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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정 May 31. 2023

나의 계절을 안아주었던 아저씨.

Damien rice - 데미안 라이스


2007년. 열여덟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입시미술학원에서 친했던 강사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늘 틀어두던 음악이 있었다.

바로 데미안 라이스의 앨범 'O'였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쌀아저씨를 부르며 예찬하던 그 선생님 덕분에 나도 데미안 라이스의 음악에 빠지게 되었다. 당시 생일 선물로 받았던 이 음반이 생애 처음 가진 음반이었다.


잠시 잊고 지내다가도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계절이 돌아오면 항상 떠올랐다.

어렸을 때는 그냥 좋아서 듣던 아저씨의 음악. 그의 노래는 시간이 흘러가면서 어떤 날에는 조용히 답을 건네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어떤 날에는 너무 아프게 들려 딱 한 번만 듣고 넘어간 계절도 있었다.


몇 달 전, 문득 생각이 나 '데미안 라이스'를 검색했는데 세상에나. 그가 내한한다는 소식을 보았다. 월드투어를 하고 있는 그가 한국에도 온다는 소식. 단독 콘서트는 아니었지만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 말이다.


무려 6년 만이었다. 6년 전에는 비싼 티켓값에 더불어 너무나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기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해 그 후로 버킷리스트로만 채워둔 '데미안 라이스 콘서트 가기.'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연인의 도움으로 마침내 보러 갈 수 있게 되었다.


전날부터 비가 계속 내리던 중이라 걱정했지만 비를 맞으면서 놀아보는 것 또한 해보고 싶었기에 오히려 좋았다.


데미안 라이스의 공연은 마지막 타임이었다.

해는 저물었고, 여전히 비는 쉴 새 없이 내리고 있었다. 갑자기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의 환호성 끝에 멀리서 걸어 나온 그는 조명도 없이 암흑 속에서 기타 반주를 시작했다.


'cannonball'.


그의 첫마디가 울리는 순간, 눈물이 났다.

지난 15년 동안 시린 계절마다 나를 안아주었던 그 목소리.

울다가, 감탄하다가, 황홀했다가, 다시 울다가 그렇게 90분 동안 빗속에서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전율을 경험했다. 그의 몰입과 에너지, 사람들의 경탄, 우비 위로 내려앉는 빗소리. 새로운 감정의 연속.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듣는 그의 노래는 전과는 사뭇 다르다. 이런 여운과 전율을 줄 수 있는 뮤지션의 공연을 이 시절에, 이 계절에 담을 수 있다니.


20년 동안 그가 낸 정규 앨범은 3장뿐이다. 같은 곡으로 이렇게까지 휘몰아치게 할 수 있는 그가 부럽기도 했고, 훗날 이런 작업을 하는 날을 잠시 꿈꾸어 보기도 했다.


오래도록 어떤 끌림이 유지된다면 그것의 알맹이가 무엇인지 들여다 보아도 좋다. 끌림이라는 건 나침반이 되어 본능적으로 내가 원하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기도 하기에.


이번 공연에서 신곡을 들려준 아저씨의 발걸음이 더 기대된다. 그리고 부디 그의 음악보다는 덜 쓸쓸하게, 때때로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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