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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원 Jan 05. 2018

인도의 이유

우리, 왜 인도에 있는 걸까?




    길을 걸을 땐 한눈팔지 말고 바닥을 잘 보고 걸어야 한다. 여기저기 이제 갓 세상에 나온 따끈한 배설물들이 즐비해있기 때문이다. 음식이나 과일을 달랑달랑 손에 들고 걷다간 언제 원숭이 떼의 습격을 받을지 모르며, 좁은 골목길에선 소와 피할 수 없는 스킨십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뿐이랴, 자전거부터 시작해 오토바이, 릭샤, 차들까지 어찌나 제 갈길이 바쁜지 한 시도 쉬지 않고 빵빵거리며 길을 비키라고 성화다. 얼른 비켜서지 않으면 깔고라도 지나갈 기세로 틈을 비집어 내서라도 속력을 낸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매캐한 연기들은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자연스레 발을 맞춰 걷거나 길을 막아서기까지 하는 열정을 보이는 호객꾼들과, 서툰 한국어 혹은 중국어나 일본어로 인사하며 들어왔다 가라는 상점들, 호기심을 가득 안고 끈질기게 따라오는 눈빛들까지. 시각, 청각, 그리고 후각까지도 마비시켜버리는 이 곳은, 이 곳이야말로 인도다.





    인도 여행의 첫 출발점은 바라나시였다. 이전 여행지였던 네팔에서 들어가 북인도를 서쪽으로 횡단하고 싶었기 때문에 쉽게 결정한 루트였다. 인도를 보고 싶으면 바라나시에 가라는 말이야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때야 인도가 정말 ‘인도’ 일 줄은 몰랐으니, 인도중 인도라는 바라나시에 겁 없이 정박한 거다.


    첫날, 고돌리아 한 복판에 내렸을 때 받은 인상은 그렇게 강렬할 수가 없다. 메인 가트까지 걸어가는 그 짧은 시간 새에 인도의 집합체가 한꺼번에 모든 감각으로 밀려들어왔다. 마치 2배속 정도로 높인 영상을 보듯 눈 앞에 릭샤꾼이 어느 순간 소의 뒤태로, 또 어느 순간 구걸하는 사람들로, 기념품을 파는 아저씨로 계속해서 바뀌었다. 심지어 메인 가트에 도착하니 난이도가 더 높은 광경이 우리를 맞이했다. 저녁시간에 도착했더니 뿌자라는 종교의식과 딱 맞아버린 것이다. 엄청난 인파와 그들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소음을 간신히 뚫고서야 여차 저차 해서 숙소를 찾아갈 수 있었다. 방을 배정받자마자 짐과 함께 널브러지며 한꺼번에 들이닥친 자극에 한동안 멍하니 있어야 했다. 끈끈한 점액질로 된 엄청난 공간을 통과해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잔해물들이 온몸에 끈적하게 눌어붙어있었다.





    어느 정도 자극이 필요했던 나에겐 놀랍게도 신선하고 흥미롭기까지 했고, 동행한 새롬이에겐 믿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그렇게 인도를 시작했다. 신선함에 들떠 방심한 나는 며칠이 지나지 않아 오한에 시달리며 물갈이를 하게 되었다. 여행 와서 이렇게 빨리 병나기는 또 처음이었다. 누군가에겐 신성할 잿빛의 강물, 푸짐하게 싸놓은 똥들, 콧속에 스며드는 축축하고 검은 먼지 덩어리까지 원인이 충분하기야 했다. 열에 들뜬 채로 오묘한 색의 페인트칠을 한 천장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바깥에서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괴이한 소리들이 귀를 찔러댔다. 바라나시에서 고요는 사치였다. 긍정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처지가 되니 작은 회의가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도대체 왜 인도일까?





    그 후로도 계속해서 인도에 시달려야 했다. 카주라호에서 오르차로 넘어오던 날, 릭샤꾼부터 호스텔까지 끊임없는 흥정에 지쳐버린 내게 새롬이는 그동안의 고충을 고백했다. 나 인도가 왜 좋은지 모르겠어.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꺼낸 말에는 꽤 무게가 담겨있었다. 그녀로서는 바라나시에 입성한 첫날부터 품어온 마음이었다. 인도에 오면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그녀를 괴롭혔다. 더러운 거리 풍경부터 배가 고프다며 옷깃을 잡는 아이들까지, 그게 당연하단 듯 인도는 태연하게 모든 것을 드러내 놓고 있지 않은가. 파리가 열 마리쯤은 꼬여있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있던 나는 그 날따라 볼 품 없어 보이는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결국 나는 그녀에게 긍정의 뜻을 내비칠 수밖에 없었다. 왜 이 여행을 시작한 건지, 왜 하필 인도였는지 나조차도 알 길이 없었다.


    ‘왜’라는 물음에 쉽게 답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좋지만도 않은 여행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고새 머리가 커버린 우리는 취향이나 가치관이 슬슬 자리를 잡고 있었고 세상을 여과 없이 바라보던 언젠가의 우리와는 달라져 있었다. 웃으며 넘길 수 없는 일이 많아졌고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졌다는 말이다. 기차의 꼬리칸이라는 슬리퍼칸에 누워 열몇 시간을 달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고, 감흥 없이 관광지나 가이드북이 추천하는 맛집을 가는, 일상적으로 번거롭고 두려운 일들을 마주하곤 하는, 특별함이라고는 없는 불편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여행에 품는 의구심을 끊임없이 반추해야 했다.





    그래도 라자스탄에 들어서며 거리가 훨씬 깨끗해지기도 했고, 슬슬 인도에 적응이 되어가고도 있었다. 정이 들고 있는 것인지 우다이푸르가 맘에 들었고 호기심에 거리를 걷고 바라보는 일이 생겼고 떠날 때가 되니 아쉽기까지 했다.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고 사람들과의 교류가 성가시지 않았다. 닫혔던 문이 슬금슬금 열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해가 지기 전에 쏜살같이 숙소에 들어가고 길을 걸을 땐 수많은 목소리들을 피해 바닥만 보고 가니 그전까지는 열리려야 열릴 수가 없는 것이기는 했다. 긴장을 조금 낮추고나니 이제야 여유가 생긴 거다.


    우다이푸르와 푸쉬카르를 거쳐 지금은 리시케시에 와있다. 앞선 도시들보다 세 도시에 정이 들어버렸다. 문득 떠오르는 장소나 사람, 기억에 남는 노을빛이 있는 도시들이다. 아직 인도가 좋아진 것은 아니다. 다시 장시간의 버스를 타고 다른 곳으로 넘어가 새로움을 마주할 의지가 생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음을 두게 된 곳들이 있고, ‘언젠가는’하며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인상이다.





    인도에는 모든 것이 있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있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휘황찬란한 호텔 바로 뒤에 판자촌이 있고, 음식점에서 나서자마자 지린내를 맡게 된다. 개부터 소, 말, 원숭이, 닭, 고양이, 돼지, 낙타까지 별의별 동물들과 함께 거리를 걷는 게 일상이다. 당연한 생각이 뒤집어지고 뒤집힌 생각이 실은 당연한 것이었다는 걸 깨닫는 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적절한 시기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좋은 때가 아니기 때문에 매번 위치에 대한 의문이 생긴 건 아닐까. 하지만 어쩌면 가장 적절한 시기였을 지도 모르겠다. 짧은 시간 많은 것들을 마주하며 내가 더 또렷해진 것을 느낀다. 가치관에 따른 여과가 가능해진 시기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부어 넣고 어떤 것이 내게 맞는 것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나 기피하는 것, 여행을 하며 원하는 것까지, 인도를 마주하고 나서 그 색이 훨씬 또렷해졌음을 느낀다.





    인도에 온 지 한 달, 그리고 앞으로 몇 주간의 시간이 더 남아있다. 앞으로 몇 주를 더 머무를 리시케시는 요가 상품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요가를 팔고 싶은 사람들과 요가에 구원받고 싶은 사람들, 고뇌하는 자들과 약에 취한 자들이 한 데 모여있는 곳이다. 리시케시를 대표하는 긴 다리 락시만 줄라에서는 사람들과 오토바이, 원숭이와 소들이 서로 체증을 일으키며 길을 가로막지만 바로 아래 흐르는 갠지스강은 햇빛을 받으며 찬란하게 흐른다. 요가에 구원을 바라는 한 명으로서, 조잡하고 복잡한 이 곳에 서서히 스며들고 있다.


    인도를 사랑할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르겠다. 인도의 모든 것은 오묘한 듯 알맞은 때에 선명해진다.




왜 하필 인도일까?

어쩌면 인도가 필요한 때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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