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mes Hur Apr 20. 2024

멘티에게 급하다는 문자를 받았다

Bob(가명)은 내 인턴이었다.  3개월간 나와 함께 일했고,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어느새 졸업했다.  똑똑하고 성실하고 좋은 태도를 가진 데다가 잘생기기까지 한 사기캐 능력자다.  인턴쉽이 끝난 뒤에도 커피챗하자며 연락해서 조언을 구하는 멘티가 되었다. 나를 좋게 봐주고 아직까지 찾아주니 고마울 뿐이다.



어느 날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나와 급하게 당장 통화를 하고 싶단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학교 다니며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회사에서 졸업 후에 풀타임으로 이어지기로 했는데, 받은 오퍼가 생각과 달라서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이미 여러 번 본인의 사정을 이야기해 뒀고 매니저와도 이야기가 잘 되었는데, 정작 오퍼에는 그의 상황에 맞지 않는 내용이 들어있어서 당황함과 동시에 약간의 배신감이 든 것 같았다.  특히 함께 일하던 팀원들 다수가 원격으로 일하는 상황에서, (사정상 어려움을 알고 있으면서) 본인만 매니저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 조건이 난감하고 그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느껴진다고 했다.


나는 미국의 빅테크 회사에서 원격으로 일하고 있다. 원격 근로자들을 가차 없이 해고하는 칼바람이 작년 내내, 그리고 올해에도 계속 불고 있지만 운 좋게 살아남아 있다.  아마도 원격근무를 하고 있다 보니 내 생각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일단 기분이 안 좋을만했다. 갑자기 이렇게 뒤통수 맞는 상황을 만든 건 분명 회사의 잘못이다.  나라도 기분이 언짢았을 것 같았다.  공감이 되었다.


조금 뒤에 조심스럽게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이야기도 해주었다. 첫 번째는 personal 하게 받아들이지 말라.  나는 회사의 리더십 입장에서 왜 이런 조치를 취하게 되는지, 그들의 합리적인 이유도 설명해 주었다.  게다가 요즘 미국 회사에서는 팀원 다수가 원격근무를 하더라도 새로운 직원은 매니저와 리더십이 있는 핵심 오피스로에서만 뽑는 분위기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원격으로 일해오던 직원도 이사 가야 하는 분위기다. (그러지 않으면 해고하기도 한다)


두 번째. 커리어 다음 스텝을 결정할 때는 최소 2년, 가능하면 5년 뒤 내 모습을 고려하라.  당장 화나더라도 기분대로 행동하면 결국 본인만 손해다.  일단 기분을 누그러뜨리고 나서 (다음날 다시 생각해도 좋다) 매니저와 다시 이야기해라 제안했다.  정말 마음이 떠났고 특히 다른 커리어에 관심이 있다면, 특히 그 커리어 패스가 5년 뒤 내가 원하는 모습과 가깝게 연결된다면 자꾸 늦추기보다는 그 길로 빨리 들어서는 것도 좋다.  아직 책임져야 할 타인이 없다면, 더 과감할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결심을 했다면 그 옵션을 가능한 한 빨리 보다 tangible 하게 만들라고 했다.  요즘 잡 마켓의 실상은 생각보다 더 나쁘다.  능력 좋은 내 지인 여럿은 해고당한 후 6개월 - 9개월이 지나도록 아직 구직 중이다.  layoff 된 사람이 워낙 많아서 경쟁이 치열하고, 그래서 인터뷰가 잘 잡히지 않고, 인터뷰 프로세스가 느려졌고, 합격해도 오퍼 레터가 나올 때까지 오래 걸리는 편이다.  기분 나쁘다고 섣불리 결정을 내렸다가는, 생각보다 훨씬 오랜 시간 동안 커리어가 비어버리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스타트업은 어떠한가?  매출 상승은 물론 브레이크이븐이 언제 될 수 있을지 데이터로 증명해야 한다.  매크로 경제 전망이 안 좋은 만큼, 누가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느냐가 중요한 분위기다.  그래서 적은 비용(적은 인력)으로 보다 수익성 높은 사업에 집중해서 단기간 실적을 개선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모르겠다. 내가 기분 나쁘지 않게 도움을 준 건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으면 어쩌나 싶다.  똑똑하고 태도가 좋은 사람이니 만큼 아무쪼록 본인에게 가장 좋은 현명한 결정을 내리길 바라는 마음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