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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호 Apr 15. 2020

직장생활을 통해 깨달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글쎄,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길 바란다만...

종이 문서를 보관하던 시절, 일 년에 몇 번씩 서류 바인더를 문서 창고로 옮겨야 했다. 보존기간은 남았지만 다시 볼 일은 거의 없는 서류였다. 문서창고는 200미터쯤 떨어진 건물 지하에 있었는데, 부서에 배정된 승용차가 짐차 역할을 해야 했다. 이 작업(?)을 있는 날은 다들 업무를 멈추고 각자의 바인더를 노끈으로 묶고 다 같이 운반했다. 부장부터 신입사원까지 공동 작업이었지만, 직급이 낮을수록 눈치껏 더 부지런히 움직였던 건 사실이다.

 

문서 이관 작업을 몇 번 반복해 보니 사람마다 바인더를 묶은 스타일이 다르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신기하게도 그 스타일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 안 변한다는 말이 생겼겠지만 말이다. 내 나름대로 분석한 결과, 바인더 묶는 스타일은 대충형, 선택과 집중형, 과유불급형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대충형은 말 그대로 바인더를 대충 묶는 부류다. 일종의 민폐형인데, 자기 편하자고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쳤다. 노끈을 단단하게 묶지 않아서 바인더가 쏟아지기도 하고, 너무 많은 바인더를 한 번에 묶어 운반하기 어렵게도 하였다. 이들의 변명은 '가까운 거리만 나르면 되는데 대충 묶으면 어때?'였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쏟아진 바인더를 다시 묶는데 시간이 많이 낭비되고 바인더가 파손되어 서류가 뒤죽박죽 되는 일도 발생하기도 했다.


선택과 집중형은 머리를 쓰면서 열심히 하는 부류다. 운반하기에 적당한 바인더 개수와 노끈을 묶는 방법을 먼저 결정하고, 그에 따라 신속하게 작업을 진행했다. 간단한 일에 작업 방법을 먼저 고민하는 것이 번거롭게 일하는 거 같지만, 표준화된 작업을 반복하면 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더 능률적이었다. 게다가 바인더 묶음이 일정하게 정돈되어서 나중에 서류를 다시 찾을 때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서류를 다시 찾는 것은 과거에 끝난 일이 다시 이슈가 되었다는 뜻으로, 매우 내키지 않는 상황이었다)


마지막 과유불급형은 바인더 묶는 일에 너무 많은 정성을 쏟는 부류다. 바인더를 묶기 전에 혹시 참고할지 모르는 내용은 따로 모아서 정리하고 연관된 바인더끼리 분류하고 난 뒤에야 던지고 굴려도 문제없을 만큼 단단히 묶었다. 한마디로 이관 서류를 정리하는데 과잉 노력을 쏟았다. 뭐든 열심히 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 할 수 있지만, 본업에 써야 할 시간까지 서류를 정리하는 데 소비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것도 다시 볼 가능성이 거의 없는 문서 정리에 말이다.


그리 대단하지 않은 경험을 길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바인더 묶는 스타일과 업무 방식의 상관관계가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의 성향이 쉽게 바뀌지 않듯이 업무 방식도 바뀌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앞의 세 유형별 업무 특성을 살펴보면 이렇다.


대충형은 담당 업무도 대충 했다. 업무 특성상 예상치 못하는 돌발 상황이 많았는데, 대충형은 예상되는 문제도 '설마'하며 무시했다. 우려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다행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몇 배의 노력과 시간이 투입될 뿐 아니라 그 결과도 성공적일 수 없었다. 게다가 우려한 일은 늘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선택과 집중형은 큰 그림을 보면서 세부 사항에 적절하게 자원을 투입했다. 달리 말해 챙겨야 할 건 챙기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적당하게 무시하여 완급을 조절할 줄 알았다. 효율적인 방법으로 일을 진행하기 때문에 평소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양호한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돌발 문제가 많지 않아 '쎄뽁'이 좋다는 평을 듣지만 그것은 발생 가능성이 있는 우려 상황을 미리 대비한 결과였다.


과유불급형은 작은 일에 지나치게 신경 쓰면서 정작 중요한 일은 소홀히 했다. 적어도 놀고 있지는 않으니 불성실하다는 소리는 듣지 않지만 성과가 좋을 리 없었다. 예를 들어, 보고서의 줄 간격, 폰트를 거듭 수정하느라 보고서 내용은 뒷전인 식이었다. 이런 부류가 실무 담당자일 때는 그나마 문제가 덜하다. 상급자의 지시를 통해 부족한 부분이 채워지면 된다. 문제는 이런 부류가 작은 조직이라도 리더를 맡을 때다. 직책에 요구되는 역할은 무시한 채, 하던 대로 열심히 '노끈을' 묶고 있는 리더가 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하나의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


과잉해석일지 모르지만, 바인더를 묶는 스타일을 보면 업무 방식도 맞출 수 있다고 여전히 믿는다. 사람의 성품은 사소한 행동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평소 아무리 그럴듯한 말을 했더라도 마찬가지다. 결국 사람은 자신의 행동으로 평가받는다. 따라서, 평소 작은 약속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이 강조하는 신뢰나, 기초질서도 못 지키는 사람이 지키겠다는 원칙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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