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성진 Jul 07. 2015

브런치 오픈 회고 (1)

누구의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첫 글로 어떤 이야기를 담을까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다. 덕분에 서랍에는 연결고리 없이 저장된 글들이 너저분하게 쌓여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제주 직장인의 흔한 일상으로 시작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나 혼자 즐거운 이야기보다는 이제 막 오픈한 프로젝트 회고가 브런치에 더 어울린다고 믿고, 작가분들이 글을 작성할 때의 심정을 공감하고자 어려운 선택을 하였다. 애증의 브런치 에디터 기획 과정을 되짚어 본다.


'누구의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1. 누구를 위한 서비스인가?




진지진지 열매를 삼키고 세상을 향해 나만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작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온전한 본인의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고 싶은 작가들이 모여서 글을 쓰고 그 글이 독자들에게 가치 있게 연결되는 공간이 <브런치>라는 이름으로 회자되길 기대하며 프로젝트의 첫걸음을 떼었다.


사진과 태그, 한 줄 메시지로 모든 것을 함축하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자투리 시간에 화면을 쓱쓱 넘기며 간식을 먹듯 가볍게 소비하고 두 손가락만으로도 컨텐츠를 만들 수 있는 모바일 세상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얕은 재미'를 추구하는 피키캐스트가 현재의 트렌드라면, '내면의 깊은 생각'을 담고자 하는 브런치의 도전은 어찌 보면 역행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성을 담은 글이 독자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며,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어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였다. 이런 글이야 말로 시대와 트렌드와 상관없이 롱런할 수 있는 자산이고, 컨텐츠가 필요한 모든 채널로 부터 환영받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채널보다 크리에이터와 컨텐츠가 힘을 발휘하는 시대가 오지 않겠냐는 희망(이라고 쓰고 최면이라 읽는다)이 깔려있기도 하다.


두 손가락 보다는 열 손가락으로, 열과 성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우리의 메인 타겟이다.









2. 그들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가? 





글쓰기의 사전적 정의는 '생각이나 사실 따위를 글로 써서 표현하는 일'이다. 딱 이 부분에 집중했다.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작가의 문장력이나 표현력을 키워줄 수는 없다.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글쓰기 외의 pain point를 찾아내는 것이다.



잠재적 브런치의 작가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아직은 어색한 프로젝트 멤버들 사이에 합을 맞추기 위해서 페르소나를 만들고 브레인스토밍을 시작하였다. 글을 쓰는 과정과 목적에 따라 작가들을 7가지 형태로 나누고, 각 작가의 입장에서 불편한 점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았다. 각 그룹에서 나온 공통 문제점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브런치 에디터의 역할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실 회의실이나 책상 앞에서 그림은 그릴 수 있어도 엣지를 만들기는 어렵다. 그런 건 어마무시한 상상력이나 통찰력을 가진 천재형 리더이거나, 시대의 운을 타고난 럭키가이가 아니라면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저 보통사람 직장인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명료하다. 직접 작가들을 만나서 관찰하고 이야기를 들어보는 방법 밖에는 없다. 그래서 세심한 케어가 필요한 작가군을 회사로 모시거나 우리가 찾아가서 인터뷰하기로 했다.


출판 작가, 방송 작가, 잡지사 에디터, 기자, 블로거들을 인터뷰하면서 미리 그렸던 그림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기로 삼을 무언가에 대한 힌트에 집중했다. 작가분들의 진솔한 한마디 한마디는 그동안 불확실성으로 인해 감내해야 했던 고통을 1%씩 감소시켜주는 진통제 같은 효과가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작가의 글쓰기를 방해하는 가장 큰 문제 2가지를 도출하였다. 



문제 #1 글쓰기보다 꾸미기가 더 힘들어!

"보통 편집 에디터가 레이아웃과 디자인을 잡아주는데, 직접 하려니 막막하기도 하고 그 맛이 안나죠."

"사진을 많이 넣고 싶은데 스크롤이 길면 읽기 힘드니까 포토샵/포토이스케이프에서 한 장으로 묶어와요"

"글만 써도 예쁘게 보였으면 좋겠어요. 뭔가 사진을 꼭 넣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어요."  

"좋은 카메라로 찍어도 블로그에 넣으면 볼품이 없어져요. 시원시원하고 화질도 좋게 보여주고 싶어요."


작가들은 글을 쓰는 것 만큼이나 '아름답게', '가독성 좋게' 보이기 위한 고충을 가지고 있었다. 글 작성 시간만큼 사진 촬영-선별-편집 과정에 투자하기도 했다. 글 쓸 때 어떤 점이 가장 힘드세요?라는 질문에 "사진을 편집할 때, 첨부하는 컨텐츠들의 배치를 잡을 때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아이러니 한 답변에서 브런치 에디터가 풀어야 할 숙제가 선명해졌다.


꾸미기에 대한 감각이 부족하더라도, 최소한의 노력으로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친 듯 아름다운 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 글쓰기에 본질인 생각을 글로 옮기는 과정에 더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환경이 마련된다면 작가분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않을까?' 이 부분이 브런치 에디터의 가장 큰 과제이면서 동시에 베타 서비스 단계의 브런치에 핵심 가설이기도 하다.  



문제 #2 모바일에서도 잘 보이고, 수정도 가능하게!

"나름 작가인데 오타가 있을 때 가장 창피하죠. 웬만해서는 틀리지 않지만 가끔 실수할 때가 있어요. 외출했다가 오타를 발견하고 수정하려고 하는데 이게 모바일에서 안되니 속 터져서 PC방에 간 적도 있어요."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많이 보잖아요? 그래서 글 저장하고 계속 폰에서 보고 수정하고 반복해요."

"독자들은 모바일에서 더 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예 글을 스마트폰 폭에 맞춰서 작성해요."  

모바일에서 글을 더 많이 보는 세상이 되면서 '아름답게'와 '가독성 좋게'의 범위는 모니터에서 스마트폰 까지로 이미 확장되었다. 우리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PC에서 글을 작성하시는 분들이었음에도, 대부분은 모바일에서도 본인 글이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PC에서 저장하고, 앱에서 보고 수정하고를 반복하면서 글을 완성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브런치 PC에디터에서 모바일 미리보기를 제공하고, 미리보기 창에서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항목을 보여주는 기능은 여기서 나오게 되었다.


개발 관점에서는 모바일 보다 큰 이슈가 PC-모바일 상호 간의 수정이었다. 보통 PC에디터는 리치한 기능을 가지고 있고, 앱 에디터에서는 일부 기능을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브런치를 기획하던 2014년 여름에는 모바일에서 글쓰기를 지원하지 않거나, PC에서 작성한 글은 모바일에서 수정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 서비스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부분을 개선(보다는 개혁? 혁신?)하기 위해서는 티스토리나 다음블로그에서 사용하고 있는 기존의 에디터를 가져다 튜닝해서 쓰는 것으로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PC웹-아이폰앱-안드로이드앱이 상호간에 호환할 수 있는 데이터 구조와 규칙을 만들고 시작해야만 했고, 이것이 브런치팀에서 에디터를 직접 만든 결정적 이유이기도 했다. 담당 개발자들은 시작부터 아주 큰 도전이었던 셈이다. 








[브런치, 그리고 브런치 에디터 (1)]은 여기서 마무리.

[브런치, 그리고 브런치 에디터 (2)]에서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의 아이데이션, 벤치마킹, 와이어프레임 히스토리와 에디터를 기획하면서 느꼈던 점을 적어보고자 한다.



브런치 에디터 주요기능 소개글 :  https://brunch.co.kr/@brunch/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