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일 즈음부터 애들이 이유식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스푼으로 떠먹여 주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건지, 진밥을 싫어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유식을 먹으려 하면 입을 꾹 닫고 늘 우는 통에 재우는 시간에도 적잖이 스트레스 받았는데 이유식 먹이는 시간까지 내게 스트레스가 되어버렸다. 아기들이 울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표정이 차갑게 변하고, 한숨만 푹푹 내쉬곤 했다. 많이 먹지 않더라도 어떻게 하면 식사시간이 즐거울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자기주도이유식을 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토핑이유식으로 만들어준 반찬에 손을 뻗고 쥐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주도이유식을 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두부, 파프리카, 애호박, 오이, 브로콜리를 시작으로 자기주도이유식과 관련된 책을 섭렵하며 새로운 음식, 아이들이 좋아할 음식을 연구하며 해주는 중이다.
후기 초반까지는 요리에 관심도 없고 즐거움도 잘 못 느끼는 사람임에도 아이들이 더 이상 울지 않고 즐겁게 먹어주는 모습에 힘이 났기에 힘들어도 거뜬히 참고 만들어줬다. 그리고 자기주도이유식은 두 아이들을 번갈아가면서 떠먹여 주지 않아도 되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먹을 수 있으니 옆에서 한꺼번에 먹지 않게 도와주기만 해도 돼서 죽 먹을 때보다 식사시간도 짧아지고 나도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겼다.
하지만 후기 중반에 들어오면서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고 내일은 또 뭘 해서 먹이지, 내일모레는 또 뭘 해서 먹이지를 고민. (한 끼만이라도 된밥을 먹이려고 시도해 봤으나 실패. 그냥 안 먹으면 모르겠는데 왜 자꾸 우는지. 배고픈데 먹기 싫으니까 울겠지. 나도 울고 싶다) 아이들과 놀아줘야 하는데 아이들은 방치하고 이유식만 만들고 있으니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심지어 이유식 때문에 낮잠 자는 시간도 반납, 육퇴도 10~11시, 소중한 내 시간마저 거의 사라지게 되니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요즘 혼자 쌍둥이를 보는 날이 조금씩 생기면서 숨 돌릴 틈도 없이 새벽 6시부터 밤 11시까지 동분서주하는 날에는 하루는 혼자 볼 수 있어도 계속해서 쌍둥이를 혼자 본다면 육아 우울증에 걸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블로그를 하면서 글이라도 쓰던지, 영화 한 편이라도 봐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사람인데 이 시간마저 부족하니 내 인생에 대해 재미가 없어졌다고 해야 하나. 그동안 잠자는 시간까지 아끼면서 조금이라도 짬이 나는 시간에는 영화 보기, 블로그 하기, 책 읽기를 해왔기에 우울함을 길게 느낄새 없이 지금까지 잘 버텨왔는데 최근에는 잠도 계속해서 못 자고 개인적인 시간조차 적어지니 번아웃이 올 것 같은 낌새가 보였다.
이럴 때 내게 가장 필요한 건 가사와 육아에 대한 노동력을 인정받는 것인데. 왜 가사와 육아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건지. 직장에서는 노동에 대한 수고 비용을 월급으로라도 받지, 무임금 노동으로 24시간 풀타임 근무를 10개월째 하는 나에게는 돌아오는 보상은 아이에게 받는 행복함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다. 내년에 복직을 하면 일도 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엄마이고 아내이기 때문에 남편보다 더 많은 체력과 수고를 더해야 한다면..? 벌써부터 숨이 턱 막혀온다.
내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을 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다.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