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는 자동차다.
자동차의 엔진오일을 갈았다. 주행거리는 7만키로를 갓 넘어섰다.
거의 6년을 타고다닌 거리치고는 그리 많은 주행거리는 아니다.
늦은 저녁에 주차장에 홀로 덩그러니 서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자동차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차에게 있어서
그동안 달린 시간과 멈춰서서 기다린 시간을 비교하면 얼마나 될까.
6년간 7만키로를 시속 60키로로 달렸다고 가정하면
7만km를 달리는데 걸린 시간은 1,167시간이다.
6년은 52,560 시간이니까
자동차가 6년간 달린 시간은 대략 2.2%.
그렇다면 서있던 시간은 97%가 넘는다는 결과가 된다.
내가 그리 주행을 많이 하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평균적으로도 자동차는 주행하는 시간은 5% 남짓이며,
나머지 95%의 시간동안은 주차된 상태로 있게 된다고 한다.
평생(?)을 통해 5%가 안되는 달리기를 하지만
자동차는 여전히 우리에게는 주행을 위한 물건이다.
내 자동차가 만들어진 후 6년동안 거의 98%의 시간을 서 있었다고 해서
누가 그걸 보고 넌 자동차가 아니라 장식품이나 장난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럴 리는 없다.
왜냐면
내 자동차는 비록 2% 남짓한 시간일지라도
나를 태우고 달렸기 때문이다.
그 2%의 주행시간 동안
사고도 없고 고장도 없이
잘 달려왔기에
나는 내 자동차를 좋은 자동차라고 높이 평가한다.
그 평가에 있어서
98%의 시간동안 서있는 데에 필요했던
주차비나 세금 등은 당연한 것이며 아깝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모든 자동차는
나머지 95%의 시간을 움직일 수 없다 해도
그 주어진 5%의 주행동안 달리는 것이
자동차의 존재이유인 것이다.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자동차에게
누군가 "넌 왜 달리지 않고 여기에 서 있기만 하는거냐" 고 묻는다면
언젠가 달릴 그 때를 위해 서 있는 것이라고
당신이 달리고 싶다면 언제든지 오라고
이야기 하지 않을까 싶다.
사람도 크게 다를 것이 없지 않을까.
95% 정도의 삶은 모든 사람들에게 비슷한 모습이다.
5% 정도의 '주행'을 통해 사람의 존재의 모습은 달라진다.
훌륭한 위인도, 범죄자도, 가난뱅이도 부자도.. 각각의 인생의 결과를 달리 맞이하게 된다.
따라서
95%의 멈춰 있는 것 처럼 보이는 평범한 시간들에 대해서
왜 나만 정체되어 있을까 하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자동차도 95% 이상은 주차상태로 있는 것이 운명이고
5%의 주행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5%의 주행은
인생이라는 자동차의 키를 하나씩 쥐고 태어난 우리들에게는
마음먹으면 언제나 달릴 수 있는 것이니까.