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지 얼마 안되어 중국 심천에 살 때, 종종 우리 집 문 밑으로 광고 명함 같은 게 밀려 들어왔다.
"처녀 100원"
처녀인데 하룻밤 가격이 중국돈 100원이다..
나는 신랑한테 그 명함을 보여주며 말했다.
"한번 연락해봐. 처년데 100원이네~~근데 이 여자 한번밖에 일 못 하겠다.."
남자는 처녀를 좋아한다.
나는(그리고 나의 대학친구도) 남편에게 혹시 처녀가 아닐 수 있음을 은근히 암시하는(떠보는)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 여자들은 우리가 단연코 처녀임을 왠지 모르지만 '필사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그럴 때 (남자가 자신은 다 이해할 수 있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할 때) 안심하고 과거를 터놓았다가 결혼 후까지도 내내 그 후폭풍을 경험한 친구도 있다.
처녀를 좋아하는 이유,
순수해서? 때가 안 탔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의 어두움을 모르고 비눗방울을 쫓아다니는 아이를 보면 그저 웃음이 나오듯이,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처녀 콤플렉스와 비슷한 맥락에서 나는 화목한 가정 콤플렉스가 있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하고, 부모가 두번 이혼을 한 가정에서 자란 것이, 내가 이미 때가 탔다는 증거 같아서, 나는 순수하지 못하다는 증거 같아서, 내 자체에 대해 자신감이 없었다.
내 눈은 이미 안 좋은 것을 너무 많이 봐버렸고, 안 좋은 것을 너무 많이 느껴버렸고, 내 자신을 박박 빨아서 처녀로 만들고 싶은데, 나는 이미 처녀가 아님을,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남자(세상)는 처녀를 바랄 때의 어찌하지 못하는 슬픔이랄까.
이럴 때의 반응은 대부분 둘 중 하나다. 처녀가 아닌 나를 탓하던가(다 내 잘못이지), 처녀만을 원하는 나쁜(?)남자들(세상)을 탓하던가. 자책 아니면 비난인데, 둘 다 분노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그닥 바람직한 해결 방법은 아니다.
처녀 콤플렉스를 해결하는 방법은,
첫째, 우리는 더 많이 (그게 비록 나쁜 것일지라도) 경험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처녀보다 갑이다. 우리는 깊이가 다르다. (처녀 너는 아무 생각없이 비눗방울이나 쫓아다녔겠지만,우리는 그때 고뇌를 하며 삶에 대해 생각했다)
둘째, 처녀가 가진 순수성을 우리도 뒤늦게나마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흉터는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깨끗해질 수는 없어도 점점 옅어질 것이다. 어느 순간 희미한 흔적만 남을 것이다. 행복을 잃어본 사람은 행복이 소중함을 안다. 처녀는 행복이 공기 같은 거라 행복이 당연한거지만, 우리는 이 공기가 나를 살게 함을 안다.
우리는 스쳐가는 바람에도 떨리는 감수성을 가졌다. 우리는 더 많이 웃을 수 있고 더 많이 울 수 있는 가슴을 가졌다. 감수성은 인간이 가진 고도의 특징이다. 고로 우리가 한수 위다.
우리는 깊이가 있는 사람이고, 다시 순수해질 수 있는 사람이고, 우리는 행복을 온몸으로 느낄 준비가 된 사람이다. 우리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우리가 한수 위다.
잊지 말고,
우리의 콤플렉스를 우리의 매력으로 승화시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