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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작가 May 01. 2024

<평범한 인생>이란 어떤 인생일까

“평범하고 착한 인간은 묵묵히 고통을 감수했고, 천성이 복종적이었으므로 고함을 지를 줄 몰랐다. 그는 다른 인물의 존재를 잊어버릴 만큼 일에 흠뻑 빠질 수 있으면 만족했다.     

우울증 환자는 가끔가끔씩 혼란에 빠졌다. 너무나 자신을 생각할 뿐이었고, 자신 외에 다른 관심의 대상이 있는 것을 서글퍼했다. 다른 사람들이 어리석은 걱정하는걱정을 하는 것을 아주 지루하게 여겼다.     

그리고 억척이 있는억척이는 그런 적대적이고 갑갑한 분위기를 아랑곳하지 않는 듯 행동하며 우쭐거리고 빈정댔다. 그는 이건 이래야 하고 저건 저래야 하고, 이것은 불필요하고 저것은 확실하게 성공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해야 한다며, 모든 걸 제일 잘 아는 척했다.     

낭만주의자는 아무것에도 귀 기울이지 않은 채 아름다운 여인을 상상하며,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다. 또한 홀대받는 가난하고 경건한 거지가 있었는데 그는 그 인물들의 친척 관계였다. 그는 아무것도 안 원치아무것도 원치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카렐 차페크의 장편소설 <평범한 인생> p.218     




<평범한 인생>은 어떻게 보면 아주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소재입니다. 소목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철도 공무원을 시작으로 철도역의 역장이 됩니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병에 걸려 죽음을 마주하게 되었고,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자기 삶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자서전을 쓰게 됩니다. 이 책은 그가 죽은 후, 그의 자서전을 의사가 가지고 있었고 이웃인 포 팰 때가포펠씨가 의사로부터 자서전을 건네받아 읽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매력이 자서전을 쓰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삶의 흔적을 쫓는 것에서 끝났다면 평가는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의 진짜 매력은 배경을 설명하고 흔적을 쫓는 1부에 해당하는 내용에 이은 2부에 해당하는 수많은 자아와의 조우, 대화, 고백에 있습니다.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숨겨진 메시지가 가득 담긴 곳인 셈입니다.     


평범하다고 여기는 삶, 일상적인 소재로 둘러싸인 삶 속에 숨겨진 내면의 수많은 자아, 그들과의 소란스러운 과정을 통해 이뤄내는 정체성이 한데 어우러져 ‘인생은 아름다워’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되돌아보게 합니다. 또한 매 순간 도전받고 있으며, 새로운 자아가 태어나고 기존의 질서가 붕괴하는 평범한 질서에 관한 자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가능성이란 곧 혼란이고, 분열이며, 혁명이며 그것이 질서를 향해 나아간다는 아이러니함을 발견하는 매력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안에 있는 수많은 자아와 소통하고 가능성을 추구하는 과정이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이며, 그 안에서 끊임없는 대화를 이어나가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 아닐지 생각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가지고, 전혀 평범하지 않게 새롭고 신선하게 제안하는 작가의 솜씨가 놀랍습니다. 깊숙하게, 널찍하게 파고드는 한순간, 한순간의 시선이 날카롭고 낯선 누군가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유도하고, 감각적인 단어와 섬세한 표현으로 자신을 넘어 세상을 향해 새로운 관점을 선물합니다. 호불호가 나뉘기는 하겠지만, 이 책 또한 그럴 것 같습니다. 소설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깊은 바다에 몸을 맡긴 채 심취하면서 읽을 것 같고, 평소 소설에 크게 관심이 없는 분이라면 돌다리를 두드리면서 건너간다는 느낌을 얻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끝까지 가보시기를, 그 끝에서 만나는 풍경을 마주할 기회를 가져보시기를 추천해 드립니다.     


from 윤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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