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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elaide Son Apr 01. 2022

금연예찬(禁煙禮讚) 3부

담배와 절연한 나날들

20대 내내 애연가로 살던 내 주변엔 언제나 흡연하는 친구들이 득실득실했다. 평소엔 줄담배를 태우는 편은 아니었지만 술자리라도 같이 하는 날은 돌림노래처럼 하염없이 담배를 꺼내 물게 된다. 둘이 아니라 셋이 모이면 그야말로 쉴 틈이 없다. 나 못지않게 지독한 애연가였던 친구 한 명은 언젠가 같이 등산을 다녀오는 길에 맛있게 한 대를 빼어 물기 시작하더니 피톤치드로 깨끗하게 정화된 폐 속에 온갖 발암물질 덩어리를 밀어 넣으며 이렇게 말했다. "캬, 담배가 몸에 나쁜 것만 아니면 평생 담배나 피우다가 죽었으면 좋겠다!" 그 말이 한심해서 웃음이 나왔지만 그렇게 맛있게 피워대는데 옆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나도 뒤늦게 한 까치를 같이 태우는 수밖에.

새파랗게 어린 여자아이가 너구리처럼 담배를 피워대는 것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종종 그런데 담배는 언제 끊을래? 하고 묻기도 했는데 사실 별 생각은 없었다. 그때만 해도 금연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사항이라고 생각했으며 담배는 기호품이지 중독물질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제라도 끊으면 그만이지, 왜 그걸 시기를 정해 묻는 걸까 되려 고민했을 뿐. 그러나 나에게도 강제적으로 금연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다행히도(?) 신명 나게 담배를 피워대던 20대 시절을 지나, 취직하고 회사에서 근무하는 9-6 동안은 담배를 태울 수 없는 간헐적 흡연자가 되었다. 출근길에는 바쁘고, 정성 들여 단장한 몸에 퀴퀴한 연기를 뿌릴 수가 없어 굳이 담배를 태우지 않았고 퇴근하고 나서 남편과 골목길에서 접선하여 한 까치를 나누어 피우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정도의 마일드한 흡연을 하게 되었다. 신혼 때 남편은 3교대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자연히 나와 퇴근 시간이 엇갈렸다. 어느 날은 내가 먼저 퇴근해 늦은 귀가를 하는 남편을 기다렸고 어느 날은 나이트 근무를 마친 남편이 집에서 낮잠을 한 숨 자면서 나를 기다리는 식이었다. 뒤에 온 사람이 "잠깐 내려올래?"하고 카톡을 보내면 그것이 우리 부부의 암호였다. 집에 있는 사람이 서랍 속 담배 한 갑과 라이터를 챙겨 들고 언제나 만나는 그곳(요즘 아파트는 대부분 금연아파트라 담배를 태울 수 있는 특별한 스폿을 미리 물색해두어야 했다.)으로 총총 달려 나갔다.


어느 5월에 임신을 확인하고는 나는 올 것이 왔구나 싶었지만 비교적 담담하게 이 강제적 금연을 받아들였다. 실제로 많은 지인들이 내가 깨끗하게 금연하는 것을 보고는 그게 끊어지는 게 아니고 참는 것이라던데 참을만하니?라고 물었는데 실제로 참을만했다. 사실 입덧이 꽤 심해 담배고 뭐고 이상한 냄새가 나는 모든 것들이 싫은 상황이었다. (10달 후 나는 건강하게 출산했으며 아이는 지금도 무척 건강하지만 흡연은 태아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악영향을 준다는 것이 임상적으로 확인되었으니 임신을 준비하는 여성/남성은 담배를 끊는 것이 백 번 옳다.)


출산하고 나서는 한동안 모유수유를 위해 청정한 몸을 유지해야만 했으므로 자연히 술과 담배를 멀리하게 되었다. 모유수유를 끊고 나서도 품 안에 아기를 안아야 하기 때문에 감히 담배를 태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이가 성인이 되고 난 후에 흡연을 선택하는 것은 그의 자유이나 그러기 전에 부모에 의해 본인이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유해물질을 흡입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비장하게 마음먹었던 걸 보면 아마 슬금슬금 다시 담배가 피우고 싶기는 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 나는 결국 담배를 다시 찾았다. 출산한 지 꼭 6개월 만이었다. 

(4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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