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때마다 아무것도 없었다. 원래 무슨 음식이 놓여 있었는지도 알 수 없는 지경이어서 무엇이 채워지리라 기대하며 군침을 생산하며 기다리기도 쉬운 노릇이 아니었다. 괜찮은 뷔페식당이라며 비를 뚫고 데리고 왔는데 민망한지고. 오늘따라 손님이 많아 유난히 경쟁이 치열했다.
허기진 기다림의 시간은 하릴없이 말로 때워야 했다. 말하면 더 허기지니까 가자고 해서 미안한 내가 말해야지. 승진한 사람 축하한다고 데려온 자리다. 앞에 앉아 있는 건 나뿐이지만 온 우주 만물이 경하 드리고 있소. 승진에 이르기까지 견마지로를 다하시느라 견마가 되신 것 같은 그 기분 저도 조금은 알지만, 정말 견마가 되지 않고 대신 견마가 될 신차를 뽑으셨던데 과장님 격에 걸맞는 고급 세단의 승차감이 아주 좋습디다. 잘하셨어요. 가족들이 너무 좋아들 하시지요?
"시댁은 뭐 다들 잘나셔서 시큰둥 하시고요. 친정엔 아직 말도 안 했어요. 제가 선택한 삶이니 자업자득이죠."
말문이 막힌다고 아무 말로나 대강 위로를 던지면 안 된다는 건 내가 당해봐서 조금 안다. 어떤 사연인지 때가 되면, 마음이 허락되면 자연스레 얘기를 꺼내기 마련이다. 일가정 양립이란 구호가 생경하던 시절, 어느 한쪽을 택한 죄로 어느 한쪽에선 냉랭한 대접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투였다. 직장에서 살아남은 여성은 남성이 되길 요구받았다. 그리고 가정에선 죄인이 되었고.
죄인은 또 있었는데, 예상외의 손님 대란을 맞은 뷔페 종업원이었다. 와중에 그래도 주섬주섬 열심히 건져 먹었건만 연신 찾아와 많이 못 드셨지요? 사과하느라 바쁘다. 장난삼아 '예'라고 대답했는데, 내 연기력이 부족했는지 진심으로 알아듣고 남은 닭고기 반찬을 다 몰아서 가져오셨다. 찍어놓질 못했지만 배불리 먹고도 남았다.
그녀의 승진으로 여성의 남성화는 이제 얼추 완성된 것으로 간주하고, 이제 남성의 여성화를 좀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 이건 농담 아니고 진지한 멘트다. 물론 선배에게 주워들은 이야기다. 에스핑 안데르센이란 분이 주장한 '남성 생애 주기의 여성화'란 개념이라고. 나도 조만간 읽어봐야겠다. 늦었지만 생체실험도?
가게 들어설 때만 해도 비가 입구까지 들이치더니만 부른 배를 두드리며 나설 땐 비가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