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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빈 Jan 20. 2020

시민들의 합의된 정의

'법대로'가 항상 옳지는 않다

'법'은 거칠게 말하면, 그 사회의 구성원들의 합의의 내용입니다. 법원은 과거에 시민들이 합의한 내용인 법이 일관되게 작용할 수 있도록 지키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때때로 과거에 머물러 있게 됩니다. 결국 현재 사회적 합의에 따르더라도 당신의 주장이 옳은가?에 대한 판단을 법원에 가서 내리게 되는 것인데요, 아무리 봐도 사회적 합의의 내용이 명백해보이는데도 법원이 다르게 판단한다면, 이제 사회적 합의의 상징인 '법'을 바꿀 때가 된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강간죄와 관련해서, '피해자가 저항할 수 없을 정도였는지'를 판단의 기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성행위에 동의하였는지', '거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성행위로 나아갔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강간죄를 판단해야 한다는 사회적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동의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고, 사회적 상식으로 자리잡아 가는 중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법원은 법과 법원의 판결례에서 누적된 결과를 근거로 '협박'이나 '폭행'이 있었는지, 그 협박이나 폭행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이었는지 여부를 따져 강간죄가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법원의 판결에 쉽게 동의를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성행위를 강제로 했는데, 사회적 상식으로는 강간이 맞고 처벌되어야 맞는데 법원은 강간죄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일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회적 합의의 수준을 법이 따라가지 못할 때 법은 개정될 수 있는 토양을 갖추게 됩니다. 머지 않아 강간죄 등과 관련한 성범죄에 대한 법률이 개정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선에서 어떤 방식으로 정해질지 역시 사회적 합의의 영역입니다.


이렇게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서 이에 따라 법이 개정되기도 합니다. 사회는 그런 방식으로 조금씩 분야별로 야금야금 변해갑니다. 세상 바뀐 줄 모르고 예전처럼 '법대로 하라'며 자신만만해하다가 스스로의 촌스러움을 만천하에 알리게되는 일이 될 수 있으니 촉각을 곤두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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