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날: 2019. 4. 27.
주제넘게 장르소설을 무시하던 때가 있었다. 레이몬드 챈들러의 <빅 슬립(Big Sleep))>을 읽으면서 하드 보일드 탐정물에 대한 선입견이 깨졌다. 스파이물은 어떨까 싶어 자연스럽게 그 대표격이라는 존 르 카레의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The Spy Who Came in from the Cold)>를 찾아 읽었다. 얼마나 반성했던지.
레이몬드 챈들러가 사람의 더러운 감정을 절묘한 문장으로 아름답게 표현한다면, 존 르 카레의 문장은 평범하지만 그 평범한 문장들이 쌓여서 사람이 가장 깊이 감추는 감정을 수술대 조명 아래처럼 드러낸다. 이 작가는 어떻게 그런 통찰을 갖게 되었을까.
데이빗 존 무어 콘웰은 1931년에 태어났다. 2차 대전 직후 냉전이 절정에 이르던 50년대와 60년대에 영국 첩보부에서 근무했고, 존 르 카레라는 필명으로 쓴 소설이 성공한 후 첩보부를 떠나 소설가가 되었다. 스파이가 쓴 스파이물이라니 탐정 출신 대쉴 해미트가 탐정물을 쓴 것처럼 들어맞긴 한데, 그 약력만으론 이 작가의 힘을 납득하기에 부족했다.
얼마 후 BBC의 <World Book Club>이란 팟캐스트에서 인터뷰를 듣다가 답을 찾았다. 르 카레는 영국 냉전시대 이중첩자로 유명한 킴 필비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랑하지 않는 대상을 배신할 수는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애당초 첩보부에 합류한 이유에 관해, 사기꾼으로 유명했던 부친을 언급하며 ‘가족에게 충성할 수 없었기에 그보다 큰 어딘가에 충성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순간, 국민학교 1학년 때 운동장 태극기 앞에서 매일 남몰래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던 기억이 났다. 부친을 존경할 수 없었기에 존경할만한 아버지상을 찾아 책을 뒤지고 주위 어른들을 뒤지던 기억이 났다. 회사든 나라든 약자든 그 누구에게든 충성하고 싶어 간절했던 기억이 났다.
그 후 르 카레의 모든 소설을 읽지는 않았지만 그의 인터뷰는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가 언급하고 인정했기에 알렉 기네스의 연기를 찾아 보곤 했다. 그가 <비둘기 터널(The Pigeon Tunnel)>이란 제목의 자서전을 냈을 때는 신영복의 <강의>를 읽던 마음으로 한 챕터씩 아껴가며 읽었다. 좋은 대목이 나오면 L씨에게 읽어주곤 했는데 나도 모르게 울면서 읽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L씨는 다 듣고 ‘좋은 책이네’ 말하며 나를 안아주었다.
비둘기 터널이란 작가가 한때 묵었던 스위스 호텔의 옥상에 있던 장치이다. 호텔에서 비둘기를 키워서 새가 자라면 그 터널을 통해 밖으로 날려 보내고, 사냥을 즐기는 투숙객들은 그 비둘기를 쏘아 맞춘다는 것이다. 용케 총알을 피한 비둘기들은 그대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터널 끝 둥지로 돌아온다고 한다. 그곳 밖에 아는 집이 없기에. 그리곤 또다시 터널로 날려진다는 것이다.
두어 달 전에 L씨와 교토에 다녀왔다. 하루는 L씨와 함께 기온 거리에 있는 키리토시 신신도라는 카페에 들렀다. 주인 아저씨가 오늘은 문을 일찍 닫는다고 알려 주시는데, 내가 기억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갑자기 더듬거리며 서툴어진 일본어로 ‘저는 한국 사람인데, 제가 십년 전 이 카페에 들렀을 때 사장님과 사모님께서 아주 친절하게 대해주셨습니다. 힘든 시기였는데 정말 감사했습니다’고 했다. 사장님은 고개를 갸우뚱하시며 ‘미안하지만 기억나지 않는걸’ 하셨다. 나는 ‘괜찮습니다’하고 공항에서 사온 김 상자를 내밀었다. 사모님이 나오시는 모양이 보이는데 차마 마주볼 수가 없어 그럼 이만 하고 L씨와 거리로 다시 향했다. 노을 직전 카모 강가에 앉아 마음을 식혔다.
L: 사장님이 기억하지 못하셨다는 건, 그 분에게는 낯선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는 것이 일상이라는 거잖아. 그런 분이야말로 이런 드라마틱한 감사를 받을 자격이 있지.
나: 그 느낌을 드리고 싶었어. 당신이 언젠가 모르는 사람에게 베푼 친절을 세상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선함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고 말이지.
실은 내 자신을 설득하기 위한 제스처였다. 이제 사회에 대한 사명감도 가족에 대한 죄책감도 버리고 나를 위해 살테니, 좋은 제스처 하나로 세상에 대한 빚을 갚은 셈 쳐줘 하고.
한때는 고령의 존 르 카레가 세상을 떠날까봐 걱정이 되었다. 나는 아직 악수를 나누지 못했는데, 그의 글과 삶이 내게 얼마나 빛나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는지 말하지 못했는데, 부끄러워서 팬레터 한 번 보내지 못했는데. 그 날 카모 강가에서 존 르 카레를 생각하며, 그를 향해 마음으로 인사를 전했다.
‘당신의 삶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터널로 돌아가지 않아요.'
커버: (c) Charlotte Hadden/New York Times/Redux/Eyev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