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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드라마 대본, 망신살이 잔뜩 끼었수다

넥스트 잡을 찾습니다

by 우여곡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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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간의 드라마 아카데미 초급반에서는 다양한 것들을 배웠다. 나는 앞서 밝힌대로 영화와 드라마, 예능 등의 영상 콘텐츠를 마케팅하고 홍보하던 일로 대부분의 첫 직장에서의 이력을 채워왔다. 내가 그간 일 때문에 후루룩 읽고 지나갔던 대본 한 줄 한 줄에 깊은 의도가 있었고 전해져 내려온 공식이 있었다. 이게 뭐냐고 비웃었던 부분들에는 작가의 깊은 생각이 있었다. 졸면서 대충 넘긴 지문과 대사에는 치열한 고민이 있었다.


약 2~3개월 정도의 이론 수업을 한 뒤 처음으로 '합평'이란 것을 하게 되었다. 35페이지 70분 분량의 단막 드라마 대본을 직접 써보고 선생님과 반 수강생들의 공개적인 평가를 받는 것이었다. 나는 어쩌다 보니 그 반 합평의 첫 번째 주자가 되었다. 성이 'ㄱ'으로 시작하는 자의 숙명 같은 거였다.


며칠 아이템을 고민하다가 내 인생 첫 대본을 써 내려갔다. 사실 주변 수강생들은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던 것에 반해, 나는 그간 수많은 대본을 보았기에 그것과 비슷하게 시늉을 내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때로는 '오, 나 좀 잘 쓰는 것 같은데?'하는 자뻑의 심정도 들었다. 클라이맥스에서는 내가 쓴 글에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드디어 다가온 합평날. 그날은, 1월 새해의 첫 주였다. 수업이 끝나자, 내 일 년 사주에 망신살이 낀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독설이었고 그 이야기를 듣는 내 얼굴은 내내 화끈거렸다. 내가 '킥'이라고 생각한 부분은 멍청한 발상이었고, 내가 '디테일'이라고 생각한 부분은 한없이 불필요하고 구구절절한 것이었다. 광장에서 벌거벗고 망신당한 느낌이었다. 합평 자체가 처음이거니와, 내가 반의 첫 차례였기 때문에 합평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넘어서 선생님이 어떤 스타일로 진행을 하는지 전혀 경험치가 없었던 터라 태연한척 하려해도 자존심에 데미지를 안 입을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만약 내가 입봉한 드라마 작가가 되고 내 작품이 대중에게 공개된다면, 수많은 악플과 조롱을 받을 가능성에 직면하는 것이고 그것이 진정한 합평일 텐데 고작 그 정도 규모의 수업에서 이뤄지는 합평이 뭔 대수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선생님은 합평 이후 지적 받은 부분을 고치면서 실력이 많이 는다고 이야기를 하셨고, 그 말은 결국 옳은 말씀이 되었다.


나는 그 합평 이후 망신살 끼었던 단막극 대본을 일부분 고치되 선생님의 평 중에 끝내 공감하지 못했던 부분은 그대로 두고 완성하여 오펜 공모전에 지원했다. 또 다른 이야기로 2부작 짜리 단막극을 써서 SBS 공모전에 제출했다. 그리고 드라마 아카데미 초급반이 끝날 때쯤, 단막극은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데 소재나 여러 시공간적, 인물 규모에 제약이 있어 갑갑하다는 마음이 들어, 수업에서 배워본 적 없는 미니시리즈를 쓰기 시작했다.


초급반 수료 후 새롭게 수강을 시작한 아카데미 중급반 선생님은 기본기가 완성되기 전에 미니시리즈를 시작하는 것은 안 좋다는 일종의 '경고'를 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때는 이미 미니시리즈 1-2부를 완성하고 전체 12부작 기획안까지 써서 MBC공모전에 제출한 다음이었다.


그 사이 오펜과 SBS에서는 줄줄이 탈락했다. 혹시나 했는데 아니었다. 역시 기본기가 부족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미니시리즈는 보나 마나 탈락이겠지 싶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 날, 지금 다니고 있는 나의 두 번째 회사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고 첫 출근 준비를 하던 때, MBC 공모전에 대본을 냈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와중에 한 통의 메일이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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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지금의 일을 할수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하면 좋은 일은 무엇일까? 40대가 되자 더 깊어진 진로에 대한 고민과 그 탐색 과정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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