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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선 Dec 27. 2017

악어를 만나지 못해도 괜찮아

뉴올리언스 늪지대 에코투어 

캠퍼스 안에 악어가 살고 있어!!

지난달, 플로리다의 한 대학에 출장을 갔던 남편이 신기한 듯 이야기했습니다. 저희가 살고 있는 미국 북동부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동물인 악어가 같은 나라 안에 살고 있다니 새삼스럽게 미국이 넓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남부에 가면 악어를 볼 수 있다는 기대에 12월에 예정된 뉴올리언스 여행에서 악어를 볼 수 있다는 늪지대(swamp) 투어를 급하게 찾아 예약했습니다. 


뉴올리언스의 늪지대 투어를 구글에 검색하니 수많은 업체들이 나왔습니다. 허니 아일랜드 늪(Honey Island Swamp)이라는 뉴올리언스의 동쪽에 위치한 늪지대에서 운행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운행하는 배도 가격도 시간도 다양했습니다. 그중에 제가 선택한 곳은 펄 리버 에코투어(Pealriver Eco-Tours)라는 곳이었습니다. 가격도, 시간도 적당했고 무엇보다도 에코투어란 이름에 끌렸습니다. 미국에는 '에코 투어'가 제도화되어 있지 않아 우리가 아는 에코투어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허니 아일랜드 늪과 이 곳에 살고 있는 동물의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곳은 악어의 집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집이기도 하고 또 다른 동물들의 집이기도 합니다” 

라는 홈페이지의 문구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전화로 예약을 마치고, 늪 투어에서 악어를 만날 그 날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캡틴 네일(Neil)이라고 불러줘요.

2017년 12월 15일 오전 9시 45분. 우리는 렌트한 차를 타고 투어의 시작점에 도착했습니다. 먼저 도착한 중년의 커플 두 쌍과 오늘 우리를 늪지대로 안내해 줄 캡틴을 만나 작은 보트에 올라탔습니다. 캡틴은 간단히 자기소개를 한 후, 날씨가 너무 추워서 악어를 볼 수 없다는 아쉬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악어를 볼 수 없는 늪지대 투어, 우리는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원래는 18-26명이 탈 수 있는 보트이지만, 오늘은 6명의 승객만 있었습니다.


물길이 만드는 아름다운 자연  


보트가 출발하기에 앞서, 캡틴은 오늘 우리가 볼 곳들을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은 운하(canal), 강(river), 바이유(bayou), 우각호(oxbow), 그리고 슬류(slough)를 보게 될 겁니다."

솔직히 말하면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일단 전문 용어가 너무 많이 나왔어요. 제가 알고 있는 '습지, 늪'이란 단어는 Wetland 하나였는데, 여기서는 참 다양한 단어를 사용합니다. Swamp, Bayou, Slough, Marsh 이런 단어요. 사실 아직까지도 차이를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더 어려웠던 것은 캡틴의 남부 사투리가 정말 심했습니다. 모르는 영어 단어를 낯선 억양으로 들으니 귀에 쏙쏙 박히지는 않았어요.


이런 제 맘도 모르고, 어쨌든 보트는 출발합니다. 


저희가 투어한 지역 지도예요~ 트래킹 앱 켜놓고 기록했습니다.


요즘은 다른 때 보다 수위가 낮다고 합니다. 물이 가득 차면 까만 부분의 맨 위까지 올라가겠지요?


수로를 지나 강으로 나오면서 캡틴은 속도를 올려 신나게 달립니다. 여름에 왔으면 참 좋았을 텐데 이상적으로 비가 오고 차가운 날씨에 밖을 보기보다는 자꾸 비옷 속으로 몸을 움츠립니다. 그러다가 캡틴이 배를 세우고 이 지역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면 캡틴의 설명에 귀를 기울입니다.


배로 강을 달리다 돌아보면 문득 이런 풍경이 있습니다.


캡틴이 강 중간에 멈춰 수풀 속을 가리킵니다. 그곳에는 커다란 물길이 보입니다. 



놀랍게도 이 길은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지나간 후에 생긴 물길이라고 합니다. 말로만 듣던 카트리나의 위력이 실감이 납니다. 


늪지대에 살고 있는 생물들 


물길을 따라가면서 이 곳에 살고 있는 다양한 식물, 동물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악어는 못 만났지만요.


보트는 강을 지나가다 갑자기 한 나무 옆에 멈췄습니다. 캡틴이 나뭇잎을 따서 우리에게 건네줍니다.

"이게 뭔지 알아요? 힌트는 남부 음식에 많이 들어있는 것!" 


낯설지만 친숙한 이 이파리, 뭘 까요?


정답은 월계수 잎(Bay leaf)였습니다. 남부 음식에 많이 들어있다고 해서 모르는 식물일 줄 알았더니 의외로 익숙한 식물이었어요. 말린, 그리고 가루가 된 월계수 잎만 보다가 이렇게 생으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어요. 


캡틴은 또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하얀 것을 가리키며 스패니시 모스(Spanish moss)라고 알려줍니다. 이름과 다르게 스패니시도 아니고, 모스도 아니라는 이야기도 덧붙이면서요.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하얀 것, 보이시나요?


스패니쉬 모스는 이름은 이끼(moss)이지만 이끼는 아니며 벼목에 속하고 나무에 기생하여 길게 늘어지며 자라며, 뿌리를 내리지 않고 공기 중의 영양분과 수분으로 성장하는 미국 남부와 같은 따뜻하고 습한 지대에 많이 서식하는 식물입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스패니시 모스를 보고 있자, 캡틴이 스패니시 모스에 얽힌 옛날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스패니시 모스를 수확해서 어디에 썼는 줄 알아요? 매트리스에도 쓰고 자동차 시트의 충전재로도 썼어요. 포드(Ford)사에서 처음 자동차 시트로 만들었는데, 사용한 스패니시 모스 안에 벌레가 많아서 시트에 앉은 사람들이 가렵다고 리콜하기도 했어요. 그다음부터는 깨끗하게 씻어서 말려서 사용하곤 했지요." 

캡틴의 이야기에 궁금해서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1937년 '포풀러 사이언스(Popular Science)' 지에 실린 기사와 소파의 충전재로 넣고 있는 사진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기사에서는 스패니쉬 모스를 '식물 금광(Vegetable Goldmine)'이라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출처: Popular Science. June 1937


스패니시 모스가 매달려 자라고 있는 나무는 '사이프러스(Cypress)'입니다. 

"사이프러스 나무는 정말 좋은 자재예요. 수분에도 강하고, 벌레에도 강하거든요. 그래서 뉴올리언스 도시가 만들어질 때, 늪지대의 사이프러스 나무를 이용해 집도 짓고 가구도 많이 만들었어요."

뉴올리언스를 건설하는 데 사용했다는 사이프러스 나무는 오늘날 뉴올리언스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다음날 찾아간 대농장의 저택에서는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사이프러스 나무들

사이프러스 나무 주변에는 다른 식물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사이프러스 나무뿌리 근처에서 자란다는 '사이프러스 니(Cypress Knee)'도, 사이프러스 나무에서 자라고 있는 풀도 신기하기만 합니다. 


사이프러스 니가 곳곳에 솟아있습니다.


캡틴은 지나가면서 눈에 띄는 식물들에 대해 설명해줍니다. 이름을 들으면 정말 그 모양 그대로 잘 묘사했다는 생각이 드는 식물이 많았습니다. 


'코끼리 귀(Elephant Ears)'라고 불리는 식물 입니다. 학명으로 찾아보니 '토란(Colocasia)'이네요.


벼처럼 보이는는 아래 식물은 '쏘우 그래스(Sawgrass)'라고 합니다. 이름처럼 한 면은 날카로운 톱처럼 생겨있어요. 그래서 이 안에 알을 낳으면 다른 천적으로부터 알을 보호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날씨는 추워 모두 숨어있는 것 같았지만, 라쿤(Raccoon) 가족은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미 익숙해졌는지 멀리서 배가 오는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빼꼼 내밀며 캡틴이 마쉬멜로우를 주기를 기다립니다. 캡틴이 마시멜로우를 던져주자 재빨리 주어 먹고, 더 달라며 귀여운 표정을 짓습니다. 



슬류(Slough)의 끝에서는 캡틴이 배를 멈추더니 갑자기 "꽉꽉" 하며 이상한 소리를 냅니다. 야생돼지를 부르는 소리입니다. 

"추워서 안 나타날 가능성이 높지만... 가끔은 우리가 돌아가는걸 멀리서 바라보기도 하니 마지막까지 한 번 잘 살펴보세요." 

멀어져 가는 숲에 돼지 그림자라도 나타날까 두 눈을 뜨고 지켜보았지만, 아쉽게도 야생돼지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늪지대를 삶의 터전으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 늪지대에는 식물과 동물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물론 캡틴도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강을 따라 내려가자 작은 마을이 나타났습니다. 어떤 집은 폐허가 되어 있었고, 어떤 집은 한창 공사 중이었습니다. 어떤 집은 아주 높은기둥 위에 있었습니다. 이 곳은 지난 2005년 미국 남동부를 강타한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지나간 흔적입니다. 카트리나는 강에 새로운 물길을 낼 정도로 강력했지만, 그곳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지역엔 이렇게 높게 지은 집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마을에는 커다란 다리 주변에 있었습니다. 1930년대 만들어진 이 다리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과 차가 지나갔을까요?


커다란 배가 지나갈 때에는 다리 가운데 부분이 올라갑니다. 통행을 위해서는 4시간 전에 전화를 해야합니다.


강가가 아닌 강 위에 떠 있는 작은 집도 있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보던 수상 주택이 떠오르네요. 여기도 강에서 살면 세금이 없어서 이렇게 강 위에서 사는 사람도 있다고 하네요. 매일매일 흔들릴 텐데, 잠이 올지, 참 신기하기만 합니다.


여기에 살면 세금을 안내도 됩니다.


캡틴의 이야기 속에서는 오랜 옛날 이 지역에 원래 살았던 원주민과 백인 정착민도 만날 수 있습니다. 

"정착민들이 와서 보니 원주민들이 머리가 아플 때 저 흑 버드나무(Black Willow)'를 차로 마시더랍니다. 그래서 따라 마셔보니 정말 두통에 효과가 있었데요. 나중에 보니 아스피린과 같은 성분이 있었어요."

슬류에서는 캡틴은 배를 멈추고 커다란 나무 구멍을 가리킵니다. 이 곳에는 꿀벌과 벌통이 있었다고 하네요. 


이 지역에서는 꿀벌과 꿀을 찾을수 있었어서 '허니 아일랜드'라고 부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늪지대와 그곳에 사는 식물과 동물들과 함께 살았을까요. 뉴올리언스 건설에 사용된 사이프러스 나무, 시트의 내장재로 사용된 스패니쉬 모스, 식량이 되고 약이 된 수많은 식물들... 그 시간들이 조용한 숲에 차분하게 쌓여있었습니다. 




보트가 이동할 때마다 차가운 바람이 양볼을 스쳤지만, 캡틴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름다운 자연을 둘러보니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습니다. 


기대했던 악어를 만나지 못했지만 괜찮습니다. 아니, 오히려 잘 됐습니다. 작은 보트를 타고 둘러본 허니 아일랜드 늪 지역에서 새삼스럽게 우리도 자연의 일부, 라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우리가 보고 싶다고 억지로 악어를 깨우지 않아도, 악어가 나오고 싶으면 나오고 말고 싶으면 마는 환경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자연은 언제까지 그대로일까요? 원주민들이 사라지고, 뉴올리언스라는 대도시를 건설하면서 수많은 사이프러스 나무가 베이고,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폐허를 만들었던 것처럼 2017년 12월 제가 만난 허니 아일랜드의 모습은 시간이 지나며 변해갈 것입니다. 이 곳의 삶의 터전으로 살고 있는 캡틴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늪은 계속 변해갑니다. 허리케인으로 새로운 물길도 생기고, 퇴적물이 점점 쌓여 새로운 땅이 생기고 물길은 또 바뀔 것입니다. 이 곳에 사는 사람으로서 최대한 많은 변화가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언젠가 다시 이 곳을 방문해 (가능하면 여름에) 변하지 않은 자연을 보며, 캡틴도 다시 만나고, 그때는 악어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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