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평범한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나는 유퀴즈의 광팬이었다. 제일 좋아하는 연예인이 유재석 씨이기도 하고, 유퀴즈의 감성이 좋았다. 머릿속에는 항상 유재석 씨와 조세호 씨를 길가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를 상상하곤 했다. 대학원을 다녔을 때라 내 전공이 뭔지 어떻게 설명할지, 회사를 그만두고 왜 대학원에 왔는지 등의 이야기를 하는 시나리오를 그리며 혼자 즐거워했다. 그러나 이젠 도저히 안 되겠다. 더는 유퀴즈를 보기가 싫다.
내가 생각하는 유퀴즈의 USP, 그러니까 유니크 셀링 포인트는 '평범한 일반인'이었다. 그리고 그 평범한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두 사람의 입담이 매력 포인트였다. 길을 걷다 보면 우연히 마주치는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들. 할머니부터 시작해서 미취학 아동들까지. 무언가 특별하지 않아도 그들의 인생에서는 나름대로의 특별함이 있었고, 그들이 책이나 논문을 쓰지 않았어도 그들만의 가치관이나 신념이 존재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색다른 이야기들과 시선을 엿보며 세상이 참 재밌다는 생각을 했다. 유퀴즈를 보면 지극히 평범한 내 삶도 나름의 특별함과 소중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유퀴즈는 변했다. 솔직히 말하면 변할 수밖에 없기도 했다. 유퀴즈가 변하기 시작한 건 코로나가 너무 심해진 시기부터였다. 더 이상 거리를 돌아다니며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과의 인터뷰가 불가능해지고, 유퀴즈는 결국 결단을 내린다. 직접 인터뷰이를 섭외를 해서 진행하자. 그런데 문제는 그 대상이었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칠 때는 정말 그 우연성에 기대며 아무런 기준 없이 대상을 선정했는데, 제작진이 일부러 섭외를 해야 하는 거라면 마땅한 기준이나 컨셉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무슨 특집, 무슨 특집으로 대상을 선정해서 섭외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그냥 일반 토크쇼랑 다를 바가 없어진 것이다. 아, 물론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이 나온다는 것은 아직도 유니크한 포인트지만, 이제 그 일반인들도 평범한 사람들이 아닌 뭔가 특별한 요소들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과거에 유퀴즈가 주는 편안함은 우리 소시민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에서 나왔다. 그러나 지금은 여느 예능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특별한 사람들만 나와서 본인들끼리 즐겁고, 본인들만의 세상 얘기를 한다. 그러니 대다수의 소시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괴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이번 137화 베너핏 특집에서는 정말 화가 잔뜩 났다. 모두 다 가고 싶어 하는 대기업 직원들을 불러놓고 하는 얘기가 고작 복지가 어떻게 돼요? 라니. 회사 어린이집이 6개라고? 대다수의 부모들이 아이를 케어하지 못해서 회사를 그만두거나, 학원 뺑뺑이를 돌리거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신청에 떨어져서 힘들어하는데, 어린이집이 6개라고 자랑을? 그 어린이집 딸린 대기업들이 국내에 몇 개나 있으며, 그곳에 입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는데? 아마도 90%의 이상의 청년들은 어린이집 딸린 대기업을 입사하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입사해도 본사 건물 외에는 그런 것 따위 없다. 아니 유퀴즈가 어쩌다가 이렇게 소수의 특권을 자랑하는 자리가 되어버렸을까?
과거의 유퀴즈라면 길가다 우연히 마주친 직장인들에게 베너핏이 어떻게 되냐고 묻는 무례한 질문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 훨씬 값진, 일의 보람이나 사명감, 그 일을 하게 된 계기, 앞으로의 목표, 살아온 인생사 같은 것을 물었을 테지. 그건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니까. 아니면 애초에 판교도 가고, 공단도 가고, 집 근처의 공사장도 가고, 그저 사람 사는 곳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그런 유퀴즈는 더 이상 없다. 코로나가 끝나기 전까지는.
물론 좋은 특집들도 있었다. 130화 이름 특집, 126화 이게 가능하다고? 특집의 옥효진 선생님, 백낙삼 사장님, 123화 나만의 세계 특집의 배윤슬 도배사님 등등. 이런 걸 보면 매 특집마다 작가들이 달라서 특정 작가들의 성향이 묻어 나오는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런 것이 아닐까? 유퀴즈라는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픈 메시지는 분명하지만, 전달되면 안 되는 것에 대한 정의가 분명하게 내려져 있지 않은 것이라고. '특별함을 가진 사람을 섭외해야 하지만, 그것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대상이라면 섭외를 금한다' 같은 것 말이다.
어찌 되었건, 이제 나는 유퀴즈가 싫다. 원래 좋아하던 사람이 미운 짓을 하면 더 미워 보이는 법이다. 집에 티브이가 없이 티빙만 구독하기 때문에 유재석 씨를 보려면 유퀴즈를 봐야 하는데 이제 그것도 힘들어졌다. 식스센스 3가 시작하는 날만 기다려야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