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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기 Feb 20. 2020

여사장

여성의 종속사

 한 여성이 미도파 백화점 앞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하고 있다. 그녀의 뒤엔 나름의 통화가 필요한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업무지시를 내리기도 하고 시시콜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녀의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이들은 하나 둘 포기하고 그녀는 사람도 먹기 힘든 양과자를 그녀의 반려견에서 건넨다. 마지막까지 남아 통화가 끝나길 기다리던 한 남자는 그녀에게 핀잔을 주고 그녀의 강아지 '마리오'를 차버린다.

사내연애를 금지하던 신여성
사장실에 이런 문구가......


그녀는 '신여성'이라는 잡지 회사 사장 요안나. '남성'= '사장'이라는 도식을 깨고 여사장으로 회사를 경영하고 있지만 회사사정은 그리 좋지 않다. 잡지를 내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돈 많은 이와의 결혼을 고민하기도 하고 숙부에게 손을 내밀기도 한다.  잡지사 내부를 보면 여성들이 부장을 맡고 남성들을 하위계급에 위치해 여성들의 지시를 받는 상황이다.

잡지사 내부의 모습

잡지사는 사원을 모집하여 면접을 보는데 결혼 유무를 꼭 묻기도 하고 영문학을 전공한 이를 면접하며 코미디영화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현대여성이란" 아무도 잘 대답 못하더라. 주인공 용호 역시 신여성의 면접을 보기 위해 등장한다. 사장 요안나는 대번 그의 얼굴을 알아보고 그를 채용하고 골탕 먹이리라 맘 먹지만 그는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 아니냐며 반문한다. 요안나는 현대사회의 시선에서 보면 수많은 여성들 중 하나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 당시 미제로 물들던 사회에 온몸을 미제로 휘감고 영호를 향한 온갖 욕망을 드러내고 자유연애를 지향하며 귀한 미제과자를 강아지에게 쉽게 던져주는 허영 가득한 여성상 일 수 있다.


당시 그녀는 아프레걸( Apres-girl,アプレガール)이라 불렸다. 아프레걸은 아방게르(après guerre, 戰後)에 girl을 붙여 제1,2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의 경향을 나타내는데 한국전쟁 이후 아프레 걸은 지식인 여성,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전통의 여인상과는 대비되는 도덕적인 관념을 깨고 자유주의적인 여성을 의미했다. 남성에서 순종하고 희생하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며  사회참여적 여성을 뜻하기도 했으나 사업을 하고 가부장제에 도전하며 '신여성'으로 위치하기보다는 허영의 상징이기도 했고 타락한 여성의 한 면 '양공주'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여성 그 자체보다는 교정되어야 할, 갱생이 필요한  '비정상적'인 여성으로 그려졌다.


교정과 갱생의 시간이 오는데 개연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영화의 결말에 가면 답을 얻을 수 있다.

 

파티를 즐기던 그녀는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러나 그는 오지 않는다. 파티가 끝나고 요안나 혼자 외롭게 남았을 때 용호가 등장하고 그를 향한 욕망을 드러내나 그는 기사의 표현대로 한없이 '신사적'이었다. 콧대 높던 '신여성'요안나도 남성 없이 재기할 수 없었다. 그녀는 삼촌의 제안으로 용호를 경쟁사와의 농구경기 선수로 참가시키고 승리를 거둬 잡지를 발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요안나는 결혼을 통해 사업도 성공을 거둔다.

"회사가 잘 되는 건 다 당신 덕이죠."

회사 사훈은 '여존남비'에서 '남존여비'로 바뀌고 요안나의 자리엔 용호가, 여성부장들은 강등된다.

요안나는 한복으로 환복하고 밥을 짓고 남편을 기다리며 행복해한다.


영화는 시종일관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로 진행된다. 여성은 서서히 자신의 위치가 거기였듯 '현모양처'의 모습을 덧입고 제자리를 찾는 듯하다.  그래야 모두가 안심하는 듯이


                

여사장 (A Female Boss, 1959)

감독: 한형모

출연: 조미령, 이수련, 윤인자, 김숙일, 김희갑, 이대엽....


이미지출처: 한국영상자료원 K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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