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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키미 Mar 04. 2024

태백산맥을 읽고

역사의 묵직한 이야기

1월 중순부터 태백산맥을 읽기 시작해서 2월 28일에 10권 완독을 하였다. 새해가 되고 묵직한 책 10권을 읽으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훑어내려가니 뭔가 하나를 이뤄낸 거 같은 성취감이 든다: 책을 읽고 이런 큰 성취감이 들기는 처음인 거 같다.


태백산맥의 시대배경은 일본 식민지 해방 후 1948년부터 6.25 전쟁이 끝난 1953년까지다.

1948.10.19 여순사건, 1948. 4.3 제주, 1950. 6.25 북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에서 1953.7.27 휴전까지 역사의 큰 사건을 배경으로 소설은 흘러간다.


6.25 전쟁이 1950년 6월 25일에 북한의 남한 침입으로 시작되어 1953년에 휴전으로 끝이 났다: 3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전쟁을 하였고 수많은 젊은 목숨이 죽었다. 전 세계 어느 나라의 전쟁도 이렇게 동족끼리 총을 겨누고 싸운 적은 없다고 했다. 책에서 ‘ 한 집안에 두 도둑이 들었는데 집안의 사람들은 힘을 모아 그들을 끌어내려하지 않고 편을 나눠 양쪽으로 갈라져 두 도둑의 편을 드나?라고 하는 말이 인상 깊었다.


빨치산/좌파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던 내가  책을 읽으며 그들에게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아마도 조정래 작가님 역시 그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보냈을 것이다. 그와 함께 우리나라 초기대통령 이승만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내가 책을 읽던 시기와 맞물려 한국에서는 “건국전쟁”이라는 영화가 개봉을 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영화를 보고 이승만을 찬양했다. 내가 만약 태백산맥을 읽지 않았더라면 그 영화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을 것이고 이승만에 대해서도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런데 태백산맥을 읽고 나서 대중의 그런 모습들을 보니 어딘가 불편함이 밀려온다. 물론 이승만이 지금 우리나라가 설 수 있게 토대는 만들어 줬지만, 그 뒤에는 본인과 맞지 않는 이념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이끌기도 했다. 그래서 현재의 나는 그를 마음껏 찬양하지는 못한다.


태백산맥을 읽으며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내가 저 시대에 있었더라면 나는 어느 쪽을 택했을까?

 부잣집, 지주집안에서 태어났다면 그 부를 지키기 위해 부자들의 입장에 섰을 것이고 그렇다면 자연스레 지주층의 우익으로 갔을 거 같다. 소작농의 하층계급이었다면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준다는 좌익의 빨치산 쪽으로 가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승만 정부, 미군정이 들어오며 그렇게 많은 친일 반민족을 저지른 사람들이 고위직에 앉아 있다는 것에 놀랐다. 친일, 반민족 행위가 잘못된 일이지만 먹을 거 없고 살기 힘든데 옵션이 그것 밖에 없다면 나도 그 행위를 택하지 않았을까? 어느 쪽이든 한번 길을 터놓은 곳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그 길로 따라갈 거 같다. 일제의 친일/반민족은 미군정이 들어오며 경찰이 되고 자연스레 우익으로 가고, 소작농/하층계급은 이념을 떠나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사람대접받으며 산다고 하는 좌익에 솔깃할 수밖에 없을 거 같다. 어쨌거나 빨치산 활동을 그렇게 힘들고 어렵게 하며 좋은 세상을 만드려고 한 그들은 누구보다 용감했다.

 좌익과 우익, 그 시대의 대부분의 농민층들이 좌파가 뭔지 정확이 알고 빨치산이 되었겠는가? 힘들고 불공평한 세상 평등하게 바꿔주고 좋은 세상 만들어 준다고 하니 좌익으로 간거다.


수많은 등장인물이 나온다. 6.25가 휴전으로 끝나가면서, 태백산맥의 마지막 페이지로 넘어갈수록 그 끝이 궁금해진다. 남한에 남아있는 그 빨치산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승만 정권의 경찰들과 군인 토벌대는 무지막지하게 산을 공격하며 마지막 남아있는 빨치산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죽이려 한다.


태백산맥의 끝은 빨치산 대장 염상진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토벌대에게 둘러싸여 진퇴양난인 염상진은 함께 있는 대원들과 마지막 남은 총알까지 다 쓰고 생의 마지막을 맞이한다. 투항하면 살려준다는 적의 외침을 듣지만 그들은 마지막 인사를 서로하고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을 한다. 그 마지막 순간에 함께 있던 대원들과 죽음을 함께 맞이하는 그 심정은 어떨까? 그리고 염상진의 목은 잘려 경찰서 앞에 매달아 여러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한다. 죽은 사람의 목을 내걸고 우익은 승리의 기쁨을 나눈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나 싶다. 염상진의 잘린 목을 보는 그의 어머니, 그의 아내의 심정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렇게 그들의 시대는 잔인하게 끝이 났다.


 소설이 끝이 나며 소설뒤에 남겨진 등장인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함이 있다.

심재모는 순덕이를 만났을까? 다시 만났다면 그들은 결혼을 할까?

안창민과 이지숙은 무기징역으로 감옥에서 그들의 모든 일생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들은 감옥 안에서 역사투쟁을 이어나갈까?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하대치와 외서댁과 몇 대원들은 옥죄어오는 산 생활을 어떻게 견디며 버틸까? 투항을 해서 절대 내려올 거 같지 않은 그들이다. 시간의 차이로 그들도 죽을까?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있는 정하섭은 친공포로로 벌교의 고향을 떠나 북으로 가서 잘 살 수 있을까? 공산당도 북로당과 남로당을 많이 차별하는 거 같은데…

정하섭이 북으로 갔다면 남쪽에 있는 소화는 징역 5년을 마치고 나오면 영영 정하섭을 다시 보지 못하고 그의 어린 아들과 둘이 살 것인가?

들몰댁 역시 징역을 마치고 나오면 길남, 종남과 같이 살겠지? 왠지 하대치는 그들과 같이 살 수 있는 가망성이 안 보인다.

북으로 간 이학종은 잘 살 수 있을까?

조원제는 감옥에서 아버지가 돈을 써서 죽지 않고 잘 빠져나올 거 같다. 지금이나 그때나 돈이 있는 사람들이 유리하다. 왠지 조원제는 다른 당원들의 비참한 결과보다는 잘 풀릴 거 같다.

염상진의 아내 죽산댁, 그의 아들 딸 광조와 덕순이는 염상진이 대장 빨치산이었는데 우익의 세상에서 잘 살 수 있을까? 그런 빨치산의 자식들로 세상의 불공평함을 맞서며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이태식, 김범준, 손승호, 천점바구, 이해룡…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그 사상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그것이 정말 무섭도록 강하고 사람들을 용감하게 만든다. 그들이 살고 있는 그 시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간절함으로 온몸을 바치는 투쟁을 한다. 어떻게 하나뿐인 목숨을 그리도 쉽게(?) 내놓을 수 있을까…

무언가를 맹목적으로 믿고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그것만 보고 아무 의심 없이 쫓아가면 되니까 오히려 행복할 것이다. 단순하면 행복하다.






* 그 시절 여자들의 사랑에 대한 대담함

소화가 정하섭을 돕기 위해 빨치산인 그를 자기 집에 숨겨주고 그를 위해 기꺼이 그의 부탁도 들어준다.

순덕이는 멀리서 지켜보기만 한, 본인의 존재를 알지도 못하는 심재모를 찾아 집에서 돈을 훔쳐 무작정 그를 찾아 떠난다. 그 사랑에 대한 용기와 확신이 대단하다. 막상 그를 찾아 그의 앞에 섰는데 그가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에 대한 걱정, 망설임보다는 일단 그를 찾아 떠나서 그를 만나겠다는 용기가 대단하고 놀랍다. 그 시대 사람들의 사랑은 지금의 우리보다는 화끈한 거 같다. 그리고 본인이 좋아하면 그 사랑을 계산하고 재지 않는 거 같다. 그냥 운명이라 생각하고 그에게 올인하는 거 같다. 그런 점이 참 용감하다. 요즘의 우리는 한 사람을 두고 얼마나 재고 계산하나.. 그것이 사랑이 될 수 있나.. 전쟁통의 어려운 그 시절의 남녀는 지금의 우리보다는 더 뜨겁고 진한 사랑을 하는 듯하다.


* 왜 전라도 빨갱이라 그러는가?

빨갱이가 정확히 뭔지 모르면서, 전라도 빨갱이란 말은 많이 들어봤다. 왜 그 시절 전라도에는 좌익이 많았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이해한 건, 전라도는 평야가 넓고 그 땅이 비옥하고 좋다. 그러다 보니 농사를 짓는 소작농 많다. 얼마 안 되는 지주의 농지에서 일하는 소작농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그 소작농들이 열심히 일해서 농사지은 많은 곡식들을 지주에게 다 바치고 정작 본인들은 먹을 것이 없어 힘든 나날을 보낸다. 거기에서 불공평을 느낀 소작농들은 좌익이 외치는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세상”이 되기를 원한다. 좌익이라는 이론적인 이념을 따른다기보다는, 당장 눈앞의 고달픈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그들을 따르게 된다. - 전라도의 상대적으로 넓은 평야와 비옥한 땅이 그 땅에 사는 많은 사람들을 좌익으로 가는데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다.


* 조정래 작가님에 대하여

 이 글을 쓴 조정래 작가님에 대해 생각해 본다. 먼저 10권이나 되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끌고 나가는 그의 탄탄한 스토리텔링에 감탄했다. 그는 타고난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예전부터 빨갱이, 좌파 그러면 그 뜻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왠지 부정적이고 좋지 않은 쪽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그들에 대한 내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이 글을 쓴 조정래 작가님의 의도는 무엇인가? 과연 역사의 진실은 무엇인가? 일반인들이 좌익에 대해 생각하는 부정적인 시선을 바꾸려 하는가? 그럼 작가의 이념은 좌익인가? 이 소설이 나오고 난 뒤, 한동안 이 소설은 불온서적이 되었고 조정래 작가님 역시 1994년에 반공 우익단체들에게 사상불온자로 검찰에 고발당했다. 태백산맥 고소, 고발 사건은 2005년에 무혐의 결정을 받았다. 2005년에서야 무혐의를 받았다는 것이 나를 놀라게 했다.


10권 마지막에 한장수 노인의 심오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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