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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

by 김 경덕

안목

나이가 들어갈수록 외골수 논리에 쉽게

빠져든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그 나이에 벌써 들어서 있다. 젊은 세대가 우리 같은 세대를 항하여 "꼴통 보수"라고 하는 그런 나이이다

기분 나쁜 용어이지만 한번 되씹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어떻게 생존해 온 민족인가?

우리가 어떻게 번영시켜 온 이 나라인가?

이 말은 우리 세대 모두가 간직하고 있는 우리들만의 자부심이고, 자랑이고, 노래다.

그러나 이 자부심이 너무 멀리 가면 위험하다.

노랫소리가 너무 높아지면 외로워진다.

가다가 부르다가 한 번쯤은 돌아다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진영논리, 세대 간이나 지역 간이거나 소득 간 등, 에 갇혀버린 습관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자기 진영의 생각만 더 크고, 더 강하고, 정의롭다고 부르짖는 외골수에 빠져있다.

얼마 전 대학 동문인 왕년의 축구스타 차범근의 행적이 동기 카톡방에 오른 적이 있다. 이 동문의 행동을 비난하는 글 중, 그의 아내가 순천 출신이기 때문에 이 친구도 아내의 영향을 받아 좌파로 변해버렸다고 적어 놓았다. 한심하고 해괴한 논리 전개다.

그렇다면 이곳 출신들은 모두 좌파, 빨갱이란 말인가?

참으로 부끄러운 의식 수준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하도 민망스러워 내 얼굴까지 붉게 달아올랐다.

아무 생각 없이 자기 진영의 논리만 더 정의롭고, 더 크고, 더 강하다고 부르짖는 정치 안목으로 이 나라 발전에 더 이상 기여할 수 없다.

앞으로 다가올 위기를 극복하거나 기회를 살리는 일에도 전혀 자신의 역할을 할 수가 없는 무용지물에 불과할 뿐이다.

하늘을 향해 나무를 곧게 서 있게 하는 심재는 비록

세포가 죽어서 굳어져 버렸지만 자신의 역할을 다

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명나라 정치가 이괄의 이런 하소연이 있다.


"나는 한 마리의 개에 불과했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나도 따라 짖었다.

누군가가 왜 짖느냐고 물었을 때,

짖는데 무슨 생각이 필요하야고

나는 그에게 돼 물었다."


진영의 높은 장막에 갇히면 자신의 생각은 보이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고유한 삶의 방향 설정도 하지 않는다. 동질의 진영논리에 따라 자신 생각의

알고리즘을 놓쳐버리고 같은 진영논리에

동조하며 살아가는데 더 큰 의미를 둔다.

자신과 다른 논리를 펴는 사람은 우둔하고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사람으로 간주해 버린다.

때론 제거해야 할 적으로까지 바라보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는 혼란스러운 정치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보다 슬기로운 늙은이로서, 어른으로서 살아가려면 과연 무엇이 우리에게 더 필요할까?

그중 하나는 높은 안목을 기르는 일이 될 것 같다.


"예술을 보는 안목은 높아야 하고

역사를 보는 안목은 깊어야 하고

현실 정치, 경제, 사회를 보는

안목은 넓어야 하고

미래를 보는 안목은 멀어야 한다."


우리와 비슷한 연배인 작가요 교수였던

홍준 씨의 말이다.


2024,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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