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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경덕 Feb 11. 2024

참회의 의복

  참회의 의복


죽은 자들은 살아있는 자들보다 많은 점에서 우월하다. 먼저 죽은 자들은 그들의 '참회의 의복', 진심 어린 회개와 반성,  진정한 사과, 합당한 보상, 응당한 처벌의 감수등에서,  그들이 지녔던 육신의  가죽옷을 벗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살아있는 자들보다 우월한 점 중 하나다. 다음으로 그들은 유혹과 죄에 노출될 수

없다. 죽은 자들은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다. 죽은 자들은 이 지상에서의 삶의 누추한 근심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무덤 너머에 있는 그들의 실존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같이 살아있는 자들의 완벽한 실존보다 더 우월하다."


여기 죽은 자보다 더 우월한 또 다른 부류의 인간 집단이 있다. '참회의 의복' 대신에 '거짓의 의복'을 입고 있다.

보통 사람인 우리가 보아도 가소로운 말과 무례한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공개적으로 하고 있다.

절대자인 창조주는 이러한  이들을 행동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가소롭게 느꼈을까?

절대자는 언제나 정의의 편이다.

언젠가는 정의의 날쌘 검으로, 진리의 불화살로 불의를 심판하신다. 다만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다가 올 심판의  그 시간을 우리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그 기운만은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


"사람들은 지상의 삶에서 지칠 대로 지친 후 몸의 쉼을 얻기 위해 죽게 된다. 무덤에서 썩어 없어질 것은 오직, 인간 본성에 낯선 것, 타락과 정죄 후 인간의 몸에 추가된 것, 바로 그 가죽 옷, 그 육중한 물질뿐이다."


이들이 지금 지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지고 갈 가죽옷은 얼마나 무거을까? 멀리서 바라보는 필부들도 마치 함께 지고 가는 것 같은 무거운 중량감을

느낀다.

안타까운 오늘날  이 나라 정치 현실이다.


   게오르규 '25시에서 영원으로'에서

   부분 발췌 인용하였다.

  

      2024,2,10


     구정날 아침 어느 지도자의

     녹화 대담 재 방송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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