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의 생업과 관련된 것이 아닌 무언가에 이렇게 오랫동안 진심을 다해 몰두하고 매달려본적이 있었던가. 학창시절에 좋아하고 팬클럽에 가입한 스타들- 서태지나 에쵸티나 지오디- 등이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내 뜨거운 마음의 유지기간은 길어야 4년이었다.
손흥민이 토트넘 구단에 입단한 2015년보다는 조금 늦게, 국뽕으로 골장면과 하이라이트 위주로 보다가, 본격적으로는 결혼한 2018년부터 7년간 열심히 경기를 보았다. 그러면서 나는 손흥민의 팬에서 토트넘의 팬 그리고 해외축구팬이 되었고 그 사이 나는 30대에서 40대가, 미혼여성에서 엄마가, 그리고 나의 딸은 7살이 되었다.
많은 토트넘 팬들이 토트넘 팬인 척 하지만 사실은 손흥민 팬이라고 일침을 당하기도 한다. 나 역시 가끔 헷갈리기는 한다만, 나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토트넘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을 좋아했다. 사실 손흥민은 내가 학창시절에 팬질한 스타들과 같은 마음으로 좋아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경기나 개인 활동 같은 것을 열심히 챙겨보는 것도 굿즈를 사모은 것도 사진이나 영상 짤을 모으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세계 최고의 리그인 프리미어리그의 위대한 선수이자 토트넘에서 빛나는 에이스이자 캡틴으로 뛰는 선수의 활약상에 열광하고 우승과 지지리도 인연이 없던 구단의 트로피를 향한 길고 긴 여정에 몰입했던 것 같다.
그래서 손흥민이 토트넘을 떠날 것 같은 느낌을 폴폴 풍기던 최근 며칠간 각종 이적설 뉴스를 비롯한 작은 시그널 하나하나에 집착하며 불안해했고 급기야 꿈에 손흥민이 나와서 LA로 간다고 탑시크릿처럼 말해주는 예지몽도 꿨다. 바로 다음날 손흥민이 구단 그리고 프리미어 리그를 떠난다고 공식 발표를 하자 이번주 내 주말은 그저 슬픔 그 자체였다.
1년만 더 뛰고 FA로 떠나지 왜? 아직 프리미어리그에서 통하는데 왜? 다른 리그도 아니고 미국리그로는 왜? 선수가 더 해보지도 않고 도전을 쉽게 멈춘 것만 같아 온갖 물음표가 가득했고 역사적인 행보를 마무리하기엔 아직 이른 것 같은데 끝이라고 생각하니 속상함 뿐이었다. 런던에서 손흥민이 뛰는 토트넘 경기를 직관하는 것이 내 버킷리스트였는데 끝내 이루지 못하게 된 것도 아쉬웠다.
하지만 서울 6만 5천 관중 앞에서의 성대한 고별전이 마무리 된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지금이 구단과 이별할 가장 적기인 것이 확실했다. 사람들은 박수칠때 떠나라는 격언을 늘 듣고 또 말하고 살지만 의외로 맺고 끝는 타이밍을 잘 잡지 못한다. 그런면에서 전성기가 지나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주는 일이 잦아지는 시점이자, 사람들의 간절했던 염원이 이뤄져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 모두가 박수쳐주고 눈물을 흘려주는 이별을 택한 것은 다시 생각해보면 잘한 선택이었던것 같다. 그리고 이런 면모 덕에 훗날 누군가가 실력적으로는 손흥민을 뛰어넘을 수 있어도 스타성 측면에서는 쉽게 뛰어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순간을 경기장에서 같이 눈물을 흘리며 마무리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올해는 안 가려고 했는데 고별전은 지나칠 수 없어 비싼 돈을 주고 좋은 자리에 앉았다. 올해 가장 잘한 소비로 꼽겠다. 신비롭고 공교롭게도 손흥민이 모든 인사를 마치고 퇴장하자마자 하늘도 우는 것 처럼 비가 막 쏟아졌다. 그전까지는 경기를 마칠 수 있게 이별을 잘 할 수 있게 꾹 참았던 것 마냥. 토트넘이 올해 극적으로 우승한 것 포함해서 세상에서는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온 우주의 마음이 모이면 이뤄지는 영적인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앞으로 같은 레벨로일지는 모르겠지만 토트넘은 계속 응원할 것이다. 그 사이에 좋아하는 선수들이 많이 생겼으니까. 그리고 미국 LAFC도 응원해야지. 그러고보니 세상에 좋아하는 것이 여러개로 늘어나는 것, 그것만으로 긍정적이고 의미있다 말하겠다.
토트넘의 레전드, NO7, 캡틴 SONNY
오랫동안 어딘가에 진심으로 열광하고 몰입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준 것에 감사하며
나의 휴가도 여름도 젊음도 열정도 취미생활도 왠지 다 끝난 것 같아 좀 많이 싱숭생숭한 2025년 8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