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25 녹색정치연구소 토론 내용
안녕하세요. 저는 김주온입니다. 2016년 총선에서 비례 후보로 출마했고, 그 해 10월부터부터 2018년 9월까지 2년 동안 공동운영위원장으로 활동했습니다.
오늘 토론자로 초대받으면서 당시 녹색당 대표자로서 녹색당 전개에 관한 경험과 소감을 나눠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녹색당을 통해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보고서를 읽으면서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녹색당 창당 이전의 여러 시도들과 환경운동 단체의 계보 같은 것들, 이름만 들어봤던 조직들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제가 활동했던 당시에 이를 알았다면 무엇이 달랐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저는 녹색당이 계보가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돌연변이처럼 새롭게 나타났다고 생각하기도 했는데요. 활동하면서 왜 환경운동연합 같은 큰 단체 회원들은 녹색당과 거리를 둘까 항상 궁금했었습니다. 아마 자체적인 정치 노선이나 방침이 있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을지 생각해봤습니다.
어쨌든 저는 녹색당에 계보가 없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가능성을 많이 느꼈습니다. 워낙 기존의 한국 정치 문화가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고 개방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점이 제가 녹색당을 선택하게 되는 데 영향을 미쳤던 것 같습니다.
저는 녹색당을 2012년 선거를 앞두고 가입했는데, 녹색당을 환경정당이라고 인식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특정 의제를 뛰어넘어서 다른 감각을 촉진하는 정치 문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어요. 굉장히 추상적인데, 제가 그때 느꼈던 것을 그대로 말하자면, 많은 분들의 표현대로 '내가 나인 채로 정치를 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여기서의 '나'는 저의 경우 여성이고 청년이고 소수자인 정체성들이 있겠죠. 이건 단순한 생태 감수성도 아니고 녹색당 감수성 같은 것인데, 이론적인 이해나 인식적인 차원을 넘어서 어떤 감각적인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느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잘 모르지만 이 공간에 들어가서 녹색 정치 의제들을 기꺼이 배우고, 내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여러 신념들과 통합할 수 있겠다는 동기부여를 해주는 정치 공간이었습니다.
기존의 한국 사회, 특히 한국 정치판이 정치 혐오를 조장하는 여러 요소들을 가지고 있지만, 이 공간이 무균실이나 방공호 같은 것은 아니지만 여기를 거점으로 삼아서 내가 꿈꾸는 변화를 여기 이 조직에서부터 만들어보자, 이 조직 자체가 그런 변화가 되는 것에서부터 조직적으로 실험해보고 실현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오히려 당시 저는 스스로가 생태 감수성이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회운동의 언저리에 있긴 했지만 대학생이었고 환경운동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어요. 그렇지만 그 시기에 유난히 마음이 쓰이는 운동의 현장들이 있었습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투쟁이라든지 두물머리의 4대강 공사 반대 싸움, 좀 더 뒤에 당원이 된 후이긴 하지만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같은 현장들을 가면 녹색당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냥 연대만 하러 오는 당원들이 아니라 거기에 살고 있고 싸움의 연대자만이 아닌 당사자로서, 거기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내면서, 삶을 투쟁과 통합하면서 살아가는 분들 중에 녹색당원들이 보였습니다. 자연 파괴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보호주의적인 태도로 환경을 말하지도 않았고, 거기서 정말 중요했던 것은 개발주의적인 국가 폭력에 반대한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문제화하는 투쟁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거기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었어요. 탈핵도 마찬가지인데 '원전이 없으면 에너지를 어떻게 만들 건데'라고 물었을 때 이미 재생에너지를 생산해서 그렇게 살고 있다거나 농사를 짓고 있다거나 그런 식으로 보여주고, '그럼 어떻게 살아야 되냐'라는 질문을 하고 말 걸기를 하는 정당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 저는 당비만 내면서 BIYN이라는 단체에서 따로 기본소득 운동을 해오고 있었는데, 녹색당이 본격적으로 기본소득을 정책화하려던 시기에 녹색당의 기본소득 정책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받고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생태적 관점에서의 기본소득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싶은데, 그와 관련해서 잘 알지 못했어요. 또 실질적으로 공약화될 수 있는 정책, 즉 예산을 얼마를 쓰고 어디서 끌어와서 어떻게 주는지 이런 것을 자체적으로 할 역량은 없었기 때문에 녹색당에서 함께하자고 제안해준 것이 굉장히 반가웠습니다. 기본소득 담론이 생태적 관점을 끌어안아서 더 풍성해지고 깊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 작업에 기꺼이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정책 작업을 하면서 당원들과 기본소득에 대한 토론도 많이 하다 보니까 당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더 생기면서 기본소득 활동가로서 출마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녹색당이 기본소득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를 굉장히 신선해하는 분들이 많이 있었고, 녹색당이 기본소득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에서 오는 새로움도 있었기 때문에. '녹색당은 생태 환경 쪽만 말하는 줄 알았는데 굉장히 급진적인 분배 정책을 이야기한다'는 이미지 자체도 녹색당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본소득과 녹색 정치가 서로를 보완하는 식으로 녹색당 차원에서도 외연이 확장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선거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복지 관련 단체들, 당사자들을 많이 만나고 간담회나 정책 설명회를 했습니다. 그분들 입장에서도 '녹색당이 왜 여기 와서 이렇게 하지?' 쪽방촌에 간다거나 노인 당사자 운동하시는 분들을 만난다거나 장애인 단체를 만난다거나 그런 식의 매개가 있었기 때문에 기본소득이 확장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선거 경험이 정말 좋았고 녹색당에 더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 해에 있었던 운영위원장 선거에 출마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임기가 시작한 날 백남기 어르신이 돌아가시고 민중총궐기가 그다음 주부터 시작되었는데, 정세가 지금처럼 급변하는 시기였습니다. 촛불 광장이 열리고 조기 대선이 예상되고 대한민국 최초로 탄핵을 할 수도 있다는 흥분 속에서 사람들이 광장에서 여러 가지 새로운 이야기들을 많이 하려고 했고, 녹색당도 ‘시민 정치’라고 하는 화두도 던졌습니다.
그때 사회적으로는 페미니즘, 미투 운동 그리고 성평등 가치들이 떠오르고 있던 시기였어요. 그런데 동시에 당 내에서도 청년녹색당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되었습니다. 날짜도 잊지 못해요. 11월 16일 민중총궐기 날. 전당적으로 전국에서 온 당원들과 독자적인 사전 집회를 했는데 성황리에 진행하고 본 집회도 잘 마무리하고 돌아간 바로 그날 밤에 공론화가 되었습니다. 녹색당에 대한 실망, 분노, 외부적인 비판 그리고 여러 가지 폭풍이 왔던 상황 속에서 조직 문화를 성찰하고 다시 배우려는 전당 차원의 뼈를 깎는 노력이 시작되었죠.
동시에 광장에서도 여성혐오적인 내용으로 비판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성평등이 민주주의를 완성한다"는 구호도 그때 이후로 등장했는데, 그런 관점이 너무 부재했기 때문에 더 이야기가 되었던 것 같고, 저는 그것이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했어요.
녹색당이 항상 반 발짝 먼저 겪는 것들이 있어요. 조직적인 고민이라든지 성폭력 사건이라든지 그 외에 여러 가지 논쟁적인 담론들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기 전에 반 발 앞서서 당을 휩쓸고 가는 패턴이 보였습니다. 그만큼 먼저 그런 논의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성평등한 민주주의도 그런 거였고, 시대정신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우리가 그것을 잘할 수 있어서라거나, 우리가 이미 성평등한 조직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되는 방향이기 때문에 이것을 해나가야 된다는 관점에서 2018년 지방선거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후보 선출, 출마, 선거 운동하고 정책 공약 만들고 이런 모든 전 과정에서 성평등한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방법, 선거 운동을 할 때 성평등한 선거운동 가이드를 만드는 것이나 아니면 애초에 후보 선출을 할 때 여성 후보들의 출마를 어떻게 독려할 것인지, 또 주요한 슬로건 같은 것들은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했어요. 그 결과 기대 이상의 반응이 왔었던 것도 이것이 우리가 헛다리를 짚은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연구에서도 지적하듯이 그것이 왜 당원 숫자로 드러나는 당세가 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저도 깊이 생각을 해보지는 못했는데요. 2016년 총선은 총선 준비와 함께 ‘1만 당원 만들기’라고 하는 선명한 조직적 목표가 있었어요. 1만 당원이 되면 어떤 전환점처럼 당이 도약할 수 있는 최소 기반이 될 것이다 해서 1만 당원을 목표로 열심히 달렸는데 총선 전까지는 달성을 못 했어요.
그런데 그때 녹색당이 기세를 몰아 원내에 진출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결과적으로 소수였던 사람들, 당원이 아니었던 사람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던 거예요. 녹색당이 실제로 얻은 득표율을 보고 충격을 받고 '더 밀어줘야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총선 다음 날 엄청나게 가입을 했고, 그 시기에 당원이 확 늘면서 1만 당원 달성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죠.
그런데 그 이후에는 국민소득 2만 달러 이런 것처럼 2만 당원, 3만 당원 이렇게 바로바로 목표를 상향하기도 민망하고 2만 당원 달성 또한 쉬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실을 다지고 더 활동하는 당원들을 많이 늘려야 된다는 식의 목표를 세웠던 것 같고요.
하지만 광역단체장 출마를 저희가 처음으로 하게 되면서 그에 필요한 고액 기탁금 모금을 하는 과정에서 1만 원 캠페인이라는 것을 했어요. 그러니까 소액 후원, 즉 1만 원씩 많은 사람이 하면 되니까 그것이 일종의 지지 세력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당원 가입까지 해달라고 하기에는 선거 국면에서 메시지가 너무 복잡해지고 또 일종의 그것이 문턱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일단 1만 원 후원하는 것까지, 그래서 녹색당이 일종의 돈을 한 번이라도 내본 사람이면 다음에 당원이 되거나 아니면 투표를 하는 식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으니 일단 물꼬를 트는 식으로 해보자고 목표를 세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당시 선거 시기에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에 대한 것을 저희 후보 출마를 통해서 보여주기도 했지만, 당시에 민주당의 지역 광역단체장 후보들 출마자 성비를 전국 지도로 보여준 것을 패러디해서 보여줬는데 화제도 되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 낙태죄 헌법소원 진행 중인 과정에 정당으로서 최초로 의견서를 내고 후보들이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하고, 공약 만들 때 보편적 돌봄 제공자 모델에 기반을 두고 정책이나 슬로건을 발표한다거나 하는 여러 가지 시도들이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라는 슬로건만큼 그때그때 큰 이슈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저한테는 녹색 정치의 경계를 확장한 정말 감격스러운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제가 세 번째로 녹색당을 통해서 하고자 했던 것은 성찰적인 대화와 배움 그리고 친교 혹은 교육, 영어로 correspondence라는 것이 가능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 구성원들의 정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 중에 레베카 솔닛이 쓴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라는 책이 있는데요. 트럼프 당선 후에 썼던 글들을 묶은 책인데, 번역서가 막 나왔을 때는 2018년 말이어서 임기가 끝나고 나서 읽었어요 거기에 실린 글들 중에 가장 좋았던 글이 <성가대에게 설교하기>이라는 글입니다. 지금 다시 봤는데도 그 글이 제일 좋더라고요. 활동하면서 제가 제일 고민했던 내용에 대한 실마리가 담겨 있어서예요. 우리는 확장성을 어떻게 가질 것인가, 어떤 활동을 통해서 어떤 태도로 확장성을 고민해야 하나, 말 걸기를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것입니다.
'성가대에게 설교하다'라는 것이 미국에서 쓰는 관용 표현인데, 이미 당신과 의견이 일치하는 청중에게 자꾸 의견을 늘어놓아서 귀찮게 군다는 뜻이래요. 그러니까 이미 의견이 일치하는 사람들한테 말하는 것은 소득이 없는 일이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향해서 계속 말을 해서 의견을 바꿔야 된다는 식으로 쓰이는 말인데, 이 글에서는 왜 성가대에게 설교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당 내 결집이나 외부 확장성이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지만 한정된 자원으로 어딘가 좀 더 우선순위를 둬야 된다면 그 시기에 저는 저희 당 상황을 고려하면 선거 준비와 별도로 일상적인 당 활동 운영을 할 때 전국당, 지역당 활동가들, 당원들의 역량을 늘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성가대에게 설교하는 것도 진짜 어려운 일이거든요. 아는 이야기를 반복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들은 교회 맨날 오잖아요. 매주 오잖아요. 얼마나 지겹겠어요. 그런데 저나 저희 부모님이 성당에서 신부님들 강론을 들으면 정말 평가 기준이 높아요. '또 똑같은 소리 하네' '또 저 재미없는 소리 하네' 이렇게 되는데, 그것이 아니고 똑같은 소재를 가지고도 '어떻게 저렇게 감동스럽게 새롭게 말하지' 이렇게 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를 새롭게 인식하게 하고 깊이 생각하게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더 나아가도록 동기부여하는 이야기는 절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책에 나온 말 중에서 '설교자로서 내 임무는 모두가 동의하는 지점을 찾아서 그 지점으로부터 한 발짝이라도 더 나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들려는 것이다.'라는 게 있어요.
차이를 용인하지 않는 절대주의도 아니고 모두를 소진시키는 완벽주의도 아니고 마음들의 협동을 촉진하는 그리고 이미 품고 있는 신념을 더 깊이 탐구하도록 격려하는, 그래서 우리가 일치한다고 생각했던 그 지점이 목적지가 아니라 출발점이 되는 방식으로 당 내에 흐르는 이야기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왜냐하면 여기 책에도 나오는 것이 성가대가 사라지면 일은 누가 하냐는 거죠. 당에서도 당비를 내고 활동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당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기 때문에 너무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고요.
공동 대표로 바뀌기 전의 직함도 공동 ‘운영’위원장이었기 때문에, 저는 '운영을 한다는 게 뭘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 직책은 사실 전국 운영위원회의 장인 거예요. 그래서 전국 운영위원회(지금은 전국위로 바뀌었는데) 회의체 자체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했죠. 디테일한 회의 준비, 그 회의에서 어떻게 발언하고 어떻게 회의 자료를 숙지하고 회의 분위기와 회의 프로세스를 어떻게 만들고, 같이 회의를 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 약간은 자기 계발적으로, 그러니까 효율성과 생산성 중심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이런 것들도 꽤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떨 때는 '내가 좀 더 정치인으로서 당 밖에 나가서 하는 활동들에 더 방점을, 그러니까 더 많이 해야 되는데 내가 역량이 없어서 그걸 못하는 거 아닐까? 기존 운영위원장들처럼 예를 들면 의제를 가지고 전국을 다니면서 이슈 파이팅을 하면서 당세를 불리는 활동을 못하는 리더가 아닐까?' 생각도 많이 사실 했었는데, 다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리고 제가 더 관심 가는 쪽이 그런 쪽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안타깝게도 당시 남성 공동 운영위원장이 임기 초반에 사퇴를 했기 때문에 역할 분담을 할 수 없기도 했었고, 대신에 선거 준비를 통해서 정치적인 차원의 메시지를 내자고 생각했습니다.
낸시 프레이저라는 정치 철학자가 『좌파의 길』이라는 책을 냈는데, 거기에 제가 녹색당을 통해서 하고자 했던 것과 가까운 표현이 나와요. “사회의 무대들을 구획하고 각 무대 안에 무엇을 포함시킬지 결정하는 경계선의 재설정”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사안을 정치적인 문제로 다룰 것인지, 어떤 정치적 문제에서 다룰 것인지를 스스로 정치적으로 결정하는 것, 이거를 ‘메타 정치적’인 거라고 얘기하거든요.
얘를 또 다르게 표현하면 '정치적인 것을 구성하는 바로 그 정의와 구획, 그 틀 자체를 민주화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녹색당은 어떤 정당인가요? 녹색당의 성과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반복적으로 썼던 내러티브가 '녹색당은 그동안 정치적 주체로 여겨지지 않았던 존재들, 정치적 주제로 여겨지지 않았던 의제들을 정치라는 공간 안으로 초대하고, 자리를 주고 가시화하고자 노력했다'고 얘기를 해왔어요.
이게 낸시 프레이저가 얘기한 일종의 경계 투쟁이기도 하고 메타 정치적인 행위였고, 저는 그것을 시민 교육이라고도 생각했는데요. 사실 이런 류의 활동과 의미 부여가 소위 이번 연구에서 제목에 들어간 ‘정치 세력화’ 혹은 세력 확장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걸 어떻게 평가해야 되는지 사실 잘 모르겠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게 평가될 수 있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다른 정치 문화를 상상하게 하는 것도 있습니다. 녹색당이 지구적 정당이기 때문에 글로벌 그린스의 존재가 있기 때문에, 그 풀 안에서 구체적인 인물, 사례, 성취의 레퍼런스를 확보할 수 있고 당원들에게 소개할 수 있고, 이건 굉장한 자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한국 정치 바깥에서 다른 가능성들을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소개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류학자 제임스 퍼거슨의 짧은 소책자 같은 책이 있어요. 『지금 여기에 함께 있다는 것』이라는 책이거든요. 이분이 원래 기본소득과 관련한 분배 정치적 근거를 연구하는 사람이기도 한데, 여기서 ‘현존’의 감각에 대해 얘기해요. 그걸 통해서 분배의 권리를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 사람의 주장은 '지금 우리가 다른 사람과 함께 존재한다는 것 자체로 사회적 의무가 생긴다'는 거예요. 시민권이나 임금 노동자로서의 지위와도 아닌 방식으로, 그냥 옆에 있는 사람에게 갖게 되는 사회적 의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요. 그 사람을 몰라도, 이름도 모르고 뭐도 몰라도 그냥 같은 장소에 있는 거... 옆에 왔을 때 자리 좀 당겨줘야 되고, 앞에 있으면 음식도 나눠 먹어야 되고... 이런 식의 감각인 거죠. 하지만 일종의 사회적 사각지대가 있기 때문에 바로 앞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그래서 이 현존은 정치적, 사회적 인식 과정을 통해서 인정이 돼야 된다고 주장하는데요.
제가 추구해 온 녹색 정치의 가치가 그런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함께 있다는 걸 인식하게 하는 정치적인, 사회적인 노력을 정당 차원에서 하는 거죠. 그래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것들을 가시화하고 드러내는 건데, 그게 녹색당이 다른 정당에서 전혀 이야기하지 않을 때 소수자와 장애인과 이주민, 난민, 동물권을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 여기에 존재함을 계속 이야기해 왔던 활동들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후속 연구도 많이 이루어지겠지만, 이런 식으로 제가 기억하는 경험과 배움들을 어떻게 어떤 틀로 평가할 수 있을까? 정치 세력화라고 하는 것에 담길 수 있을까? 녹색 정치의 성장과 성숙... 또 그에 대한 평가 기준이 선거 결과나 당원 수 이외에 또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누구의 어떤 행위와 어떤 장면들을 기록하고 남겨야 할까?
왜냐하면 저도 기억이 벌써 다 안 나요. 그러니까 절대 못 잊을 거라고 생각했던 강렬한 경험들이... 녹색당 활동을 하는 동안의 희로애락은 제 인생 통틀어서 비교해도 없을 만큼 강렬해서 '못 잊겠지'라고 했는데 벌써 기억이 안 나요. 제가 누구를 막 엄청 미워하고 원망하고 했던 것도 생각이 안 나요. 아 이건 진짜 기억이 안 나는구나. 녹색당은 다른 데서 기록을 안 해주니까 우리가 기록해야 하는데. 일단 나부터 기록해야 되는데 기록할 여력이 없고 여유가 없어서 못했던 것들이 그냥 다 사라지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가지고...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심지어 당 홈페이지도 몇 차례 날아가고 너무 충격적인 거예요. 어쨌든 어떻게 기록을 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남았습니다.
(게으르게 기록한 것에 대한 반성으로 5개월이 지난 지금이라도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