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 퇴사 후 방황 끝에 찾은 길

feat. UX 디자이너

by 도화지

나는 서른 후반, 베트남 호치민에서 9년째 살고 있는 UX 디자이너 취준생이다. 얼마 전 내 인생의 경고등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약 7년간 한국의 한 화학회사에서 영업 직원으로 일하는 내내, '이 일은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만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 날, '정말 이대로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지도 못하고, 평생 매너리즘에 빠져 살다 말겠구나' 하는 위기감이 몰려왔다. 결국 2023년 12월, 퇴사를 감행했다.


퇴사 후 떠난 두 달간의 유럽 여행.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와, 다시 돌아와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과연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백수 상태에서 진로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이 늦은 나이에, 이제껏 해온 영업직을 버리고 뭘 새로 시작할 수 있을까? 가장 큰 걸림돌은 단연 **'나이'**였다. 30대 중후반에 무엇을 새로 시작하든 취업이 쉽지 않을 거라는 현실이 나를 짓눌렀다. 그래서 **'리모트로 할 수 있는 일'**과 **'나이를 크게 따지지 않는 업종'**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최우선으로 두고 직업 탐색을 시작했다.


고민 끝에 프론트엔드 개발자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고, 온라인 부트캠프를 시작했다. 9개월간의 여정 동안 솔직히 말해 '이거 아무래도 안되겠는데...'라는 생각만 들었다. 내가 짠 코드가 눈앞에 즉각적으로 구현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지만, 포토샵처럼 즉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코드를 짜고 렌더링을 거쳐야만 결과물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게는 답답하게 느껴졌다. 부트캠프 막바지에 진행한 팀 프로젝트 결과물을 보면서 '이걸 가지고 취업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커졌다. 컴퓨터 사이언스(CS) 공부도 병행해야 했는데, 그마저도 재미가 없어 보였다.


그렇게 다시 고민의 늪에 빠져 있을 때, 우연히 **'UX 디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찾아볼수록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에 가장 가깝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바로 Coursera에서 구글 UX 디자인 전문 자격증 과정을 듣기 시작했다. 남아도는 게 시간이었기에, 6개월짜리 과정을 2개월 만에 완강하고 수료증을 받았다. 교육을 들으면서도 내내 'UX, 정말 재미있는 영역이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랑스럽게 수료증을 링크드인에 포스팅하고, 포트폴리오용 개인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가장 머리가 아팠던 건 1. 뭘 만들어야 할지, 2. 만든 걸 어떻게 검증해야 할지였다. 어찌어찌 3개의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Webflow로 만든 쇼케이스에 올렸다.


그리고 시작된 입사 지원의 늪. 수십 곳에 지원했지만, 단 한 곳에서도 연락을 받지 못했다. 생활비는 바닥나고, 불안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일단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던 중,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 친구는 "호치민 한인 상공회(코참) 사이트에서 IT 관련 회사 리스트를 찾아서 연락해 보는 건 어때? 지금 한국으로 돌아가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라고 말했다. 친구의 말에 힘을 얻은 나는 코참 사이트에서 IT 관련 회사들을 골라 무작정 나를 소개하고 포트폴리오 링크를 공유하며 기회가 있을지 물었다.


정말 운 좋게도 한 곳에서 연락이 왔고, 3월부터 8월까지 프리랜서 UX 디자이너로 협업할 수 있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나에겐 너무나 감사한 수당이었다. 무엇보다 집에서 혼자 공부로만 접하던 UX 디자인을 현업에서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매 프로젝트에 임했다.

그러나 프리랜서의 함정일까. 내가 기획한 프로덕트들이 모두 개발 단계에 접어들고, 나는 새로운 업무를 배정받지 못했다. 다시 취업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다행히 이 회사와 함께한 프로젝트들을 포트폴리오에 업데이트할 수 있었다. 개인 프로젝트 1개, 실제 프로젝트 2개로 새로운 포트폴리

오를 구성하고 다시 입사 지원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30개 이상의 회사에 지원했지만, 아직까지 긍정적인 회신은 없었다. 또다시 지난번 입사 지원 때의 트라우마에 빠지고 말았다. 회사들이 찾는 인재는 갓 졸업한 디자인 전공자, 또는 최소 3년 이상의 시니어 디자이너였다. 나는 이 두 그룹에 모두 속하지 않은 늦깎이 주니어. 내가 리크루터였어도 낮은 급여로 재능 있고 경력 많은 현지인을 선호했지, 나 같은 외국인을 채용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문득 떠오른 생각. 나의 강점은 상하이에서 졸업한 학력과 중국어, 영어 실력인데, 이 능력을 UX 디자인과 섞어 온전한 나만의 경쟁력을 만들어야겠다는 것이다.


과연 나는 2025년 올해 안으로 정식 UX 디자이너로 거듭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