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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기 Feb 25. 2020

37년 만에 세상에 나온 영화<휴일>

슬픈 연인의 잔인한 하루

일요일,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휴일, 일요일,      

"우리는 언제나 일요일에 만났다. 그날도 일요일이었다."          

커피 살 돈도 없는 가난한 연인(욱과 지연)은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다. 아이 셋을 낳고 이층집에 살고 싶다는 욱의 바람은 안갯속 저 멀리에 잡히지 않는다. 그들의 데이트 장소는 남산, 남산은 시종 모래바람이 흩날리고 그들의 머리카락과 옷자락도 함께 휘날린다. 지연은 임신 6개월, 끊임없는 인생의 선택 속에 그들은 선택해야 했다. 다정히 차 한잔 할 수 없는 형편에 아이를 낳을 순 없었다.  욱은 병원비를 구하려 하나밖에 없는 외투를 연인에게 던져주고 나선다.       

    

    욱은 연인의 수술비를 구하려 이곳저곳을 다니지만 현실은 자신의 삶처럼 비루하다. 한 친구는 처음 만난 여성과 노닥이고 있고 한 친구는 말세라는 술집에서 사람들에게 험한 말로 시비를 거는 것이 일상인 듯 보인다. 마지막으로 그는 친구 규재의 집에 찾아간다. 규재의 외투에 든 돈을 보고 욱은 그의 돈과 시계를 들고 나온다. 정신없이 내달려 남산에 도착한 욱은 모래바람을 피해 한쪽 구석 쪼그려 앉은 지연을 발견한다.  배고픈 연인은  훔쳐온 돈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병원으로 향한다.                                                                                                                                         

지연을 병원에 남겨두고 욱은 이곳저곳을 헤맨다. 낯선 여인을 만나고 다시 오겠다는 그에게 일요일에 만났기에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병원을 찾은 그는 지연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허름한 그녀의 집에 찾아가 그녀의 죽음을 알리나 아버지는 믿지 않고 그를 내쫓는다. 길을 해매던 그는 친구 규재를 만나고 몸싸움을 벌이고 그에게 죽여달라고 이야기한다.                      

욱은 전차에 오르고 종점인 '원효로'에 도착한다. 갈 길을 잃은 욱은 전차에서 내리고 '종점'에서 영화는 끝이 난다.  1968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서슬 퍼런 시절의 검열에 묶여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묻혔다, 37년이 지난 2005년 대중 앞에 나오게 되었다.  시종 우울함을 가득 채운 영화는 상영되지 못했고 욱을 군대로 보내는 설정을 상영 조건으로 내세웠으나 감독, 작가, 제작자 모두 반대해 고이 묻힌 비운의 영화가 되었던 것이다.                

 슬픈 연인의 잔인한 하루를 다룬 이 영화는 현재 청년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처음 만난 연인과 노닥이며 지연의 임신을 의심하는 친구, 현실을 부정하며 술을 마셔대는 친구, 가정부를 두고 있을 정도로 부유하지만 무료함을 달래며 말초적 재미를 갈구하는 친구,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이들이다. 이 영화는 폐허에 가까운 인간을 쓸쓸하게 드러낸다. 그들의 존재하는 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따듯함 하나 나눌 수 없이 길을 헤매거나 모래바람 날리는 남산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근대화가 가쁘게 진행되는 건물 공사장에서 사랑을 나누거나, 이미 끊겨버린 전차에서 갈 길을 잃고 헤맨다.                

휴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노동의 쉼을 누리고, 그리운 이를 반갑게 맞고, 오랜 묵은 숙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빨간 날'이다. 하지만 희망 없는 인간들에게 휴일은 남들이 다 나서는 바캉스도 나설 수 없는 자격이 유예된 혹은 상실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일 뿐이다.          

휴일(1968)     

감독 이만희     

출연 신성인, 지윤성, 김성옥, 김순철....     


이미지출처: 한국영상자료원 K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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