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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선 Jul 08. 2017

쓰레기가 만든 또 하나의 세계

제프 페럴,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 


  스톡홀름의 한 공원에서 만난 그녀는 자기 몸집보다 큰 까만 봉투를 들고 있었다. 재활용 표시가 붙어있는 공원 쓰레기통에 성큼성큼 다가가 뚜껑을 열고 한 번 쓱 둘러보더니 별 거 없다는 듯이 다시 다음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살짝 안이 보인 그녀의 쓰레기봉투 안에는 하얀 플라스틱 용기가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저 커다란 까만 봉투만 빼면 그녀는 여름의 햇살을 즐기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착 달라붙는 티셔츠에 긴치마, 굽 있는 구두, 그리고 두건. 깨끗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그녀가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을까? (그녀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타이틀 배경 사진에서 찾을 수 있다.) 


  무엇을 찾냐고, 왜 찾냐고, 모은 것을 어디로 가지고 가냐고 묻고 싶었지만 소심한 나는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사회학자 제프 페럴(Jeff Ferrell)은 아니었다. 그는 2001년 애리조나 대학교의 종신 교수직을 나와 고향인 텍사스 포스워스로 돌아가 쓰레기 탐색을 시작했다. 그의 8개월 간의 쓰레기 탐색 여정과 그 여정 중에서 만난 다른 쓰레기 탐색자들에게 그는 물었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 뭘 하나요?"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는 그의 인류학적 참여 관찰 기록기이다.


  저자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길거리에 나와있는 쓰레기를 뒤지는 것은 불법이다. 남의 집 앞에 나와있는 쓰레기를 뒤지면서 그는 경찰의 눈치를 보고, 집주인의 눈치를 보고, 또 다른 쓰레기 탐색자들의 눈치를 본다. 그리고 그 쓰레기 더미에서 그가 발견하는 것은 오래된 책, 사진, 음반, 장난감에서부터 시작하여 거의 우리 생활애 필요한 모든 '버려진' 것을 찾았다. 그가 작성한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한 것들을 적은 리스트는 무려 50여 쪽에 달한다. 새 것처럼 보이는 혹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무언가를 발견한 날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그의 발걸음이 신나 보였다. 


  하지만 이 책은 쓰레기 더미에서 보물을 찾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이렇게 많은, 아직은 더 쓸만한 쓰레기들이 길거리에 나오게 된 데에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폐해가 있다고 지적한다. 


"도시의 거리와 길모퉁이의 쓰레기통, 쓰레기 더미, 쓰레기봉투 등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물건들을 보면서 나는 확실한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끝없이 확산되는 미국의 소비문화, 나날이 커져가는 빈부 격차, 문화적 물질주의에 기반한 글로벌 경제의 대량생산과 그 결과로 나타나는 낭비에 관한 것이다." (p. 285)


  그리고, 쓰레기 더미에서 쓸만한 물건을 아직 찾고 있는 쓰레기 탐색자들은 이러한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폐해를 고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소비 지향 도시의 집중화된 불평등 한가운데서 도시의 탐색자들은 날마다 남아도는 도시의 부를 재분배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p. 306)


  즉,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인해 쉽게 버려지는 물질들을 다시 주어 재활용하는 것이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의 쓰레기 탐색자들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저자 자신이 쓰레기 탐색자로 참여 관찰하는 동안 그 역시 도시의 부를 재분배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수집한 온갖 금속들을 재활용 가게에 가져다 팔고, 쓸만한 물건들을 모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증했다. 하지만 반쯤 취미로, 반쯤 연구로 쓰레기 수집을 시작한 그와 달리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프레임을 적용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리나라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 잘 알려진 대로 우리나라의 재활용률은 매우 높다. 

OECD 국가의 재활용률 현황 (2013)

(출처: https://www.forbes.com/sites/niallmccarthy/2016/03/04/the-countries-winning-the-recycling-race-infographic/#342fe582b3da)


또한,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시민들이 쓰레기를 배출할 때 분리 배출하는 시스템을 택하고 있다. 모든 쓰레기를 분리하지 않고 집 앞에 내놓는 미국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넝마주이'라던지 폐지 줍는 분들이라던지 쓰레기를 모으는 분들이 있긴 하지만, 저자가 하는 것처럼 다른 집 앞의 쓰레기를 뒤져 당장 다시 가져다가 쓸만한 것들을 찾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경험은 특수한 경험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쓰레기를 통해 보여주는 미국의 소비문화의 단면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의 수집 리스트에 있는 목록들은 우리 생활에서도 쉽게 버려지는 것들이니까. 책 속의 쓰레기 더미에서 보물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며, 그리고 그 보물들을 보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모든 물건들이 꼭 필요한 것인지, 쓰레기가 되어 어디로 가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책에서 흥미롭게 읽은 이야기 중 하나가 버려진 목재나 산업 쓰레기를 이용하여 집을 짓는다는 단 필립스(Dan Phillips)라는 건축가였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그의 TED 강연을 찾아볼 수가 있었다. 미리 말하지 않으면 재활용한 재료로 만들었다는 것을 모를 만큼 멋진 집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가 만든 집에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지, 어떤 철학을 담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https://www.ted.com/talks/dan_phillips_creative_houses_from_reclaimed_stuff

  

  단 필립스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싶다면, 아래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http://www.phoenixcommot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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