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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Jul 14. 2023

161025-06

카페에서 말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데시벨


토요일 낮. 번역한 원고는 매주 일요일 밤에 보내기 때문에 아직 시간이 있었다. 마음먹고 집중하면 13장 정도는 금방 할 수 있었다. 계속 카페에 있는다고 작업이 될 것 같지도 않고 집으로 가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 오랜만에 영화를 보려고 마음먹었다.


평소에는 주로 평일 오후에 영화를 본다. M 대학교 앞에서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가면 주변에 비해 너무 큰 그래서인지 속이 다 텅텅 비어버린 맨 위 층의 영화관만 영업을 하고 있는 곳이 있다. 언제 가도 그곳은 화장실도 매점도 상영관도 텅텅 비어 있다. 그런데 그날은 웬일로 사람들이 꽤 많았다. 심지어 매점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기까지 했다. 미리 예매를 하지 않았기에 현장 구매하는 곳으로 갔다.


“예매 도와드릴까요, 손님?”


고개를 들어 영화 목록과 예매가능 좌석수를 보는데 평소와 달리 남은 좌석이 많지가 않다. 여전히 이상하다 싶다.


“손님~어떤 영화 보시겠어요?”


그와 동시에 H의 뒤로 두 사람이 줄을 선다.


“오빠, 우리 뭐 볼까?”

“제일 빠른 거 보자. 빨리 보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영화관 직원은 뒤의 손님들은 봤다가 H를 다시 본다. 삼 세 번.


“손님, 영화 아직 못 고르셨으면 뒤에 분들 먼저 도와드려도 될까요?”


H의 대답과는 상관없이 이미 뒤의 남녀는 H 앞으로 와서 직원에게 말을 하고 있다. 옆으로 어정쩡하게 밀려난 H에게 그 순간 ‘오늘이 토요일이구나.’라는 생각과 자신이 왜 주말에 영화관을 오지 않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


H도 한 때는 주말에 남자와 함께 영화관을 오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교 2학년부터 졸업하고 3년을 더 총 6년을 만났던 남자. 그는 PD 지망생이었고, 같은 스터디 구성원이었다. H보다 3살이 많았고, 군 제대 후 본격적으로 스터디를 시작하면서 H가 속한 그룹에 들어오게 되었다. 또 H가 가고 싶었던 Y대 학생이었다. 자신이 동경했던 학교의 학생이라서 그랬을까 분명 처음 시작은 그가 먼저 좋다고 해서 만나게 되었는데 만남을 지속할수록 어느샌가 H가 많은 것들을 그에게 맞춰주고 있었다.


데이트 장소는 주로 Y 대학교 도서관 아니면 교내 카페 아니면 Y 대학교 근처 영화관. 만나서도 거의 항상 스터디 준비나 과제 아니면 밥 먹고 영화 보고 커피 마시기. 나름 고시 준비생들이니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H도 그도 계속 시험에 낙방하고 다음번 시험에는 붙으리라는 보장도 없는 막연한 시간들을 보내면서 그들의 관계는 점차 퇴색되어 갔다.


그즈음 H가 그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괜찮아, 어차피 남들은 우리 신경도 안 써.”였다. 그가 카페나 영화관에서 H를 만지려고 할 때 H가 몸을 뒤로 빼거나 “누가 보면 어떡해.”라고 했을 때 그가 했던 말.


그리고 가장 많이 봤던 얼굴은 H의 맞은편에서 눈을 내리깔고 자신의 노트를 들여다보던 모습이다. 아마도 그래서 그날 카페에서 노트북 너머로 비친 여자의 뒷모습과 남자의 얼굴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었나 보다. 7~8년 전 자신과 그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남들은 신경도 안 쓸 거라는 그의 말과는 달리 분명 누군가는 자신들의 모습을 신경 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도 했기 때문에.


만난 지 6년째가 되던 해에 그가 먼저 케이블 방송국의 PD 시험에 최종합격을 하게 되었다. H는 너무나 기뻤지만 이제 곧 그와 헤어질 것임을 예감했다. 당연히 그는 입사하자마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H와 연락을 주고받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그가 입사하고 4~5개월쯤 흘렀을 때, H가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 토요일에 시간을 내달라고 연락을 했다. H는 그날 영화를 보고 작별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는 당연히 그날도 출근을 해야 하니 미안하지만 다음에 보자고 했다.


하지만 혼자 영화관에 갔던 H 앞에 그가 다른 여성과 팔짱을 끼고 나타났다. 그는 H를 봤지만 표정의 변화 하나 없이 H를 지나쳐갔다. 아마 속으로는 ‘제발 아는 체하지 말아 줘, 미안해.’를 외쳤을 수도 있지만 너무 뻔하게 너무 뻔뻔하게 그렇게 그들은 이별을 했다. 어차피 헤어지는 사이에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겠냐 만은 그래도 그에게 차이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렇게 보기 좋게 아니 한마디도 못해보고 영화관에서 차인 이후 사람이 많은 주말에는 영화관을 찾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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