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니셰린의 밴시>를 봤는데 정말 가슴이 쿵쾅(설레이는게 아니라 뭔가가 나에게서 건드려져서 심장이 빠르게 뛰는 느낌)거렸다.
사람 좋은(나이스한) 파우릭은 언제나처럼 친구 콜름을 만나기 위해 먼길 마다않고 걸어간다. 그의 발걸음은 친구를 만날 생각에 경쾌했고 여느 때처럼 친구의 집문을 두드렸는데 어쩐지 콜름은 파우릭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상하게 생각한 파우릭은 펍(바)에 가 콜름을 만나는데 콜름은 파우릭에게 자기 옆에 앉지 말고 다른 자리에 앉으라고 말한다. (헉, 내가 다 무안한 느낌)
사람 좋은 파우릭은 잘못한게 있으면 사과하겠다고 적극적으로 콜름과의 관계를 예전으로 돌리려 하지만 콜름은 이제 파우릭이 싫어졌다고 말한다. 그와 한가한 수다나 떨며(당나귀 똥 같은),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바이올리니스트인 자신은 모짜르트처럼 세상을 떠나도 영원히 남을만한 명곡을 남기고 싶다고 한다. (파우릭은 이에 대해 시간 낭비가 아니라 “좋은” 평범한 대화라고 한다)
자신의 결심에 대해 (남은 여생을 명곡을 남기는 것에 바치겠다는) 파우릭에게 이야기했지만 파우릭은 그 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콜름을 찾아온다. (탱고도 둘이 춰야 하는 것 아니냐며)
콜름은 엄청난 선전포고를 한다. 이제부터 자기를 귀찮게 하면 손가락을 잘라서 파우릭에게 던져주겠다는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인데..)
다정함(나이스함)을 인생 최고의 가치로 두고 있던 파우릭은 콜름의 갑작스런 절교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술에 취한 채 콜름을 찾아가 예전엔 “나이스”했던 콜름이 이제 더는 나이스하지 않다고 콜름을 비난한다.
다음날 파우릭은 술에 취해 콜름을 비난했던 것을 사과하기 위해 콜름을 찾아가는데, (그냥 사과도 하지 말고 자기 싫다는 콜름에게 정 좀 떼면 될텐데, 손가락까지 자를 정도로 본인이 싫다는데!! 이쯤에서 나도 콜름의 심정이 조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사람이 좋은건지 오기인건지ㅜㅜ) 콜름은 도대체가 왜 자신을 가만히두지 못하냐며 이 상황을 황당해한다. (화냈다가 또 사과하러 왔다가)
그뒤 파우릭이 여동생 시오반과 집에 있을 때 뭐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에 나가보니 피범벅이 된 콜름의 손가락이 떨어져있었다..(소리가 들리기 전에 파우릭은 여동생에게 콜름이 그저 우울한 것 같다고 말한다)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파우릭, 이제서야 콜름에게 더이상 접근하지 않기로 어렵게 결심하는데, 콜름은 그 후 경관에게 맞은 파우릭을 ‘말없이’ 데려다주고, 파우릭은 아무말도 하지 않는 콜름을 보고 서럽게 울기도 한다.
콜름은 실수로 (본인 말로는) 파우릭의 조랑말인 제니를 죽이게 되고, 파우릭은 콜름에게 콜름의 집에 불을 지르겠다며 불을 지를 시간을 콜름에게 알려준다. 그러면서 콜름의 개는 집밖으로 꺼내고 약속(?)한 시간에 콜름의 집에 불을 지른다.
파우릭이 불을 지르기 시작할 때 콜름이 집에 있는 것이 화면에 보여서 콜름이 죽었는지 관객이 알 수 없을 때, 바닷가에 서있는 콜름이 파우릭과 만난다.
콜름은 파우릭에게 자신의 개를 살려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파우릭은 언제든지 부탁하라고 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끝나고 나서도 참 생각이 많아지는 영화다.
파우릭의 심정이 이해가기도 (어떻게 싫다고 그렇게 사람을 모욕줄수가 있어!) 콜름의 심정이 이해가기도 (제발 좀 그만 찾아와라!!)했다. 파우릭 말대로 ‘낫 Not 나이스’하게, 미안해하지도 않고 (미안하다고는 하지만 별로 안 그래보인다) 사람을 무시하는 콜름에게 분노하다가,
사람이 착한건지 오기인건지 자신과 다른 성향의 사람을 인정하지 않고 다짜고짜 들이대는 파우릭을 보며 ‘제발 그만 좀 해라!” 하며 둘 다 한테 화가 나기도 둘 다의 심정이 이해되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한테 자신이 없을 때 얼마나 나에게 나이스한 사람이 고마웠던가. 다른 사람이 나한테 보여주는 나이스함으로 그 힘으로 나를 너무 자책하지 않고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또 나에게 무작정 다가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담스러웠던가. 딱히 악의가 없는 그들 때문에 내 시간을 방해 받고 침해 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암묵적으로 협의한 ‘나이스’의 탈을 쓰고 우리가 정말 즐거웠던 그 선을 넘어버려 나중엔 그 관계가 의무처럼 되버리는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누군가를 거절하고 싶어도 그놈의 ‘나이스’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 때문에 끊임없이 침해받는 느낌.
그런 면에서 콜름이 별로 미안해하지도 않고 파우릭을 단칼에 끊어냈을 때 ’헉!‘하면서 놀라게 되는 것이다. 콜름이 너무하다고 생각이 한켠으로 들면서도 오죽하면 저럴까 이해도 되고 아무리 싫다고 저렇게 자신을 해치면서까지(바이올리니스트가 손가락을 걸고 나를 거절한다면 나같아도 수치심에 치를 떨듯) 누군가를 거절해야 하나 싶은 것이다.
파우릭도 참 안타까운 캐릭터다. 콜름처럼 뛰어난 재능도 없고 (콜름은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사람들을 모을 수 있었지만 파우릭은 그저 나이스함만이 유일한 무기이다) 파우릭은 콜름을 의지하며 좋아했다.
어쩌면 콜름은 파우릭의 삶을 지탱해주는 존재였다. 그런데 파우릭 본인이 콜름이 필요했을뿐이지(조랑말 똥 얘기도 두시간씩 해야 하고) 콜름이 원하는 삶의 방향을 파우릭에게 전했을 때 파우릭은 콜름이 행복해지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콜름이 파우릭에게 최소한의 예의도 없었던 것처럼, 파우릭 또한 콜름이 추구하는 인생은 가치 없는거라고 비하하고 나이스하지 않게 변해버린 콜름을 예전처럼 변하게 하기 위해 애썼다. 콜름의 행복이 아닌 파우릭 본인을 위해서.
누구나 다른 삶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상처줄 권리는 없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는 내가 추구하는 것을 얻기 위해 우리는 전쟁을 불사하고 그 과정에서 피를 흘리기도 한다. (실제 손가락을 자르거나 집에 불을 지르지 않더라도)
두사람은 피를 흘리고 많은 것을 잃고 나서야 모종의 합의를 봤다. (완전하지 않은 화해, 그러나 잠시 평화상태에 들어간, 그야말로 현재진행중인, 끝나지 않은 어설픈 상태, 서로를 미워하기도 그렇고 또 그렇다고 다시 잘 지내기도 불가능하고)
콜름은 파우릭의 나이스함에 (콜름은 파우릭의 조랑말을 죽였는데 파우릭은 콜름의 개를 보호했다)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꼈고(파우릭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나를 너무 귀찮게 하지만 또 맘 놓고 미워할 수도 없는..)
파우릭은 콜름의 고맙다는 말에 다시금 나이스한 파우릭으로 돌아가 (불 지르는 파우릭이 아닌) 언제든지 개를 부탁하라고 한다. 드디어 조금은 나이스해진(자신에게 고맙다고 했으니) 콜름을 보며 조금은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원래처럼 나이스하게 살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둘은 원래대로 되돌아갈 수 없고, 하지만 피를 흘린 후에 모종의 협의, 휴전 상태, 잠시 평화상태에 들어갔으나 또 서로가 서로에게 준 상처는 계속될 것이다.
아.... 이놈의 복잡한 인간관계....
파우릭이 자신의 인생의 모토로 삼았던 ‘나이스’함을 포기하고 콜름의 집에 불을 질렀을 때 파우릭은 자신을 가두었던 무언가를 깨뜨린 것일까.
콜름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손가락을 잃어버리면서까지 자신의 인생의 가치를 주장하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대로 살기로 결단했을 때 콜름은 손가락을 잃어버린 대신 무언가를 얻어냈을까.
콜름이 손가락을 잘라 파우릭의 집에 던져버렸을 때, 그의 뒷모습은 유유했고 또 당당해보였다. 나는 나의 가치를 지켰어. 이런 느낌.
우리는 같이 있으면서 어떻게 행동해야 모종의 평화협정에 이를 수 있을까. 잃지 않고서 얻기는 힘든 것일까.
우리가 피를 너무 많이 흘리지 않고 ‘고마워’란 말로 평화에 이를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