는 사람은 우둔하고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사람으로 간주해 버린다.

때론 제거해야 할 적으로까지 바라보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는 혼란스러운 정치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보다 슬기로운 늙은이로서, 어른으로서 살아가려면  과연 무엇이 우리에게 더 필요할까?

그중 하나는 높은 안목을 기르는 일이  될 것 같다.


"예술을 보는 안목은 높아야 하고

 역사를 보는 안목은 깊어야 하고

 현실 정치, 경제, 사회를 보는

 안목은 넓어야 하고

 미래를 보는 안목은 멀어야 한다."


 우리와 비슷한 연배인 작가요 교수였던

 유 홍준 씨의 말이다.


2024,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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