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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Sep 12. 2024

회의 중의 그 '분위기'를 잘 기억해야죠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119

01 . 

남자 녀석들끼리 모여 있는 카톡방에서는 가끔 스포츠 경기가 끝나면 한바탕 난리 법석이 날 때가 있습니다. 축구 국가대표 경기가 연달아 있던 지난주와 이번 주도 그랬죠. '저 넓은 공간 놔두고 왜 떼 지어 몰려다니냐'부터 '수비라인 더 끌어올려라', 'A 선수 빼고 B 선수 넣어라', '저렇게 해서 월드컵 나가면 뭐 하냐 (막상 월드컵 때 되면 제일 열심히 응원하는 녀석입니다...)' 등등 각자가 선수, 감독, 협회 관계자에 빙의해서 갖은 말들을 쏟아내는 게 한편으로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02 . 

어제는 초반에 잘 잡아가던 경기 흐름이 뒤엉키면서 몇 번 위험한 찬스를 맞이하는 상황이 반복되곤 했었는데요, 그때 한 친구가 카톡창에 이런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아까 경기 시작할 때 초반 분위기 좀 잘 기억해서 되살려봐라!'라고 말이죠.

그랬더니 또 한 친구는 '맞아. 다들 서로 그 분위기 까먹지 않게 대화를 많이 해야 할텐데 한방에 기세가 꺾여버리네'라고 하더군요. 실제 선수들이 들으면 기가 찰 노릇이겠지만 그래도 나름 경기 흐름을 잘 짚으며 대화하는 게 기특하다고도 생각할 때쯤 이런 말풍선 하나가 툭 하고 올라왔습니다.


03 . 

'딴소린데 회사에도 그럴 때 있지 않아? 오늘 우리도 초반에 회의 분위기 좋았는데 한 20분 지나니 다들 풀이 죽어서 완전 패잔병처럼 돼버렸는데 ㅜㅜ'

당시엔 각자 집에서 축구에 몰두하고 있느라 별다른 피드백 없이 넘어갔지만 오늘 아침이 되어서야 누군가가 그게 무슨 소리였냐며 다시 운을 뗐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이렇게 답하더군요.

"나는 클라이언트하고 회의할 때가 많은데, 보통 회의 때는 다들 웃으며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거든? 근데 나중에 메일로 우리 기획서를 받아본 다음에 오는 피드백은 늘 쌀쌀해. 그게 몇 번 반복되니까 클라이언트도 감을 잡았는지 회의 중간에 '근데 이래놓고 나중에 기획서 받으면 또 분위기 달라지겠죠?'라는 말을 하더라고. 그 순간 회의실 전체가 싸해진 거지..."


04 . 

친구의 속사정을 정확하게 읽어낼 수는 없었지만 저도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가끔 호흡이 긴 프로젝트를 맡다 보면 회의체가 여러 개로 쪼개지는 상황도 자주 발생하는데 그때마다 같은 목표로, 같은 프로젝트를 하는데도 각 회의의 분위기가 정말 다르다는 걸 체감하게 되거든요. 처음엔 특정인 몇 명에 의해서 분위기가 좌우되는 건가 싶기도 했고, 직책이 높은 사람 한두 명이 들어올 때마다 중요도가 달라지나도 의심해 봤지만 모두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더불어 회의에서 협의된 이야기가 결과물로 이어지는 타이밍에서는 '이게 우리가 어제 나눈 대화가 맞는 건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회의의 존재 이유를 무색하게 만드는 때도 많았죠.


05 . 

그러다 뒤늦게 찾은 단서 중 하나가 실마리가 되었습니다. 당시  프로젝트 안에는 중요한 협의체로 구성된 회의가 하나 있었는데, 주로 이 회의에서 꽤나 중요한 의사결정들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이 회의는 모든 실무자가 다 참여할 수 없었기에 각 협의체의 대표자들이 자신의 조직으로 돌아가 회의 내용을 공유하게 되는데 이때 전달되는 뉘앙스가 천차만별로 달랐던 겁니다. 어느 정도였냐고 하니 같은 피드백을 듣고서도 A는 '대부분이 그 의견에 동의했다'고 전파했고, B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고 후속 회의가 이어질 것 같다'고 설명한 것입니다. 이 정도면 귀신도 곡할 노릇이죠. 유능하고 스마트한 사람으로 구성되었고, 일반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어디서 이런 반전의 반전이 거듭되는지 참 궁금했거든요.


06 . 

그런데 중간 관리자 정도의 직책을 맡고 계셨던 한 분이 어느 날은 이런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오늘 회의는 다들 의견도 활발히 내시고 꽤 잘 진행된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요, 저희 이 분위기 살려서 보고자료 쓸 때도 오늘 나온 표현들을 잘 담아봤으면 해요. 자리로 돌아가서 실무 용어로 바꿔쓰려니 이 좋았던 분위기가 거의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하하."

회의를 마무리할 때쯤 한 가벼운 멘트였고, 그 발언 이후로도 회의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정말 중요한 포인트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왜 회의 때는 '뭔가 될 것 같다'고 느껴지던 그 에너지가 다음 회의 때면 눈 녹듯이 사라지는지에 대한 이유도 알 것 같았고요.


07 . 

'왜 회의를 할까?'라고 생각해 본다면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하나는 함께 모여 의견을 나누거나, 의사 결정해야 할 문제가 있거나, 반드시 공유되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에 회의를 진행하는 것이겠죠. 그러니 이 이유에는 '현장성'에 '협동성'이라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하게 되는 거라 볼 수 있습니다.

반면 다른 하나는 팀 플레잉(team-playing)을 위한 것입니다. 즉, 개인과 팀 사이에 존재하는 그 미묘한 공기에 공통의 DNA를 뿌리기 위함인 거죠. 사실 회사 일이라는 게 줄다리기나 2인3각처럼 한자리에서 통일된 업무를 하는 건 아니니까요, 개인이 각자의 자리에서 공통의 목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늘 팀과 도킹되어 있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08 . 

그래서 회의가 끝날 때마다 누구 하나라도 (회의록에 기록된 객관적인 사항들 이외에) 오늘 회의 때 나온 의견 중 우리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한 포인트가 있다면 한 번쯤은 간단히라도 짚어주는 게 좋고, 앞으로는 또 어떤 이야기와 아이디어들이 필요한지 니즈를 미리 공유해 주는 게 좋습니다. 그럼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각자가 수행해야 할 의무적인 사항들 외에도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해나가야 하는지 그 흐름과 맥락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죠. 마치 축구 선수들이 조금 전 플레이 상황에 대해 각자 의견을 공유하고, 필요한 사항들은 적극적으로 요청하며 계속 분위기를 유지시켜 나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09 .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저는 회의를 맹신하는 타입은 아닙니다. 무조건 만나서 해결을 봐야 한다거나, 작은 어젠다라도 일단 여럿이 모여 머리를 맞대면 나아진다는 등의 말도 가려 들을 때가 많거든요. 회의의 선기능이야 당연히 인정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회의는 명확한 목적과 이유가 있을 때 빛을 발한다고 보는 편입니다. 그리고 회의의 전과 후는 아주 작게라도 변화가 따라야 한다고도 믿습니다. 그래야 사람들로 하여금 회의 참여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할 수 있기 때문이죠. 


10 . 

대신 그 회의 중간중간 팀 플레잉을 위한 작은 넛지들을 마련해둔다면 회의의 효율성을 훨씬 높일 수 있다고 봅니다. 여러분 각자가 더 잘 아시겠지만 하루에 4-5번씩 이어지는 회의 속에도 '근데 정작 오늘 뭔가 결정된 게 있었나? 하물며 하나라도 우리가 상황을 더 낫게 변화시킨 게 있었나?'라고 생각하면 속시원히 대답하지 못하는 분도 꽤 많으실 게 분명하거든요. 

그러니 늘 어떻게 하면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 돌아가 더 생산적으로 일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고, 그런 고민의 작은 해답으로서 그 회의의 현장 분위기를 각자의 업무 DNA로 사용할 수 있게 조금씩 체득화 시켜주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은 함께하는 거라고 하면서 모두를 한없이 외로운 상태로 두는 건 일의 근간을 흔드는 아이러니일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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