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걷던 기억
랑탕 트레킹 첫 번째 관문은 카트만두에서 트레킹 초입 사브루베시까지의 이동이었다. 눅눅하고 강황 냄새가 나는 버스에 낑겨앉아 약 아홉 시간을 달렸다. 카트만두를 벗어나기까지의 극심한 교통체증 구간을 견디고 나니 길이 맞나 싶을 정도의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가 이어졌다. 열악한 도로 사정으로 몸이 끊임없이 들썩였고, 몸이 기울 때마다 눈 앞엔 아찔한 절벽길이 펼쳐져 내내 마음을 졸였다. 고막이 찢어질 듯하게 틀어놓은 음악은 옵션이었다.
아침 일찍 출발한 버스는 해질녘이 되어서야 사브루베시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며 가장 먼저 아직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했고, 더 이상 괴로운 버스 안에 몸을 구겨 넣고 있지 않아도 되는 것에 기뻤다.
얼른 한 롯지에 들어가 짐을 풀고 휴식을 취하며 녹초가 된 몸을 달랬다. 꼭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에서처럼, 랑탕이란 미지의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하는 험난한 관문을 통과한 기분이 들었다. 마을엔 순식간에 어둠이 찾아왔다. 고요한 하늘엔 별이 촘촘히 박혀있었다. 트레킹의 시작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산에 오를 준비를 마쳤다. 새롬이와 나는 카트만두에서 사 온 'trek in nepal'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맞춰 입었다. 우리만의 구호를 만드는 게 어떻겠냔 말이 나왔고, 가이드 겸 포터인 프루바가 조심스레 '나마스떼(네팔의 인삿말)'가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프루바의 말에 따라 서로 손을 모아 수줍은 구호를 외치고 첫 발걸음을 떼었다. 그 후 '나마스떼'는 매일 아침 트레킹을 시작하기 전 함께 모여 의지를 다지는 작은 의식이 되었다.
랑탕 트레킹을 하던 일주일 간의 일과는 아주 단순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고양이 세수를 하고, 장작으로 불을 지펴 훈훈해진 부엌에 모여 조촐한 아침을 먹었다. 대개는 짜빠띠라는 둥그런 밀빵에 잼을 발라 커피와 함께 먹는 식이었다. 아침식사가 끝나면 짐을 꾸려 구호를 외치고 출발했고 그 날 주어진 길을 열심히 걸었다. 체력이 달릴 때쯤엔 함께 멈춰 쉬면서 풍경을 천천히 감상했다. 때가 되면 가까운 롯지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밥과 국, 약간의 찬거리가 함께 나오는 네팔의 가정식 '달밧'을 시키면 주인아주머니가 밥통, 국통, 반찬통을 차례로 들고 나와 무제한 리필을 해주셨다. 처음엔 분명 한 그릇으로 배가 불러 더 주신다는 손길을 거절했는데, 트레킹 후반부에 가서는 이미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밥통을 들고 나오실 아주머니를 기다리는 꼴이 되어버렸다. 달밧을 먹고 달밧파워로 힘내 산을 오른다는 소리를 우스갯소리로 듣곤 했는데,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달밧파워의 진가를 몸소 느끼게 된 셈이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열심히 걷다 해가 지기 전 그날 하룻밤을 보낼 롯지를 찾아 들어갔다 짐을 풀고 대충 씻고 저녁을 먹고 나면 금방 어둠이 내렸다. 밤이 되면 산의 기온이 확 떨어졌기 때문에 가져온 옷을 최대한 겹쳐 입고 난로가 있는 롯지의 식당 겸 거실로 갔다. 모두가 추위를 피해 난롯가로 모여들었는데, 날이 갈수록 옹기종기 붙어 앉은 사람들 중에 익숙한 얼굴이 늘어갔다. 차가워진 손과 발을 녹이며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기도 했지만 카드가 있을 때면 사람을 모아 카드게임을 했다. 야매 카드게임을 하면서 모두 진지한 얼굴을 했다. 게임은 진지한 눈빛이 흐트러지며 하나둘씩 하품을 할 때가 돼서야 슬슬 끝이 났다.
게임을 접고 일어나서는 물통에 타도 파니(뜨거운 물)를 받은 후 서로 잘 자라는 인사를 하며 방에 들어갔다. 침낭과 핫팩, 그리고 이 타도 파니가 밤의 추위를 지켜줄 비장의 무기들이었다. 핫팩을 여기저기 배치하고 침낭에 쏙 들어가 타도 파니를 품에 안고 잠에 들었다. 아침이 되어 미지근해진 물은 그 날 트래킹의 식수까지 되어주었다.
날이 갈수록 여러 가지 이유로 샤워는 사치가 되었다. 산속 깊이 들어갈수록 샤워시설이 점점 허술해지다 아예 야외의 수도꼭지 하나로 간소해져 버렸다. 고도가 점점 높아졌기 때문에 씻는 행위 자체를 조심해야 하기도 했다. 하루 이틀쯤은 추위에 덜덜 떨면서도 기어이 샤워를 했지만 어느 순간부턴 대충 물만 묻히고 마는 것으로 만족했다. 매일마다 점점 더 땀에 절어가는 같은 등산복을 다시 꿰어 입는 것에도 무심해졌다. 손톱에 때가 끼는 게 당연할 정도였다. (결국 산에서 내려와 때를 박박 밀어야 했다.)
인터넷은 꿈도 못 꿨고, 전자기기를 충전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돈을 내야 했다.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음악 하나도 엄선하여 아껴 듣다가 다시 얼른 핸드폰을 꺼야 하는 신세였다. 밤이면 손전등에 의존해 어둠을 더듬더듬 헤집어 허름한 화장실을 찾아야 했다. 상상해본 적도 없는 환경이었다. 21세기 한국의 인프라에 녹아 살던 내겐 너무도 생소한 세계였다. 그 세계에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적응했다. 기꺼이 감수해낼 만한 곳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싶다.
그러나 발목을 잡은 것은 따로 있었다. 고산증세가 어김없이 찾아왔다. 에너지 충전을 위해 들고 갔던 초코바들이 점점 빵빵해질 때마다 한걸음 한걸음 걷는데 써야 하는 에너지가 점점 커져갔다. 숨이 차기 시작하더니 머리가 지끈거렸고 밤이면 잠이 오지 않았다. 이미 페루 69 호수에서 고산병에 호되게 당한 적이 있어 산행 전부터 걱정이 되긴 했었다. 일부러 알약을 사서 먹고, 물을 열심히 마시면서 나름대로 고산병 예방에 노력을 하긴 했지만, 역시나 적정 높이 이상 올라가면서부터 증상은 점점 심해지기만 했다.
4,773m인 강진리를 오르던 날에는 버거운 숨을 오기로 참아야 했다. 순식간에 나이를 50살은 더 먹은 것 마냥,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은 길을 한참 시간을 들여 힘겹게 올랐다. 걷는 내내 정상을 위해 올라가는 길에 대한 회의감을 반추했다. 누군가에겐 체르고리를 오르기 전 연습 겸 다녀간다는 강진리를 그 친구들이 왔다가는 시간의 두 배쯤 들여 겨우 정상에 도착했다. 절로 웃음이 터지고 환호가 터졌다. 성취는 달콤할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몸을 가누기 힘들 만큼 불던 그곳에서 쉽사리 내려가기 아쉬워 한참을 앉아있다 떠났다.
그리고 그 날 나의 한계를 다시 마주하고 나서 예정되어있던 고사이쿤다에 가는 일정을 취소했다. 다시 오기를 부리며 강진리보다 더 높은 곳에 오를 자신이 없었다. 12일쯤으로 예정되어 있던 산행이 일정 취소에 따라 8일로 대폭 줄었다. 원래 가려던 루트를 수정해 왔던 길을 똑같이 되돌아가 다시 사브루베시에 가는 것으로 트레킹이 마무리되었다. 트레킹의 마지막 날, 산을 내려와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트럭 세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매연을 뿜고 지나갔다. 꿈을 꾸다 말고 중간에 무턱대고 깨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그 날 저녁 오랜만에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고 고산증세때문에 입에 대지 않았던 맥주를 마시며 쉴 새 없이 웃었지만 그 얼떨떨한 기분을 내내 지울 수 없었다.
다시 눅눅하고 강황 냄새가 나는 버스에 앉았다. 몸이 자꾸 들썩거리고 절벽이 내다 보이는데도 마음을 졸이긴커녕 중간중간 열심히 졸기도 했다. 길고 긴 시간을 다음엔 꼭 고사이쿤다에 가야지, 꽃이 피고 날씨가 좋아 예쁘다는 4월에 와봐야지, 엄마 아빠랑 함께 와야지, 트레킹 하며 만났던 친구들처럼 그 날의 목적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걸어봐야지, 그런 생각들로 채웠다.
카트만두가 가까워지자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도착하자마자 일주일을 내내 함께하던 프루바와 싱겁게 헤어졌다. 영양보충을 해야 한다며 한식당을 찾아가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냉동 고기는 질기고 반찬들의 맛은 어딘가 엉성했지만 열심히 먹었다. 산에 가져갔던 모든 옷들을 세탁기에 돌렸다. 롯지와는 비교도 안되게 좋은 호텔에서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며 피로를 녹였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던 습관이 그새 배여 이른 저녁부터 눈이 감겼다. 적당한 실내온도에서 두툼하고 기분 좋은 이불을 덮고 누웠다. 꼭 내일 아침이면 일찍 눈을 떠 다시 걸을 채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저 걷는 것으로 하루가 충분할 것 같았다. 이 미묘한 기분이 꽤 오랜 밤을 따라올 것 같았다.
네팔 랑탕 트래킹
2017.11.28 - 2017.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