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남이 영어로 사람을 사로잡는 법
클로이 모레츠의 파파라치 사진에는 항상 모델같이 훤칠한 오빠들이 매니저로 동행한다. 하지만 그녀가 내한했을 때, 옆에는 에릭 남이 넷째 오빠처럼 내내 함께했다. 에릭 남과 인터뷰를 했음은 물론이고, tvN [SNL 코리아](이하 [SNL]) 촬영도 함께했다. 미국으로 돌아간 클로이 모레츠가 SNS에 에릭 남과 함께한 사진을 포스팅하고 그를 팔로우한 것은 예상된 일이었다. 그와 인터뷰했던 많은 해외 스타들이 한국에서 가장 즐거웠던 일로 그와의 만남을 꼽곤 했다. 생일이었던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머리에 빨간 리본을 달고 자신이 선물이라는 에릭 남에게 가장 갖고 싶었던 선물이라며 “너도 너 잘 생긴 거 알지?”라고 말했다. 파티걸 이미지가 강한 패리스 힐튼은 에릭 남 앞에서 가족을 사랑하고 요리도 즐기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 영상에는 미국에서도 패리스 힐튼의 이런 모습을 담은 인터뷰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댓글이 달렸다. 심지어 맷 데이먼은 인터뷰 전 가족 이야기는 지양하고 싶다고 했었지만, 에릭 남과의 대화 중 먼저 딸과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에릭 남의 인터뷰를 보면 조금 더 상대의 사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기분이다.
“두 유 노우 김치?”, “두 유 노우 강남 스타일?” 이제는 놀림의 대상까지 된, 해외 스타 인터뷰의 상투적인 질문들이다. 에릭 남과 클로이 모레츠는 [SNL]의 ‘친한파 매니지먼트’에서 이런 모습을 패러디하기도 했다. 그러나 에릭 남은 상대의 우리에 대한 지식을 묻는 대신 상대에 대해 궁금해하고, 잘 듣는다. 아는 한국어가 있느냐고 물어볼 때도 ‘Do you know any Korean?’이라며 테스트하는 듯한 질문을 하는 대신 ‘Have you picked up any Korean since you came to Korea?’이라고 한국에 와서 알게 된 말이 있는지 묻는다. 또한 클로이 모레츠와의 인터뷰에서는 성인이 된 기념으로 카지노를 간 에피소드에 “Good lessons, good take away”라며 오빠가 동생에게 이야기하는 듯한 멘트를 하고, 아만다 사이프리드나 미란다 커 등과 이야기할 때도 yeah, alright, good, lord, okay, awesome, fair enough 등 다양한 맞장구를 치는 등 filler(대화 중간 사용하는 의성어, 단어)를 사용한다. 반면 노엘 갤러거, 패리스 힐튼과 이야기할 때는 필러를 줄인다. 필러는 여자아이들의 대화에서 많이 나타나는 대화법이기 때문이다. 씹는 걸 좋아하는 아만다 사이프리드에게는 오징어채를, 마음에 드는 호텔 베개가 있으면 수집하곤 했던 노엘 갤러거에겐 ‘훔친 베개’라 쓰여 있는 베개를 선물한다. 인사동에 가면 살 수 있는 한국 전통의 무언가 대신 ‘나를 위해 준비한’ 마음이 느껴지는 선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에릭 남의 인터뷰는 다가서기 어려운 해외 스타가 아니라 한국에 놀러 온 친구의 친구를 만나 서로 알아가며 수다 떠는 분위기가 된다. 처음에는 낯선 관계지만 상대를 알기 위해 노력하고 맞춰 주다 보니 상대의 매력적인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만큼 에릭 남은 스타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는 자세로 인터뷰를 한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자신을 낮추지 않는다. 그의 질문은 개인적인 궁금증보다 “한국 팬 대표로 내가 묻는다”는 것이 많다. 노엘 갤러거에게 새로운 앨범에서 음역대가 높아졌다고 할 때도 자신의 평가라기보다는 한국 팬들이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까칠하기로 유명한 노엘 갤러거가 크게 동의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으면서도 유하게 넘어갔던 이유 아닐까.
에릭 남의 인터뷰에서 영어가 얼마나 유창한가는 두 번째 문제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너에 대해 알아가고 싶어’라는 태도로 상대에게 다가서는 것이다. 사람을 대하는 데에 있어 당연한 이야기지만, 해외 스타에 대한 많은 인터뷰는 대뜸 ‘너 나(우리나라)에 대해 알아?’라며 상대의 마음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한국에 온 지 며칠이 됐고, 무엇을 했고, 어떤 기분인지가 그렇게 중요할까. 에릭 남은 그 틀을 깨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상대를 칭찬하고, 그 사람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센스 있는 선물도 준비한다. MBC [세 바퀴]에 나온 에릭 남은 과거 중학교 때 얼굴에 침을 뱉은 사람들도 있었다고 할 만큼 괴롭힘을 당했지만,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고 했다. 싸운다 해도 좋을 게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대신 대화로 노력했고, 괴롭힘 마저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태도가 지금의 그를 좋은 인터뷰어로 만든 것 아닐까. 당신이 나를 싫어할 수도 있지만 편견을 깨고 대화하면 좋은 사이가 될 거라는 믿음. 그래서 상대를 먼저 존중하는 태도. 참 기본적이지만, 지키기는 어렵다. 에릭 남 같은 인터뷰어가 단 하나인 걸 보면 말이다.
*본 칼럼은 2015.06.10 ize magazine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