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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선 Jan 13. 2017

5천 원짜리 토스터의 가치

토머스 트워이츠,  <토스터 프로젝트>를 읽고

토스터 어때?


어느 날, 결혼 선물을 사주겠다며 지인이 토스터 어떠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예쁜 토스터를 발견했다며 알려주는 브랜드로 검색을 해보니 스타일리시한 디자인, 세련된 색상, 다양한 기능으로 새 집을 꾸미고 싶어 하는 신혼부부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계속 산다면 가지고 싶지만, 언제 어디로 이사 갈지 모르는 방랑자의 삶에 혹시나 짐이 될까 부담스러워 결국 그 토스터는 우리 집에 들여오지 못했습니다.


막상 예쁜 토스터의 모습을 보니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처음에 "토스터 어때?"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의아한 기분이었습니다. 미국 생활에서 토스터라... 우리 집에도 토스터가 하나 있습니다. 무빙 세일에서 거의 공짜로 가져오다시피 한 토스터입니다. 비싼 토스터에 있는 해동, 베이클 굽기 등 다양한 기능은 당연히 없고, 식빵을 넣으면 단순히 구워져 나오는 그런 토스터입니다. 매일 아침 토스터를 쓰면서도 이 토스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생활이 편리하긴 하지만, 토스터가 없으면 그냥 프라이팬에 구워 먹으면 되니까요. 토스터란 그런 존재이지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크게 아쉬울 것 없는... 


<토스터 프로젝트>의 저자인 토머스 트워이츠에게도 토스터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토스터는 하나의 상징이다. 우리가 사용하긴 하지만 꼭 필요한 건 아닌, 갖고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크게 아쉬운 것 없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갖고 있기도 쉬워서 하나 샀다가 고장 나거나 더러워지거나 낡으면 쉽게 내버리는, 그런 물건들의 대표다.

- 토머스 트워이츠, <토스터 프로젝트>, p. 54-55


토머스는 이 상징적인 물건의 이면에 무엇이 숨어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토스터를 직접 만들어보기로 하였습니다. 직접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부품을 구입하여 조립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토스터를 분해하여 그 안에 강철, 운모, 플라스틱, 구리, 니켈 등으로 만들어진 부품이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원료를 채취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하여 부품을 만들고 조립하였습니다. <토스터 프로젝트>는 그 여정의 기록입니다.


맨 손에서 토스트를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는 철광석을 구하기 위해 광산에 직접 찾아가고, 광부에게 받은 철광석을 캐리어 가방에 넣어 가져와 16세기 야금학 책을 보며 직접 녹이고, 플라스틱을 만들기 위해 BP에 전화를 걸어 석유를 좀 얻을 수 있냐고 물어보고, 결국 석유에서부터 플라스틱을 만드는 것을 포기하고 버려진 욕조를 녹여 플라스틱 부품을 만들었습니다. 토스터기 하나를 만들기 위해 그는 9개월 동안 3,000km가 넘는 거리를 이동하고, 1,187.54 파운드(우리 돈으로 약 200만 원)를 썼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토스터기는 그의 목표대로 졸업 전시회에 전시하고, 영국의 한 박물관에서 직접 토스터를 굽는 퍼포먼스를 합니다.


그의 토스터에서는 맛있는 토스트가 구워져 나왔을까요? 그 결과는 책이나, 아니면 그의 TED 강의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ted.com/talks/thomas_thwaites_how_i_built_a_toaster_from_scratch


사실 이 책에서 토스터를 성공적으로 만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보다는 토스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토스터 이면의 현대사회의 모습이 더욱 중요합니다. 


나는 토스터를 만들면서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많이 의존하는지를 깨달았다.

- 토머스 트워이츠, <토스터 프로젝트>, p. 184


더 이상 혼자 힘으로 자급자족할 수 없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그의 말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토스터 한대만을 보아도 철광석을 캐는 광부의 노력이, 석유를 시추하고 정제하는 기술자들의 노력이, 그 사이의 운송이나, 조립, 판매와 같은 서비스업을 하는 사람들의 노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노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당하게 평가되고 있을까요?


환경은 어떨까요? 우리는 자원을 사용하고, 원자재들이 정제되고 운송되는 동안 수많은 오염물질을, 이산화탄소를 배출해냅니다. 부서지면 쉽게 버리게 되는 토스터기라면 그 폐기물을 처리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환경 비용들이 단 돈 5천 원짜리 토스터기에 모두 포함되어 있을까요?


전자제품 매장에 놓여있는 토스터는 어디서 갑자기 '짠!'하고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이는 인류의 과학기술의 발전에,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의 흐름에, 제품 그 자체의 라이프사이클의 일부였습니다. 토머스 트워이츠는 <토스터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가 잊고 살기 쉬운, 혹은 아직 알지 못했던 현대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아침, 토스트를 만들기 위해 토스터를 꺼내왔습니다. 별생각 없이 보았던 토스터가 오늘은 뭔가 달라 보입니다. 내가 만약 토머스처럼 이 토스터를 처음부터 만들고자 한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자원, 노력이 필요할까요? 



저자 토머스 트웨이츠가 <토스터 프로젝트>가 끝난 후,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하여 그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홈페이지 첫 화면에 나오는 산에서 네 발로 걷고 있는 그의 모습...


토머스 트워이츠의 홈페이지
저는 지금 ‘염소’처럼 보이는 무언가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본 익숙한 모습이었습니다. 바로 기발하고 독특한 연구 성과에 주는 이그 노벨상(Ig Nobel) 상의 2016년 생물학상 수상자인 '3일 동안 알프스에서 염소처럼 산' 연구자가 바로 그였던 것입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9/26/0200000000AKR20160926160200797.HTML?input=1195m


인간의 오랜 꿈인 '동물의 능력을 가지고 살아보기'를 현대 과학으로 얼마만큼 이룰 수 있는지 궁금해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는 토머스. 그의 인간, 현대사회, 그리고 기술에 대한 호기심 어린 탐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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