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암호를 보내는가
시 (詩) <달리기>, 이병률
죽자, 나는 생각했다. 죽자.
(모니카 마론, <슬픈 짐승> 중에서)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려도 언제나 제자리.
앉지도 서지도 눕지도 못하고 창가에 매달려
'이 물 속 같은 고요을 뚫'*고 덜컹이는 젖은 손짓….
유리비가 쏟아진다는 머언 먼 어느 행성에선가,
달리기
- 이병률
-어디 가?
돌이 돌에게 묻는다
-멀리로
돌이 돌에게 대답한다
그 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멀리로 가겠다는 돌도 움직이지 않는다
둘 사이 두 척의 거리가 몸살하고 있다
-간다믄서?
십수 년 만에 돌이 돌에게 묻는다
-가야지
돌은 돌에게 결행을 알리고
돌은 곧 떠나겠다는 돌을 지켜봐준다
그 바라봄이 다시 십수 년을 먹어치운다
여전히 둘 사이를 지키는 지척의 거리
늘상 같은 바람이 불고, 평소처럼 날이 어둑어둑해진다
어디 먼 데서 굴러 온 실뭉치가
기다리는 돌의 가슴 한가운데 길을 낸다
오지 않겠냐며 떠나겠다던 돌이 묻는다
기다리던 돌은 한참을 생각하는 듯하더니 그러마고 대답한다
다시 기다린 세월만큼이나 더 기다리는 날들이 계속되고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질기디질긴 두 척의 시간
덧
글 제목과 '*'은 최승자 시인의 시(詩) <수신인은 이미>에서 인용했어요. 사진은 에두아르 부바의 <포옹>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