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작가 Apr 08. 2024

다시 시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지점이 되었을 때, 잊고 있던 취미나 관심사로 돌아가는 경험을 합니다. 순수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사소한 관심이 전부였지만, 어느 날 옆에 그것이 놓여 있을 때,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는 생각과 삶이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는 기분이 듭니다. 얼마 전부터 다시 시집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우연히 『고독의 리듬』이라는 시집이 눈에 띄었는데, 고독이 용감하게 다가온다는 느낌과 함께 저의 정체성에 관한 새로운 설명을 발견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십 대에는 시집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본명이 유명한 시인과 같아서, 농담처럼 놀리는 얘기에 부랴부랴 그 시인의 시집을 찾아 읽었습니다. 읽는 내내 슬픔이 주류를 이루었고, 자유에 대해 언급했지만 피부에 와닿지 않았고, 거칠고 투박한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이래서 시는 아무나 못 쓴다니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도 ‘쓰는 것’에 대한 욕구가 강했던 모양입니다. 하여간 저는 개인적으로 시는 아름답거나 용감해야 한다는 사람입니다. 가능한 한 사랑스럽게 표현하고,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대범해야 한다고 쪽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떤 시집은 거의 다 읽었지만, 어떤 시집은 절반도 읽지 못한 책이 태반입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에세이와 소설, 특히 추리소설에 빠졌습니다. 추리소설은 대부분 시리즈라서 빌려 읽는 날이 많았습니다. 도서관에 자리를 잡아 공부한다는 것보다 책 읽으러 도서관에 가는 사림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참 만화책에 빠져 지냈던 시절도 있었네요. 만화책 읽는 것이 밥 먹는 것보다 재미있게 느껴졌고, 제일 좋아하는 콜라와 초코파이 없이도 몇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이십 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자기계발서와 고전에 관심이 옮겨갔습니다. 특히 자기계발과 성공학을 많이 읽었는데 저는 감동보다 몰입이 책을 선택하는 기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갈증을 해소하고, 원하는 곳으로 저를 데려다주는 책이 좋은 책이었던 셈입니다. 무엇보다 상황적, 사회적으로 스스로 삶을 통제하고 싶다는 욕구가 컸던 것 같습니다.     


서른이 되어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과정은 낯섦. 그 자체였습니다. 덕분에 육아와 부모 교육 관련 책으로 거실의 책장이 채워졌습니다. 아는 것이 없으니 더 많이 알고 싶은 마음에 닥치는 대로 육아서를 읽었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이 될 때까지는 육아서와 제 마음을 다독여주는 에세이가 중심이었습니다. 모른다는 것이 문제는 아니지만, 유익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해내고, 할 수 없는 것은 내려놓는 방식으로 책 읽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서 개인적인 시간이 다시 찾아왔고, 그때부터는 오로지 제 자신을 위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감동이 필요한 날에는 감동을 주는 책을, 자극이나 영감이 필요한 날에는 그에 맞는 책을 찾았습니다. 독서법이라는 게 따로 없었습니다. 정독하는 날도 있고, 속독하는 날도 있으며, 여러 종류의 책을 동시에 읽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3월부터 다시 시집을 읽고 있습니다.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난 듯하고, 깃털의 가벼움을 마주한 기분입니다. 수업이나 모임을 앞두고 읽어야 할 책이 많지만, 시집과의 대화를 이어나가 볼 생각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자유와 내면의 평화를 갈망하는 마음, 이 마음이 다음에는 또 저를 어디에 세워둘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from 윤슬 작가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에세이스트

매거진의 이전글 좋은 생각은 저절로 자라지 않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