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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려원 Oct 09. 2023

천상병 시인 이야기

천상병 시인(1930~1993) 수락산행 길에서 만난


무욕의 삶을 살다 간 천상병 시인(1930~1993)은 그리 평탄하지 않은 한 생애를 머물다 갔다.



1930년 일본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해방이 되면서 부모를 따라 귀국한다. 1949년 마산중학교 5학년이던 때 (지금의 고등학교 2학년) 담임교사인 김춘수 시인에게 시를 배우고 첫 작품을 발표했다.



대학에 들어갈 때 학과를 선택하는 과정에서는 시인으로 등단했으니 문과에 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 다른 학과를 선택했다. 서울대 상과대학에 입학했는데 당시 그는 시도 잘 쓰고 외국어도 몇 개 할 정도로 시인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그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천상병 시인은 술을 좋아해 술을 벗 삼아 살았다. 남한테 얻어먹는 술자리에서도 주인 행세를 하며 어느 자리에서건 밥도 남기는 법 없이 모두 긁어먹었다고 한다. 술을 마시면 아무 데서나 자면서도 쓸 글은 다 쓰고 다녔다.



후배들을 자주 초대해 음식을 차려 주는 것을 좋아하던 소설가 한무숙은 어느 날 천상병을 초대하는 자리에 세 사람이 모이게 되었다. 한 사람은 돌아가고 두 사람은 거기서 자게 되었는데 새벽에 일어난 천상병은 물을 찾다가 문득 술 생각이 나서 병을 들어 단숨에 마시고 말았다. 알고 보니 양주병이 아니라 향수병이었던 것을 알게 된 것은 병원에서 그의 위를 세척한 의사가 "화자의 입과 코에서 향수 냄새가 난다"라고 했다.



그러던 중  그는 1967년 중앙정보부에서 발표한 동백림 사건(간처단 사건)에 연루되는 일이 발생한다. 천상병 시인은 돈씀씀이가 좋았던 은행가의 아들이었던 그의 친구로부터 하숙비를 받아 쓰곤 했다.  중앙정보부에서는 그의 친구를 간첩단으로 여기고 천상병 시인은 간첩단을 알고 있으면서도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죄명으로 그를 끌고 가 물고문과 전기 충격을 가했다.



그런 이유로 그는 자식을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중앙정보부에서 풀려나고도 그는 세 달 동안 다시 교도소에서 갇혀 있다가 거의 폐인이 다 되어 집행 유예로 나오게 된다. 이런 그를 두고 당시 신경림 시인은 정신이 오락가락한다는 느낌을 회상했다.



부인이었던 목순옥은 오빠 목순복이 천상병 시인의 친구였으며 소개를 통해 만나 동리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술과 담배 친구를 좋아하는 천상병의 성품은 의식주를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친구 강태열 시인이 300만 원을 빌려줘서 인사동 골목에 "귀천" 이란 찻집을 열었다. 그곳은 당시 예술인, 작가, 언론인, 지식인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1988년 천상병은 간경화증이 악화되어 친구가 의사로 근무하는 춘천의료원에 입원하지만 회복할 가능성은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문순옥은 딱 5년만 더 살게 해 달라는 기도를 매일 했다. 거짓말처럼 병을 털고 천상병 시인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 후 정확히 5년을 더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남편과 사별할 때 21년간 부부로 살았지만 부인 목순옥에겐 아기였고 천사였다고 한다. 매일 아침 세수 시키고 손발톱 깎아주고 목욕시켜 주면서도 고통보단 오히려 모든 것을 다 바칠 대상이 있다는 게 행복했다고 한다.


산길에서 내려오다 만난 카페


천상병 시인은 무욕의 삶이 빚어낸 우리에게 아름다운 시 <귀천>을 선물로 남겨 주었다. 오철수 시인(시가 사는 마을)에서 이 시를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 시를 읽으며 무욕의 삶이 빚어낸 아름다운 시 세계를 느꼈습니다. 어쩌면 삶 자체가 욕심덩어리일지도 모르는 일이죠. 그래서 그 욕심을 하나둘 버릴 때 사람은 점점 순수해지고 맑아지고, 나와 세계의 거리는 점점 투명해져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 되나 봅니다. 이 시에서처럼 인간에게 가장 힘든 고통이라는 죽음마저도 소풍쯤의 거리로 되어버리니 말입니다."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귀천 전문」



*관련된 본 게시글의 내용은 시인의 가슴을 물들인 만남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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