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있어 보편적인 사람을 대상으로 기획합니다. 평균 성인 남성과 여성이 걷는 속도, 양손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사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말이죠. 특히 대량 생산 제품을 만드는 제조 회사의 경우 타깃 집단의 라이프 스타일과 관심사에 대해서 의논합니다. 하지만 장애 유무를 우선적으로 꺼내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입니다.
<기준점과 포용적인 디자인 워크숍>은 기획의 출발점을 배제되었던 사용자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양손을 자유자재로 쓸 수 없는 사람은 신발 끈을 어떻게 묶을까? 앉아서만 생활하는 사람은 어떻게 높이 있는 물건을 사용할 수 있을까?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피트니스를 이용할까? 등 평소에 인지하지 못했던 사용자들을 생각해 보고 그들의 니즈를 기반으로 해서 아이디어를 발전시켰습니다. 또한 장애 당사자나 특정 사용자가 가지고 있던 장벽에 대한 해결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용자들에게까지 혜택을 줄 수 있을지? 확장성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오늘은 <한국 장애인 문화예술원>에서 함께 했던 기준점과 포용적인 디자인 워크숍을 어떤 과정으로 진행했는지 공유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당연하게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으로 워크숍을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아이디어를 떠올리기에는 막막할 수 있으니 여러 가지 키워드를 준비하여 배포했습니다. 예를 들어 금융, 지하철, 공공시설, 운동, 신발, 뮤지엄 등의 단어입니다. 아이디어의 자유로운 확장을 위해 제공하는 단어의 위계를 동일하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먼저, 일상생활에서 당연하게 이용하는 제품과 서비스 중 누군가를 배제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들을 적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그 제품과 서비스가 어떤 사용자를 기준으로 삼고 있는지, 이에 따른 배제된 사용자는 누가 있는지 정리합니다.
예를 들어 ‘신발 끈을 묶는 상황’이 있을 수 있죠. 신발 끈이라는 것 자체가 기준으로 삼고 있는 사용자는 ‘양 팔, 양손이 모두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하지만 배제된 사용자는 누구일까요? 절단 장애로 인한 한 손 사용자, 혹은 양손을 자유자재로 쓸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삭의 임산부도 허리를 숙여서 신발 끈을 묶거나 몸을 낮추기에 불편감이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1) 상황 2) 기준 사용자 3) 배제된 사용자 4) 왜 이들이 배제되었다고 생각하는지를 한 가지 세트로 묶어서 조별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각 조에서 발견한 기준은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요? 몇 가지만 공유하고자 합니다.
차별에 대한 의도가 없더라도 제품 특성상 기준이 잡혀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백팩도 알고 보면 어깨를 자유롭게 쓰고 양팔 사용이 가능한 사람을 전제로 만듭니다. 워크숍에 참가한 한 분은 가족 중 석회성 건염으로 팔의 회전이 거의 불가능한 분이 계셔서 백팩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전동 킥보드 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꽤 많은 브랜드의 킥보드 손잡이가 한쪽은 엑셀, 다른 한쪽은 브레이크입니다. 양손 사용이 가능한 사용자만 탈 수 있는 제품이죠. 한쪽 손만 이용하는 사람은 타기 어렵습니다. 한 손 사용자도 이런 이동 수단을 탈 수 있기 위해서는 제품의 구조 자체가 달라져야 하겠습니다.
보통은 ‘시각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기준입니다. 가끔씩 터치 투어 touch tour와 같은 촉감으로 작품을 느낄 수 있는 행사들이 있지만 일부 작품에 한정되어 있죠. 갤러리에서 작품들을 전부 오디오로 들을 수 있도록 설명하는 사례는 드뭅니다. 혹 일부 작품에 대한 음성 설명이 있더라도 충분히 작품을 연상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영화관 좌석의 기준이 원하는 위치에 앉아서 볼 수 있는 성인들을 중심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보통 영화관 1열에 앉게 됩니다. 관람하기 상당히 불편한 각도입니다. 물론 지난 2018년 8월 보건복지부가 영화관과 공연장 내 장애인 석을 객석 중간 또는 맨 뒷줄에 설치토록 하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 편의 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을 공포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변화는 미비한 수준입니다.
첫 시간에 여러 가지 기준점을 폭넓게 탐구했다고 한다면 이후 각 조에서 중점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선정합니다. 공통의 관심사에 맞춰 가장 시급하게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에 대해 내부적인 합의를 거치는 과정입니다. 문화생활을 좋아하는 청년들이 모인 조에서는 영화관을 주제로 잡기도 하였고, 운동하면서 느꼈던 어려움이 있는 조에서는 피트니스 시설을 주제로 잡았습니다. 어르신들의 티켓 예매 과정의 어려움에 주목한 조도 있었습니다.
각 조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선정 한 뒤, 이제는 해당 문제에서 배제된 사용자들을 생각해 봅니다. <모두를 위한 승차권 예매>를 주제로 선택한 조에서는, 배제된 사용자들로 정보화 취약계층을 언급했습니다. 온라인으로 직접 예매가 쉽지 않은 어르신들, 저소득층으로 스마트폰을 소지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도 포함되었습니다. 이들은 어떤 니즈가 있을까요? 가급적이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력으로 예매하고 싶어합니다. 매번 예매를 할 때마다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을 수 있을뿐더러,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보다 스스로 수행하고자 하는 것이 공통적인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핸드폰 애플리케이션 사용이 까다롭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기기를 사용하지 않고 대면으로 예매할 수 있는 것을 선호할 수도 있습니다. 이후 3단계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단계는 다음 뉴스레터에서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깊이 사고하는 능력을 잃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든 차원에서 깊이를 희생하고 있다." <도둑맞은 집중력, 요한 하리>
최근에 읽은 책 중에 깊이 사고하는 힘의 결여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인터넷 뉴스와 SNS의 풍요로움 덕분에 어떤 주제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는 시간이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누구나 검색할 수 있으니 빠르게 해답을 찾고 싶어 합니다. 생각해보기도 전에 검색을 먼저하게 됩니다.
그래서 워크숍에서는 깊이 생각하고 토의하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려고 했습니다. 저 역시도 가능한 한 많은 개입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입니다. 개인별로, 조별로 각각 깊게 생각해 보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주어진 시간이 길지도 않기 때문에 이 시간만큼이라도 지금까지 고려해 보지 못했던 사용자들의 특징에 대해 찾아보고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분명 발상에 자극이 됩니다.
<관찰의 힘> 저자이자 글로벌 디자인 기업 프로그 Frog의 얀 칩체이스는 세상이 대답보다는 질문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합니다. "친구의 집 화장실에 있는 읽을거리는 친구 자신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여러분에게 보이기 위한 것일까? 공원의 표지판은 누구의 권위로 세워진 것일까? 그것이 존재함으로써 혜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일까?"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 안에는 많은 의미들이 존재하는 것이죠. 이런 점에서 <포용적인 디자인>에 대한 발상을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제품을 사용할 수 없는 사람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